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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태환 올림픽 밀어주기…누구를 위한 외침인가


입력 2015.03.25 12:24 수정 2015.03.27 09:47        데일리안 스포츠 = 임정혁 객원칼럼니스트

'2016 올림픽 밀어주기' 주변의 욕심

명예 회복도 선례 남긴 뒤 생각해야

규정을 바꾸면서까지 박태환을 올림픽에 내보내야 한다는 그 외침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 데일리안 홍효식 기자

모두가 승리를 거둔 완벽한 게임이었다.

박태환(27) 관계자들과 대한수영연맹의 적극적인 변호가 그의 '약물 복용' 징계를 줄였다.

국제수영연맹(FINA)은 지난 23일(한국시간) 스위스 로잔 팰리스호텔에서 박태환의 도핑 청문회를 개최한 직후 '18개월 자격정지 징계를 확정했다'고 홈페이지에 밝혔다.

평소 '불화설'에 휩싸이며 제 갈 길을 가던 박태환 측과 수영연맹이 이례적으로 힘을 모아 고비를 넘겼다. 애초 2년의 자격정지까지 예상됐던 징계가 6개월 줄었다는 점에서 '성과'라는 표현을 써도 무방하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다. 지난해 9월 박태환의 몸에서 금지 약물인 테스토스테론(남성호르몬)이 나왔다는 사실 자체는 달라지지 않았다.

과거 FINA의 도핑 청문회가 모든 금지약물 관련 사태를 결과에만 집중해온 것도 같은 맥락이며 '금지약물인지 몰랐다' '내 의지가 아니었다' 등의 변명을 엄격히 차단하는 것이 이러한 문제를 대하는 전 세계의 분위기다.


'올림픽 밀어주기' 주변의 욕심이다

박태환은 수영 선수로서 내년 3월2일까지 자격이 정지됐다. 그래서인지 일부에선 내년 8월 열리는 리우데자네이루(브라질) 올림픽에 박태환이 출전할 수 있다고 하고 있다. 하지만 이는 현실에도 맞지 않을뿐더러 '영웅화'를 위한 욕심일 뿐이다.

내년 박태환은 28세가 되는데 수영계에선 적지 않은 나이다. 대부분의 수영 선수들은 23세를 넘으면 은퇴를 고심하기 시작한다. 박태환이 정상급 기량을 선보일 확률은 사실상 낮으며 자격정지가 풀리고 5개월 만에 세계적인 선수들과 겨루라는 것은 선수를 또 벼랑 끝으로 모는 처사다.

가장 높은 관심을 받고 있는 대한체육회의 규정도 걸린다. 체육회는 지난해 7월 국가대표 선발 규정 제5조(결격사유) 6항에 '체육회 및 경기단체에서 금지약물 복용, 약물사용 허용 또는 부추기는 행위로 징계처분을 받고 징계가 만료된 날로부터 3년이 경과하지 아니한 자'는 국가대표가 될 수 없다고 명시했다.

일각에선 이를 두고 '이중 징계'라고 하고 있지만 이미 만들어 둔 규정이 있는데 오로지 박태환만을 위해 이런 빗장을 푼다는 것은 한국 사회가 겪고 있는 '원칙의 흔들림' 현상을 스포츠에도 고스란히 가져오는 것이다. 억지로 스포츠 영웅을 밀어주는 비웃음거리밖에 안 된다.

물론 국제 스포츠계에서 이와 비슷한 규정이 폐기된 사례는 있다. 2011년 스포츠중재재판소(CAS)는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갖고 있던 '금지약물 복용으로 6개월 이상 징계를 받은 선수는 다음 올림픽에 출전할 수 없다'는 규정을 폐지하라고 판결했다.


명예 회복, 선례 남긴 뒤 생각해야

그렇다면 이런 사례를 국내에도 적용해 박태환을 위해 규정을 없애자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이미 3년 자격정지를 받아들이고 수영계를 떠난 선수가 있다. 박태환의 친한 동료이자 그에게 가려 '수영 2인자'에 머물렀던 김지현(27)이다.

김지현은 지난 23일 선수 신분을 잠시 내려놓고 공군 훈련소로 입대했다. 지난해 5월에 의사 처방에 따라 감기약을 복용했는데 도핑테스트에서 금지약물인 클렌부테롤 성분이 검출돼 한국도핑방지위원회(KADA)로부터 2년 자격정지 처분을 받았다.

김지현 또한 당시 약을 처방한 의사가 직접 청문회에 출석해 자신의 과실을 인정하는 등의 노력을 했지만 여론의 무관심 속에 조용히 군대로 사라졌다. 김지현과 박태환 모두 같은 수영 선수인데 유명하냐 아니냐에 따라 다른 규정을 적용할 수는 없다.

박태환의 진짜 명예 회복은 '선례'를 남기는 것이다. '박태환도 선수 생활 막판에 원칙을 지켰다'는 사례를 남기는 게 진정한 명예 회복이다. 꼭 국가대표와 멀어져 은퇴를 하라는 것이 아니다. 모든 징계를 받아들인 뒤 진짜 명예 회복을 위한 그 어떤 대회라도 출전을 한다면 수영을 순수하게 대했던 그때의 태도를 국민들도 인정할 것이다.


기량을 누가 욕망으로 키우나

박태환 사태는 또 하나의 '성역'에 작은 균열도 일으켰다. 여기저기서 '국위선양'이라고 영웅시하는 스포츠 선수들을 어떻게 볼 것인가 하는 문제도 이제는 진지하게 고민할 때라고 본다.

박태환의 약물 복용 고의성 여부를 떠나 그가 메달을 쌓아가면서도 정신적으로는 오히려 지쳐갔을 수도 있다. 노력 후에 얻은 기쁨은 생각보다 짧은 반면에 주변의 기대는 더욱 길게 정신을 압박했을 수도 있다. 옆에서 먼저 선수 개인의 욕망을 눈덩이처럼 굴리면서 언젠가부터 그에게 수영이 더는 행복하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사회학자 장-마리-브롬(Jean-Marie Brohm)은 현대 스포츠가 운동선수의 신체를 소외시킨다고 봤다. 운동선수의 몸을 주변에선 단지 운동을 위한 도구로 대한다고 지적한 것이다. 그는 이러한 신체 소외의 한 사례로 약물 복용을 꼽기도 했다.

규정을 바꾸면서까지 박태환을 올림픽에 내보내야 한다는 그 외침은 누구를 위한 것인지 궁금하다. 역시나 이번에도 '국위선양' '마케팅' '영웅' 등의 가면을 쓴 '돈'일까 싶어 씁쓸하다.

임정혁 기자 (bohemian1201@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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