또 호들갑...때만 되면 도지는 법안 발의 그동안 뭐했나
법제도 개선 여론 들끓으면 중복입법·경쟁입법
잠잠해지면 "우리가 언제?" 나 몰라라 되풀이
보육시설 아동학대 사건이 터질 때마다 가해자에 대한 처벌 수준 강화, 아동학대 감시 체계 운영 등 아동학대 근절 및 예방 대책을 마련하는 내용의 법안들이 줄을 잇고 있다.
그러나 정작 이 같은 내용을 담은 국회의원들의 발의 법안 중에는 담당 상임위원회인 보건복지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고 있는 경우도 있어 전형적인 ‘포퓰리즘’ 입법이라는 지적을 낳고 있다.
△아동학대 경력자 아동 관련기관 취업 규제 △보육시설 CCTV 설치 의무화 △아동학대에 대한 처벌 수준 강화 △아동학대 예방을 위한 모니터링 체계 마련 △아동학대 신고 활성화 대책 등 그동안 꾸준히 제기돼왔던 사회적 요구를 담은 일부 법안들은 현재 소관 상임위에 회부만 돼 있을 뿐 전혀 논의되지 않거나 계류 중인 상태다.
이 가운데 한 법안은 제19대 국회 개원 직후 발의돼 한 차례 논의된 후 긴 동면에 들어갔고, 일부는 지금으로부터 약 1년 전 발의됐음에도 단 한 번도 다뤄지지 않아 제안 당시의 상태 그대로 남아있다.
또 보육시설 아동학대와 관련한 이슈가 불거져 나오거나 정부 및 민간기관에서 아동학대의 심각성을 상기하는 보고서가 공개될 때마다 아동학대 근절·예방 대책 내용을 담은 유사 법안들이 쏟아져 나오다보니 법안이 발의되더라도 대체적으로 소관 위원회 심사에서 ‘대안반영폐기’ 처분되는 경우가 빈번히 발생하고 있다.
대안반영폐기란 각 상임위원회에서 유사 또는 중복 내용의 동일 명칭 법률안 2건 이상을 종합해 하나의 대안을 제시할 경우, 반영된 원안들을 폐기하는 것을 말한다. 이 경우 원안에 포함된 모든 내용이 반영될 수도 있지만, 일부 내용만을 취합해 반영하는 경우가 많아 본래의 입법 목적이 전부 달성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아동학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법 제도를 재정비해야 한다는 여론이 강하게 형성되면 의원들은 이 같은 시류에 편승해 비슷한 내용의 법안을 경쟁적으로 쏟아내는 등 포퓰리즘성 입법을 남발하는 부작용을 낳고 있는 것이다.
현재 국회에 계류 중이거나 논의조차 되지 않은 아동학대 관련 법안은 정우택 새누리당 의원이 대표 발의한 ‘아동학대 방지 및 피해아동의 보호·지원 등에 관한 법률안’과 같은 당 소속 윤명희 의원이 2013년 12월 대표 발의한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손인춘 의원이 2014년 4월 대표 발의한 ‘아동복지법 일부개정법률안’ 등이다.
정우택 의원은 지난 2012년 7월 법안 발의 당시 보건복지부가 공개한 ‘2011 전국 아동학대 현황보고서’ 내용을 거론하며 “어린이집 내 아동학대 사건 등이 사회적으로 큰 파장을 불러일으키고 있지만, 아동학대 범죄로 처벌 받은 경력자가 아동 관련기관에 취업하는 것에 대한 규제가 전혀 없다”며 법안의 발의 취지를 밝힌 바 있다.
‘아동학대의 예방과 방지와 관련된 아동복지법상의 법적·제도적 미비점을 보완한 체계적이고 독립된 법률을 제정하겠다’는 목적을 담은 해당 법안은 그러나 2년이 훌쩍 지난 지금에도 여전히 복지위원회 법안심사소위원회에 계류 중이다.
정우택 의원실 관계자는 16일 ‘데일리안’과의 통화에서 “당시 아동학대 사건이 산발적으로 나타나 제도 개선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그러나 각계각층의 의견을 들어봐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어 관련 법안이 더 이상 논의가 안 된 것 같다”며 “아마 이번 어린이집 사건을 계기로 다시 논의가 되지 않을까 싶다”고 견해를 밝혔다.
이밖에 아동학대 처벌 수준 상향 조정·아동학대모니터링단 구성 등을 골자로 한 윤명희 의원의 법안과 역시 아동학대 등에 대한 처벌 수준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손인춘 의원의 법안은 복지위원회에서 논의조차 되지 않은 것으로 드러났다.
이에 대해 국회 국방위원회 소속인 손인춘 의원실 관계자는 본보와의 통화에서 “그 법안을 발의할 때는 아동학대 사건이 연달아 발생해 아동학대 행위에 대한 심각성을 알아야 한다는 사회적 분위기가 고조되는 상황이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현재까지 해당 법안이 복지위에서 논의되지 않고 있는 이유에 대해 “사실 다른 상임위에 소속된 의원이 법안을 발의하면 심사나 논의가 잘 이뤄지지 않고 통과하기도 힘든 경우가 많다”며 “때가 되면 해 주길 바라는 것 뿐 적극적으로 심사해주길 부탁하기란 쉽지 않다”고 말했다.
이번 인천 어린이집 사건이 사회적 파장을 불러일으키며 아동학대 가해자에 대한 솜방망이 처벌 등 법제도상의 문제점이 또 다시 부각되면서 여러 의원들은 앞 다퉈 법안을 발의하고 있는 형국이다.
김영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논란이 불거진 뒤 하루만인 지난 15일, 아동학대 위반 시 교사·원장에 대한 자격정지와 어린이집 운영정지 및 폐쇄를 즉시 시행토록하고 향후 자격을 재취득하거나 어린이집을 운영할 수 없도록 영구히 퇴출시키는 내용을 담은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발의했다.
아울러 같은 당 신학용 의원 역시 16일 보육교사의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는 사회적 요구에 따라 2·3급 보육교사 자격기준에 보육 관련 교과목을 이수하는 것 외에 보건복지부장관이 정하는 별도의 인성교육을 받도록 명시한 영유아보육법 개정안을 제안한 상태다.
또한 확인 결과, 박인숙·류지영 의원 등 새누리당 소속 일부 의원들도 어린이집 아동학대 재발방지 및 근절 대책을 담은 관련 법안들을 발의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그러나 이마저도 통과될 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이번 인천 어린이집 사건에 대한 여론의 관심이 수그러지면 앞서 제기됐던 다른 법안들의 경우처럼 짧게는 1년, 길게는 2년이 지나도록 국회 문턱을 넘지 못하고 주저앉을 가능성이 있다는 회의적인 시선을 보내고 있다.
한편, 인천 어린이집 사건과 관련해 여야 정치권은 16일 특위와 TF(태스크포스) 등을 구성하고 일제히 아동학대 재발방지 대책 마련에 착수했다.
새누리당은 당내 ‘아동학대근절특위’(위원장 안홍준 의원, 간사 신의진 의원)를 구성하고 현장실사 및 대책회의 등을 거쳐 어린이집 내 CCTV 설치 의무화, 어린이집 원장·보육교사 책임 강화 등의 대책을 마련해 입법화하기로 했다.
새정치민주연합도 ‘아동학대 근절과 안심보육 대책 TF’(위원장 남인순 의원)를 발족하고 당내 TF 회의 등을 통해 CCTV 설치 의무화와 아동학대 발생 어린이집 영구 퇴출, 어린이집 아동학대 실태 관리감독 강화 등의 대응책 마련에 주력할 뜻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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