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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동초’ 윤석민, 어린이 웃음 되찾을까


입력 2015.03.14 07:35 수정 2015.03.15 11:33        데일리안 스포츠 = 김윤일 기자

프로 데뷔 후 영광 못지않은 시련 겪어

90억 계약 따내자 다시 한 번 논란 휩싸여

인동초(忍冬草). 혹독한 추위를 이겨내며 강인한 생명력을 갖춘 풀을 말한다. 온갖 시련에도 제 길을 꿋꿋하게 걷는 이를 일컬을 때 쓰는 말이기도 하다. 최근 KIA로 복귀한 윤석민(29)이 바로 그렇다.

윤석민은 지난 1년간 미국에서의 생활을 접고 최근 친정팀 KIA 타이거즈에 복귀했다. 조건은 4년간 90억원의 역대 FA 최고액이었다. 그는 MVP를 따냈던 과거가 있고 90억원을 손에 쥔 현재를 보내고 있다. 그리고 아직 20대 나이를 감안하면 창창한 미래가 기대된다. 윤석민은 분명 크게 성공한 야구 선수 중 하나다. 하지만 이와 함께 시련의 대명사로도 불린다.

윤석민은 특유의 어린이 웃음을 되찾을 수 있을까. ⓒ KIA 타이거즈

출발부터 순탄치 않았던 프로 생활

윤석민은 지난 2005년 KIA로부터 신인드래프트 2차 1순위(전체 6번)에 지명됐다. 당시만 해도 지명 순위가 너무 높았던 것 아니냐는 평가가 대부분일 정도로 야탑고 출신의 윤석민은 그리 주목받는 선수가 아니었다.

하지만 KIA 스카우트의 눈은 정확했음이 증명됐다. 윤석민은 데뷔 첫해부터 1군 마운드에 섰고 53경기에 나와 3승 4패 7세이브 평균자책점 4.29로 가능성을 내비쳤다.

2년간 불펜에서 활약하던 윤석민은 2007년 풀타임 선발의 기회를 잡게 된다. 시련과 불운의 시작이었다. 당시 윤석민은 3.78의 빼어난 평균자책점을 기록하고도 시즌 최다패(18패) 멍에를 떠안았다. 리그 최하위를 기록한 득점지원 때문이었다. 그리고 형편없는 득점 지원은 윤석민이 KIA 유니폼을 입은 내내 그를 괴롭힌다.

그래도 윤석민을 높게 평가하는 눈은 많았다. 그러나 그는 2008 베이징 올림픽 최종 엔트리서 탈락하고 만다. 당시 대표팀 지휘봉을 잡고 있던 김경문 전 두산 감독은 고민 끝에 애제자 임태훈을 뽑았다. 논란은 거세게 일었고 때마침 윤석민의 무실점 행진과 임태훈의 부진이 겹치며 우여곡절 끝에 대표팀에 승선했다.

윤석민은 2009년 처음이자 마지막 우승을 맛봤다. 팀 사정상 시즌 초에는 불펜을 틀어막았고, 후반기 들어 선발진에 합류했지만 등판 간격이 들쭉날쭉했다. 소화 이닝은 119.2로 규정이닝에 미치지 못했고, 당시 팀 내 에이스는 로페즈-구톰슨의 원투펀치였다. 우승 공헌도에 있어 윤석민의 지분은 그리 크지 않았고, 이는 선수 본인이 가장 아쉬워한 시즌 중 하나가 된다.

2010년은 여러 모로 고달팠던 한해였다. 무엇보다 최악에 가까운 득점지원으로 고작 6승만을 따내는데 그쳤고, 사구 논란으로 머리까지 숙여야 했다. 윤석민은 2010년 6월 SK전에서 9회 원아웃까지 1실점 호투를 펼쳤지만 구원투수 서재응이 승리를 날려버렸다. 그러자 분에 못이긴 윤석민은 라커룸에서 주먹을 내리쳤고, 이후 두 달 간 마운드에 설 수 없었다.

시즌 후반 마음을 추스른 윤석민은 마무리 투수로 보직을 바꿨지만 롯데전에서 홍성흔과 조성환에게 잇따라 사구(死球)를 내줘 논란에 휩싸였다. 결국 사직 구장에서 팬들 앞에 고개를 숙인 윤석민은 정신적으로 큰 충격에 빠졌고 탈 많던 2010시즌을 마쳤다.

영광도 있었다. 윤석민은 2011년 17승 5패 평균자책점 2.45를 기록, 투수 부문 4관왕과 함께 시즌 MVP를 거머쥐었다. 물론 그때에도 팬들의 평가절하가 공존했다. 무엇보다 충분한 휴식일을 보장받아 ‘표적 등판’이라는 말이 있었고, 껄끄러운 롯데전을 기피한다는 의혹이 있었다. 실제로 그해 윤석민의 롯데전 선발 등판은 단 한 차례(5.2이닝 10피안타 4실점 패전)에 불과했다.

윤석민은 MVP를 수상한 직후 해외에 진출할 수 있는 포스팅 자격을 얻었다. 하지만 선동열 감독을 영입하며 부활을 천명한 KIA 구단은 윤석민의 진출을 반대했다. 그렇게 2년을 보낸 윤석민은 2013시즌이 끝나자 FA 자격으로 메이저리그 문을 두들긴다.

볼티모어 벅 쇼월터 감독과의 사진은 추억으로 남게 됐다. ⓒ 연합뉴스

실패가 된 메이저리그 도전, 그리고 복귀

계약과정부터 순탄치 않았다. 그를 불러주는 구단은 없었고 스프링캠프가 시작되기 직전인 2월에 가서야 볼티모어와 계약했다. 마이너리그 거부권을 얻어냈지만 보장 금액보다 옵션 액수가 훨씬 3년 계약서에 사인했다.

마이너리그 트리플A에서 출발한 윤석민은 그야말로 처절한 시련에 부딪혔다. 거의 매 경기 피홈런이 나왔고 무엇보다 현저하게 떨어진 구속도 문제였다. 결국 그가 받아든 성적표는 4승 8패 평균자책점 5.74이었다.

급기야 볼티모어는 시즌이 채 끝나기도 전에 윤석민을 지명할당(방출대기) 조치했고 40인 로스터에서도 제외했다. 그리고 2015년에는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도 초대하지 않았다. 당연한 수순이었다. 마이너리그 타자조차 이겨내지 못하는 투수에게 빅리그의 문은 그리 쉽게 열리지 않았다.

윤석민은 남은 2년간의 계약기간을 해지하고 KIA 복귀를 결심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그의 FA 계약 규모가 논란의 화두로 떠올랐다. 현재 기량이 의심되는 상황에서 지나치게 많은 액수를 안겼다는 목소리가 대부분이었다.

윤석민은 메이저리그 도전 실패에 대해 “내 기량이 부족했기 때문”이라며 그 흔한 변명 한 마디 하지 않았다. 윤석민은 꿋꿋하게 훈련에 임하고 있다. 불펜 투구도 마쳐 곧 시범경기 등판도 앞두고 있다. 시련과 고난은 어쩌면 윤석민에게 숙명과도 같은 길일 수 있다. 인동초와 같이 항상 도전하는 자세의 윤석민이 보란듯이 재기해 어린이 웃음을 되찾을지 올 시즌이 기대된다.

김윤일 기자 (eunic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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