괘씸 증폭? 동정 결집? 유승민 진퇴 주말 여론에 달렸다
당초 당 안팎으로 비판 받았지만 '거수기 논란' 상황 변모
당 내외로 '유승민 세력' 생기고 친박 등도 결정 기다려줘
국회법 개정안 논란을 맞은 유승민 새누리당 원내대표의 입장이 '사면초가'에서 '전화위복'으로 변모한 모습이다. 처음 논란이 터졌을 땐 당 안팎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상황이 바뀌어 유 원내대표는 '지지'를 얻고 있다. 다만 사퇴 여부를 두고 더 혼란을 겪을 경우, 당이 힘들어진다는 당 내외 여론도 커지고 있어 이번 주말을 기점으로 유 원내대표의 거취가 윤곽을 보일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유승민, 협상 잘 못하는 듯" 직격도 나왔지만...
당초 국회법 개정안 사태가 터졌을 때 유 원내대표는 '당청관계를 제대로 조율하지 못했다'는 이유로 당 안팎으로부터 지탄을 받았다. 하지만 박근혜 대통령이 지난달 25일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유 원내대표를 겨냥해 강경 발언을 던지고, 이후 유 원내대표를 재신임한 당 의원총회 결과를 청와대가 수용하지 않으면서 상황이 뒤바뀌었다.
박 대통령이 법에 대해 거부권 행사를 할 수는 있지만, 이에 대한 국회의 재의결 여부 자체에 대해 관여하려 하거나 의원들이 뽑은 원내대표를 찍어내려는 듯한 모습은 적절하지 않다는 반발의 목소리가 당 내외에서 나오기 시작한 것이다.
'삼권분립을 뒤흔든다'는 국회법 개정안 논란이 터졌을 당시 유 원내대표에 대한 의원들의 신뢰는 바닥에 떨어졌었다. 유 원내대표와 청와대 간 국회법 개정안을 둔 '진실공방'이 벌어졌을 때 의원들은 보통 청와대의 손을 드는 쪽이었다. 의원들은 유 원내대표가 국회법 개정안 통과를 두고 열린 의총에서 청와대가 "공무원연금법개정안 통과를 미루더라도 국회법 개정안을 연계해 처리하지 말라"고 했지만 자신이 설득, 당청 간 공감대를 형성했다고 전해 안심하고 본회의에서 찬성표를 던졌다며 유 원내대표를 비판했다.
특히 당시 여당 분위기는 국회선진화법 때문에 야당의 입장을 아예 배제할 수는 없지만, 유 원내대표가 각종 협상에 있어 너무 야당의 목소리를 수용해주는 게 아니냐는 불만이 있던 터였다. 한 초선 비례의원은 박 대통령의 거부권 행사 직전 기자와 만나 거부권에 대한 불만을 표하면서도 "유 원내대표가 협상을 잘 못하는 것 같다"고 직격하기도 했었다.
유 원내대표의 지난 4월 교섭단체 대표연설에 대해 반감 분위기도 있던 때였다. 유 원내대표는 박 대통령의 '증세 없는 복지'를 비판하는 등 박근혜 정부를 공개 비판했고 이에 "정치인 개인의 언급이라면 괜찮지만, 원내대표로서 적절한 처사는 아니었다"는 말들이 나왔었다.
박 대통령 '6.25 발언' 등 영향으로 '유승민 세력' 생겨
그러나 지난달 25일 박 대통령의 '6.25 발언'과 유 원내대표에 대한 재신임 의총을 청와대가 받아들이지 않는 것을 기점으로 상황이 변했다.
특히 당시 의총에서 박 대통령의 거부권을 존중해 국회법 개정안에 대한 재의결이 있더라도 표결에 참여하지 않기로 결정했음에도 불구하고 청와대가 당이 재신임한 유 원내대표를 공격하는 것은 "당을 좌지우지하려는 것"이라는 비난이 나왔다. 국회에 오랫동안 몸담은 한 여권 보좌진은 "당을 거수기화하겠다는 것 아니냐"며 "초등학교 때부터 삼권분립을 배우는 나라에서 대통령이 입법부를 수족처럼 부리겠다는 것"이라고 분노를 나타냈다.
당 안팎으로는 '유승민 세력'이 생겼다. 우선 원내에서 함께 일하고 있는 조해진 원내수석부대표, 이이재·이재영 원내부대표, 원유철 정책위의장, 김세연·김용태·황영철 정책위부의장, 민현주·이종훈 원내대변인 등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에 명분이 없다며 반대하는 목소리를 냈다. 원내대표 선거 당시 유 원내대표의 당선을 도운 유 원내대표의 지역 기반인 대구 지역 의원들(김희국·김상훈·윤재옥·홍지만·이종진 등)도 '유승민계'로 알려진다.
유 원내대표 사퇴 압박에 있어 친박(친박근혜)계와 청와대를 정면 겨냥하고 있는 '짤박(짤린 친박)'의 이혜훈 전 의원은 '탈박(탈친박)'한 유 원내대표와 통하는 부분이 있다. 두 인사 모두 당내 '경제통'이라는 점도 닮았다. 유 원내대표는 2002년 당시 이 전 의원을 이회창 전 한나라당(현 새누리당) 총재의 정책자문단 중 한 명으로 추천키도 했었다.
특히 이번 일로 유 원내대표는 자신의 이름 석자를 대중에게 크게 알렸다. 인지도에 따라 정치인의 생명이 결정되는 만큼 정가에서는 "정치인들은 '부고'를 제외하고 이름이 어디에든 거론되면 좋다"는 뼈있는 말이 있는데 유 원내대표가 이번 일로 이 같은 효과를 누린 것이다.
이번 사건이 터진 뒤 유 원내대표는 어느 때보다 언론에서 중요하게 다뤄졌을 뿐만 아니라 주요 포털사이트 실시간 검색어 상위권에 이름이 올랐다. 여론의 향방을 결정하는 네티즌들 대다수의 댓글은 유 원내대표의 손을 들어주는 내용이었다.
여론조사에서도 유 원내대표가 힘을 받았다. 지난 1일 '내일신문'이 밝힌 여론조사기관 '디오피니언'에 의뢰해 지난달 31일 전국 성인 800명을 대상으로 7월 정례여론조사를 실시한 결과, 유 원내대표가 사퇴해야 한다는 데에는 28.3%, 의총에서 추인한 만큼 사퇴할 필요가 없다는 57.3%였다. 같은 날 '머니투데이 더300(the300)'과 여론조사기관 '리얼미터'가 발표한 '19대 대선주자 국가과제 실현 적합도 6월 조사' 결과에서는 유 원내대표의 지지도가 0.4%(5월 지지도)에서 1.6%로 껑충 뛰었다.
유 원내대표는 지난달 29일 리얼미터가 발표한 6월 4주차 주간 조사 중 여권 차기 대선주자 지지도에서 김무성 대표(20.2%), 오세훈 전 서울시장(6.2%),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5.7%)에 이어 5.4%를 받아 4위를 차지했다. 이는 정몽준 전 대표(4.6%), 홍준표 경남도지사(4.3%)를 제친 것으로 이전에 비해 순위가 두 계단이나 상승한 것이다.
"사퇴 논란 빨리 정리해야"…여론 따라 곧 거취 윤곽 잡힐 듯
이 같이 유 원내대표를 '때릴수록' 유 원내대표의 '힘이 세지는' 분위기가 되자 친박계와 청와대도 유 원내대표의 '자의적 결정'을 기다리는 모습으로 선회했다. 박 대통령은 25일 이후 열리는 각종 회의 등에서 유 원내대표에 대해 언급을 하지 않았고 친박계 의원들도 유 원내대표의 결정을 기다리고 있다. 지난 2일 오전 최고위원회의에서 김태호 최고위원이 유 원내대표의 사퇴를 압박해 회의가 아수라장이 된 것을 두고 한 당직자는 "이렇게 되면 유 원내대표가 더 (압박 당했다는 명분이 생겨) 그만둘 수 없게 되는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친박계와 청와대가 국회법 개정안 재의결이 이뤄지는 오는 6일을 유 원내대표의 사퇴일로 보고 있는 가운데 유 원내대표는 어떤 입장도 내놓지 않고 오전 회의 참석 등 자신의 할 일을 담담히 하고 있다.
다만 유 원내대표의 사퇴 논란이 더 이상 진행됐다가는 당이 '분란의 늪'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는 여론 또한 힘을 받으면서 유 원내대표에 대한 거취가 조만간 결정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당 내외에서는 오는 14일이 김 대표의 취임 1주년인 만큼 그 전에 해당 논란이 정리되는 수순을 밟을 것으로 보고 있다.
특히 박 대통령이 좀처럼 유 원내대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할 기미를 보이지 않으면서 유 원내대표의 '명예로운 퇴진'으로 정리가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 이정현 최고위원 등 친박계 의원들은 비박(비박근혜)계 의원들을 '맨투맨'으로 만나 유 원내대표의 퇴진을 설득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1일 친박계 정우택 의원도 충청권 의원 10여명과 오찬 회동을 갖고 설득 작업을 한 것으로 전해진다. 이번 주말에도 이러한 '물밑 움직임'은 이어질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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