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란법 덕분에 정치권 개헌하게 생겼다?
<기자수첩>일부 항목 다른 법률은 물론 헌법과도 배치
눙치고 시간 끌다 여론 밀려 '누더기 통과' 보완해야
김영란법이 3일 우여곡절 끝에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 2011년 김영란 전 대법관이 처음 법안을 제안한 지 햇수로 5년 만이다. 논란이 됐던 언론인과 사립학교 교직원들도 법안 적용 대상에 포함됐고, 새누리당의 전임 원내대표였던 이완구 국무총리와 우윤근 새정치민주연합 원내대표의 합의도 지켜졌다.
하지만 아직도 해결해야 할 과제가 산더미이다. 여야는 여론의 눈치에 떠밀려 위법의 소지를 남겨뒀고, 전임 원내대표 간 합의된 처리 시한에 묶여 충분한 논의도 갖지 않았다. 1년 6개월이라는 유예기간은 여야가 졸속 처리한 누더기 법안을 재정비하고, 초안의 취지에 맞게 보완하는 시간이 돼야 한다.
우선 이날 처리된 김영란법의 핵심은 동일인으로부터 1회 100만원, 연간 300만원 이상의 금품을 수수한 공직자와 언론인, 사립학교 교직원에 대해 직무와 상관없이 형사 처벌하는 것이다. 직무 관련성이 있을 경우에는 3만원 이상의 식사 접대를 비롯한 100만원 미만의 금품 수수도 과태료 부과 대상이 된다.
막판까지 쟁점이 됐던 의무 신고 대상은 민법상 가족에서 배우자로 대폭 축소됐다. 공직자 등 법안 적용 대상자가 배우자의 금품 수수 사실을 알고도 신고하지 않는다면 형사 처벌의 대상이 된다.
문제는 의결된 김영란법이 기존 법률들과 상충된다는 점이다. 현행법상 죄를 범한 친족을 신고하지 않는 자는 형법 제151조(범인은닉죄) 2항 친족간 특례규정에 따라 처벌받지 않는다. 지난해 유병언 전 세모그룹 회장의 도피를 총괄 지휘했던 유 씨의 매제 오갑렬 전 체코 대사로 같은 이유로 무죄를 선고받았다.
특히 논란이 되는 부분은 김영란법의 위헌 소지이다. 헌법 제37조 2항은 ‘국가안전보장, 질서유지 또는 공공복리를 위하여 필요한 경우에 한하여’ 국민의 기본권을 제한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는데, 이 경우에도 목적의 정당성, 방법의 적절성, 법익의 균형성, 제한의 최소성이라는 원칙이 지켜져야 한다.
구체적으로 행정 주체가 특정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일정한 수단을 동원함에 있어서는 목적과 수단(행정처분이나 처벌) 사이에 합리적인 균형관계가 유지돼야 한다. 기본권 제한이 목적에 부합하지 않을 경우, 기본권 제한으로 인한 불이익이 이로 인한 사회적 이익보다 클 경우는 비례의 원칙에 위배된다.
김영란법의 근본적인 목적은 공직사회 부패 척결이다. 하지만 법안은 언론사와 사립학교 등 민간영역까지 침범한다. 여기에 ‘배우자가 금품을 수수했을 때’ 의무신고 조항, 직무와 무관하게 금품을 수수했을 때 과태료 부과 등이 부정청탁 금지를 위한 유일한 수단인지에 대해서는 아직도 논란이 이어지고 있다.
결과적으로 김영란법을 현 상태로 방치한다면, 상호 모순된 법률을 운영하거나 헌법 또는 다른 법률을 뜯어고쳐야 하는 상황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법안 적용 대상의 형평성도 향후 보완해야 할 중요한 과제이다. 법제사법위원회 심사 과정에서 사립학교 재단 이사장과 이사도 법안 적용 대상에 포함됐지만, 국립의료기관과 민간의료기관, 국책은행과 민간금융기관, 언론사와 비보도 미디어업체간 관계에서 발생할 수 있는 형평성 문제는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농협과 수협을 비롯한 협동조합, 직능·분야별 협회, 기타 민간영역에 있지만 공공성을 띠거나 각 분야에서 권한을 행사하는 시민단체나 민간기관들은 모두 법안 적용 대상에서 제외됐다.
또 금액을 기준으로 형사 처벌 여부를 규정한 것이 ‘99만원 로비’, ‘뇌물 쪼개기’와 같은 탈법 사례를 유발할 소지가 있다.
공직사회에 대한 불신, 정치권에 대한 혐오가 팽배한 상황에서 김영란법 제정은 전 국민적 요구이자 현재 대한민국을 관통하는 시대정신이다. 하지만 지금과 같은 누더기법 제정은 부작용만 낳는다.
백 번 양보해서 이번 법안 처리가 국민 여론을 고려했을 때 불가피한 조치였다면, 앞으로라도 법안을 정비하고 보완해 ‘진짜 김영란법’을 만들어야 한다. 자신들의 기득권을 강화하는 게 국민의 눈치를 볼 일이지, 입법 취지에서 벗어난 법안을 바로잡는 것은 국민의 눈치를 볼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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