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년전 연평해전을 되살리다①-김학순 감독 인터뷰>
"정치 색채 빼고 있는 그대로 절제하면서 찍었어요"
2002 한일월드컵 한국과 터키의 3·4위전을 앞둔 6월 29일 오전. 서해 북방한계선(NLL) 이남 연평도 인근에서 북한 경비정 684호가 남한의 고속정 ‘참수리 357’정에 기습 공격을 감행해 6명의 장병이 전사하고 18명의 장병이 부상을 입는 ‘제2연평해전’이 발발했다. 큰 희생을 치르며 NLL을 지켜냈지만 대다수의 사람들은 이날을 한일월드컵 3·4위전과 결승전이 치러진 날로 기억한다. 당시 목숨을 걸고 NLL을 사수한 장병들과 전사한 장병들의 유가족들만 2002년 6월 29일을 연평해전의 날로 기억할 뿐이다. 데일리안은 6월 호국보훈의 달을 맞이해 제2연평해전의 의미를 되새기고 있는 사람들을 만나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봤다. < 편집자 주 >
'참수리 357'정에 승선해 전투를 벌이다 숨진 6인의 장례식장. TV에서는 한일 월드컵 3·4위전과 결승전을 앞두고 환희에 찬 국민들의 모습과 함께 대통령이 한일 월드컵 결승전을 관람하기 위해 출국한다는 보도가 흘러나온다. 이 보도를 들은 윤두호 씨(고 윤영하 소령 부친)가 입을 꾹 다문 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TV를 노려본다.
24일 개봉을 앞둔 영화 ‘연평해전’ 후반부의 한 장면이다. “정치적인 영화”라고 공격당할 소지가 충분한 대목이다. “논란이 될 수 있는 장면을 굳이 왜 넣었나”라는 질문에 김학순 감독(로제타 시네마)은 “그 당시 상황 그대로를 보여 준 것 뿐”이라고 짧게 답변한다.
"당시 저도 월드컵을 보며 즐거워하던 사람 중 하나였습니다. 연평해전이 벌어진 그 다음날에는 금강산 관광도 그대로 예정돼 있었고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월드컵 결승전 관람을 위한 일정도 이미 정해져 있었죠. 하지만 그런 축제 기간 한편으로는 연평해전으로 인해 죽어나간 사람들이 있다는 겁니다. 단지 그 사실을 관객들에게 보여드리고 싶었어요."
김학순 감독은 지난 4일 ‘데일리안’과 인터뷰에서 영화 후반부에서 등장하는 김대중 전 대통령의 일본 방문 보도 장면에 대해 최대한 정치적인 색채를 빼고 사실 그대로를 보여주기 위해 고민을 거듭했다고 밝혔다. 영화 관계자에 따르면 해당 장면 삽입 여부를 두고도 내부적으로 많은 논의를 거쳤다는 후문이다.
김 감독은 “뭐가 옳고 뭐가 그르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상황이 있었고 판단은 관객들이 알아서 하라는 것이다. 한마디로 ‘알고 계십니까’ 이거다”라면서 “해당 장면은 ‘국방이 중요하다’ 이런 정답을 얘기하려한 것이 아니라 우리가 어떤 현실에서 살고 있는지 한번쯤 생각해보자는 것이었다. 이렇게 생각하다보면 국가와 사람의 소중함은 서서히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특히 김 감독은 해당 장면의 연출을 절제하는 것에 노력을 기울였다. 김 감독은 “해당 장면에서 어떤 대사라든가, 이런 많은 표현을 넣다보면 오히려 그것이 정치적인 이데올로기를 강조하는 셈이 될 것 같았다”면서 “연평해전은 예술영화이자 또 상업적인 영화이기 때문에 해당 장면의 표현을 절제해야 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이 영화를 정치적인 영화라고 선입견을 갖고 계시는 분들이 많은데 내가 이 영화를 시작한 이유는 자식을 잃은 유가족의 슬픔과 희생된 군인이라는 보편과 상식적인 생각 때문이었다”라고 덧붙였다.
김 감독은 2009년부터 본격적으로 영화 연평해전을 만들기 시작했지만 그동안 유독 많은 장애물을 넘어왔다. 그중에서도 부족한 자금으로 인한 압박은 항상 김 감독의 목을 조여 왔다.
하지만 크라우드 펀딩을 통해 총 세 차례에 거쳐 영화 제작 후원금이 모였다. 크라우드 펀딩에 4500여 명의 개인 및 단체가 참여해 영화 제작비를 충당해줬고 여기에 군 당국의 적극적인 지원도 영화가 완성되는데 큰 몫을 했다. 군 당국은 영화촬영을 위해 초계함, 고속정, 헬기, 촬영용 함정 등을 지원했다.
특히 해군 부녀회는 바자회를 열어 얻은 수익금 10억을 고스란히 영화 연평해전 제작비로 기부하는 등의 열성을 보였다.
김 감독은 “해군 부녀회 측에서 ‘연평해전은 해군의 이야기이고, 이런 일은 영화를 통해 알려야 한다’는 의식들이 퍼졌다”면서 “서울, 부산, 진해, 대전 등지에서 바자를 열었는데 1억 정도 모이면 많이 모이겠구나 생각했었다”고 말했다.
그는 “하지만 바자 수익금으로 10억이 모이는 상상도 못했던 일이 벌어졌다”면서 “이런 시기에 ‘정치적 영화’라고 투자를 꺼려했던 기업들도 하나둘씩 연락을 해오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이어 그는 "해군 출신이라는 것 때문에 사명감을 가지고 영화 제작을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내가 참수리 357정의 해군들과 같은 군복을 입었기에 연평해전도 남일 같지 않았다. 이와 같은 연장선상에서 천안함 영화도 언젠가 해야 할 중요한 프로젝트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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