지저분한 헬멧 위에 빛난 '별' 크레익 비지오
킬러B 이끈 비지오, 지난 7일 명예의 전당 입성
허슬플레이 대명사..집념과 헌신으로 3000안타 위업
2015년 메이저리그는 반가운 4명의 '명예의 전당' 입성소식과 함께 시작됐다.
지난 7일(한국시각) 발표된 영광의 주인공들은 한 시대를 풍미했던 랜디 존슨, 페드로 마르티네즈, 존 스몰츠, 크레익 비지오.
스테로이드 시대를 정면 돌파했던 '투수 3인방' 존슨-마르티네즈-스몰츠는 예상대로 입후보 첫 해 쿠퍼스타운 입성의 영예를 안았다. 이들의 입성가능성을 의심한 사람은 거의 없었다. 타자 중에서는 유일하게 크레익 비지오가 3수 도전 끝에 이름을 올렸다.
메이저리그엔 명예의 전당 보증수표가 있다. 투수는 300승, 타자는 500홈런 또는 3000안타. 비지오는 현역시절 20년간 휴스턴 유니폼만 입고 3060안타를 때렸다. 3000안타를 달성하고도 명예의 전당에 오르지 못한 선수는 피트 로즈, 라파엘 팔메이로, 데릭 지터 뿐. 로즈는 도박혐의로 영구제명, 팔메이로는 약물복용 꼬리표가 붙어 다녔다. 작년에 은퇴한 지터는 2020년에 후보자격을 얻는다.
그렇기에 3000안타를 달성한 비지오의 쿠퍼스타운 행은 사실상 예정된 수순이었다. 언제 입성하는지의 문제였을 뿐이다. 비지오는 입후보 자격을 처음 얻은 2013년엔 68.2%, 2014년엔 입성에 단 2표가 모자란 74.8%의 득표율로 아쉽게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이번만큼은 입성 가능성이 상당히 높았던 것이 사실이고 마침내 82.7%의 득표율로 기준선인 75%를 여유 있게 넘어섰다.
세 번째 도전 만에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휴스턴의 '얼굴' 크레익 비지오의 발자취를 살펴보자.
뉴욕주 롱아일랜드에 위치한 스미스타운 출신인 비지오는 킹스 파크 고교시절부터 여러 스포츠에 두각을 나타냈다. 풋볼로 장학금까지 제의 받았을 정도였지만 그의 열정은 야구를 향했다. 뉴저지의 시튼 홀 대학교에 들어가선 모 본, 존 발렌틴과 같은 팀에서 뛰었다. 이밖에 맷 모리스, 제이슨 그릴리도 이 학교 출신이다. 비지오는 1987년 아마추어 드래프트 1라운드(전체 22픽)에서 휴스턴 지명을 받고 프로에 입문한다.
포수에서 2루수로 전환
대다수 팬들이 기억하는 비지오의 포지션은 2루수다. 하지만 그의 원래 포지션은 포수. 대학시절부터 줄곧 포수로 활약했고, 1988년 메이저리그 데뷔 역시 알렉스 트레비노의 백업포수로 했다.
1989시즌 주전자리를 꿰찬 비지오는 실버슬러거를 수상했고 1991시즌엔 포수로 올스타에 선정되며 재능을 꽃피운다. 포수로서 유난히 빠른 발을 지녔던 비지오는 1989~91시즌까지 매년 21-25-19도루를 기록해 팬들을 놀라게 했다.
결국, 구단은 비지오의 장점인 스피드를 극대화시키기 위해 2루수로 포지션 변경을 결정하고, 그는 1992시즌 개막전에 2루수가 돼 나타났다. 포수가 1루수나 3루수로 바꾸는 경우는 종종 있으나 2루수로 전환하는 경우는 매우 보기 드문 케이스(이와는 정반대로 호르헤 포사다는 양키스 입단 후 2루수에서 포수로 전환해 성공한 경우).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1년 전 포수로 올스타에 뽑힌 데 이어 포지션 전환 첫 해 2루수로도 올스타에 선정돼 야구사에 새로운 이정표를 세웠다. 수비율은 0.984(실책 12개). 무엇보다 팀의 리드오프 히터로 그라운드를 종횡무진 누비며 공격의 첨병역할을 톡톡히 했다. 도루도 1년 만에 두 배나 증가한 38개를 기록했다.
비지오는 포지션 전환 2년 만인 1994년 첫 2루수 골드글러브를 수상한 것을 시작으로 4년 연속 그 자리를 지켰다. 평범한 2루수가 아닌 공수주를 겸비한 리그 최고의 2루수로 거듭난 것. 1994시즌엔 39도루로 디온 샌더스를 제치고 NL 도루왕 타이틀도 거머쥐었다.
배그웰, 그리고 킬러 B
비지오를 설명할 때 제프 배그웰의 이름을 빼놓을 수 없다. '킬러 B'의 핵심멤버였던 둘을 언급하지 않으면 휴스턴 야구역사를 설명할 수 없다. 배그웰은 마찬가지로 15년간 휴스턴 유니폼만 입고 통산 0.297-449홈런-1,529타점을 기록했다. NL 신인왕(1991년)에 이어 NL MVP(1994년)까지 수상한 강타자였다.
'킬러 B'란 주축 선수들 이름의 첫 글자가 모두 알파벳 B로 시작해서 붙여진 별명이다. 비지오, 배그웰 외에 데릭 벨, 랜스 버크먼, 카를로스 벨트란 등이 있었다.
휴스턴의 홈구장 미닛 메이드 파크 외부 '플라자(The Plaza at Minute Maid Park)엔 '휴스턴의 얼굴' 비지오와 배그웰의 동상이 있다. 비지오가 1루수 배그웰에게 송구하는 모습을 형상화했다.
둘의 활약으로 휴스턴도 창단 이후 최고의 황금기를 구가했다. 1990년대부터 2000년대 중반까지 휴스턴은 내셔널리그 중부지구의 강호로 군림했다. 1997년부터 2001년까지는 5년 동안 2000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지구 1위를 차지했다. 시즌 중도에 무릎부상을 당한 2000년을 제외하면 비지오의 활약도 변함없이 계속됐다.
1997시즌엔 0.309-0.415-0.501, 22홈런-81타점-47도루의 성적으로 NL MVP투표 4위에 올랐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처음으로 전 162경기를 뛰고 단 1개의 병살타를 기록하지 않은 선수가 되기도 했다. 이 해 비지오의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WAR(Wins Above Replacement-대체선수 대비 승리기여도)는 9.4로 커리어 최고치를 찍었다. 1998시즌엔 개인 최다인 50도루 달성했다. 2루타도 51개나 기록해 1912년 트리스 스피커 이후 처음으로 50-50(도루-2루타)을 달성했다.
2003년 제프 켄트의 영입으로 비지오는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고, 켄트가 떠난 2005년 다시 2루수로 복귀했다. 세월이 흘러 어느덧 노장이 된 비지오는 타격의 정교함이 무뎌지고 빠른 발의 스피드가 떨어졌으나 20홈런 이상을 쳐주며 여전히 제 몫을 했다.
휴스턴은 2005년 와일드카드로 포스트시즌에 합류, 애틀랜타와 세인트루이스를 연이어 꺾고 월드시리즈 진출에 성공했다. 기세를 이어 창단 첫 우승에 도전했지만 아쉽게도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4연패로 무릎을 꿇었다. 비지오가 월드시리즈 무대를 밟기까지 무려 2564경기를 치러야 했다.
3000안타 달성과 은퇴
비지오는 2007년 6월 28일 홈 미닛 메이드 파크에서 3,000안타 위업을 달성했다. 오직 한 유니폼만을 입고 이 기록을 달성한 9번째 선수가 됐다. 이후 뉴욕 양키스의 데릭 지터가 10번째 선수가 됐다.
은퇴경기를 하루 앞둔 2007년 9월 29일. 비지오는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의 홈경기에 2번타자 겸 포수로 선발 라인업에 이름을 올렸다. 1991시즌 이후 처음으로 선발 포수 마스크를 썼다. 그의 업적을 높이 산 구단의 작은 배려였다. 원래 포수인 브래드 어스무스가 2루수로 선발 출장했고 둘은 2회를 마치고 각자 원래 포지션으로 돌아갔다.
2007시즌을 끝으로 비지오는 20년 입은 정든 휴스턴 유니폼을 벗었다. 통산 0.281-3060안타-291홈런-1175타점-414도루-668 2루타-285사구의 성적을 남겼다.
비지오의 통산 3060안타는 역대 21위에 랭크돼 있다. 특히 668개의 2루타는 트리스 스피커(792)-피트 로즈(746)-스탠 뮤지얼(725)-타이 콥(724)에 이은 역대 5위. 이중 로즈는 스위치타자, 나머지는 모두 좌타자였다. 즉, 비지오는 메이저리그에서 가장 많은 2루타를 때려낸 우타자다. 또 리키 헨더슨(81개)-알폰소 소리아노(54개)에 이어 역대 세 번째로 많은 53개의 리드오프 홈런을 쏘아 올렸다.
또 비지오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3000안타-250홈런-600 2루타-400도루를 기록한 유일한 선수다. 이 카테고리에 이름을 올리기에 배리 본즈는 안타가 부족했고(2935안타), 타이 콥은 파워가 딸렸다(117홈런). 또 조지 브렛은 스피드가 떨어졌고(201도루), 리키 헨더슨은 2루타(510개)가 모자랐다. 데릭 지터는 2루타(544개)와 도루(358개)가 둘 다 조금 더 필요했다.
모두 잘 알다시피 비지오는 월드시리즈 반지가 없다. 배그웰도 마찬가지다. 그런 점에서 이 둘은 NBA 유타 재즈 '무관의 제왕' 콤비 칼 말론-존 스탁턴과 닮았다. 하지만 우승경력이 없다는 이유만으로 말론과 스탁턴의 실력을 과소평가하는 사람은 없듯이 배그웰과 비지오의 업적도 단순히 반지의 유무만으로 평가하긴 힘들다.
배그웰과 비지오가 기록한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 WAR는 각각 79.6과 65.1로 구단 역대 1, 2위에 랭크돼있다. 전성기 대부분을 투수에게 극도로 유리한 애스트로돔에서 뛰고 남긴 성적이다. 배그웰의 5번과 비지오의 7번은 영구결번됐다. 홈구장 스코어보드 우측 위에 나란히 위치하고 있다.
현역시절 비지오의 트레이드마크는 몸에 맞는 볼, 흙투성이가 된 유니폼, 파인타르가 묻은 지저분한 헬멧이다.
비지오가 남긴 기록들 중 유독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몸에 맞는 볼'이다. 이 부문에서 총 5번이나 1위에 올랐다(1995, 1996, 1997, 2001, 2003). 커리어 통산 285개로 2위(1위 허기 제닝스 287개)에 랭크돼 있지만, 근대 야구 기록만 따지면 비지오가 1위다. 항상 그의 왼쪽 팔꿈치엔 유난히 커 보이는 보호대가 감겨져 있었다. 하지만 공을 몸에 맞아 부상자명단에 오르거나, 투수에게 달려든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비지오는 언제나 허슬 플레이를 마다하지 않는 선수였다. 항상 흙이 묻어있던 비지오의 유니폼에선 시종일관 그라운드를 누빈 그의 땀과 체취가 고스란히 느껴졌다.
또 파인타르가 잔뜩 묻은 헬멧을 썼다. 타석에 들어서면 습관처럼 오른손으로 헬멧을 여러 번 만지곤 했다. 그렇게 낡아빠진 그의 헬멧엔 휴스턴의 로고였던 별이 또렷하게 보이지 않을 정도. "더러워진 헬멧은 시각적으로 뭔가 큰 활약을 한 것처럼 보이게 한다."고 비지오 자신이 밝힌 지저분한 헬멧을 고집한 이유다. 이처럼 그의 헬멧엔 팀 승리를 향한 집념과 노력, 헌신이 그대로 묻어있다.
비지오의 타석 등장음악이던 U2의 'Mysterious Ways'. 이 노래 제목은 보기 드물게 포수에서 2루수 전환에 성공한 그의 묘한 야구인생을 상징하는 듯하다. 포수(1회)와 2루수(6회)로 총 7번의 올스타에 선정된 그는 진정 밝게 빛난 '휴스턴의 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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