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포영화 잇단 참패…‘퇴마:무녀굴’ 돌파구 될까
진부한 스토리, 자극적 음향 등 흥행 실패 원인
'퇴마' 김휘 감독 "드라마 자체의 공포로 승부수"
한국 공포영화가 점차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어느덧 여름 극장가는 오락·액션 장르를 표방한 한국 영화들의 격전지가 됐고, 여기에 할리우드 블록버스터 영화들의 공세가 더해지면서 공포영화들이 비집고 들어갈 틈은 더욱 좁아졌기 때문이다. 여름철이면 떠오르던 공포영화들은 이제 대작들을 피해 봄과 가을 극장가의 틈새시장을 노리는 신세로 전락했다.
이처럼 찬밥신세가 된 건 끊임없이 이어진 흥행 실패 탓이다. 최근 몇 년간 개봉한 영화들이 추풍낙엽처럼 쓰러지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작품조차 찾기 어려워졌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투자 자체가 이루어지지 않고, 이는 곧 작품의 완성도 하락으로 이어지는 악순환이 계속되고 있다.
관객들의 수준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오히려 퇴보하고 있는 공포영화가 외면 받는 건 어쩌면 당연한 수순일지도 모른다.
올 여름에도 상황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6월 개봉한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이 흥행에 실패한 가운데 7월 개봉한 ‘손님’에 대한 관객들의 반응도 신통치 않다. 두 작품이 최근 개봉작들 가운데 비교적 좋은 평가를 받았음에도 관객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현실은, 오랜 시간 누적된 공포 장르에 대한 편견과 실망감이 얼마나 큰지 여실히 보여준다.
공포영화의 실패 공식
사실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한국 공포영화의 주가는 천정부지로 치솟고 있었다. 1990년대 ‘여고괴담’ 시리즈가 큰 성공을 거두자, 참신한 소재의 영화들이 쏟아져 나왔기 때문이다.
‘폰’ ‘장화, 홍련’ ‘가위’ 등은 개봉한지 10년이 훌쩍 넘었지만 여전히 영화 팬들 사이에서 회자되고 있다. 최근엔 TV를 통해 방영된 2004년 개봉작 ‘알 포인트’가 실시간 검색어에 오르내리며 큰 화제를 뿌리기도 했다. 한국 최초로 전쟁공포를 시도해 큰 반향을 일으킨 작품이다. 이들 작품은 한여름에 개봉돼 대작들 사이에서 쏠쏠한 흥행기록을 남긴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러나 이 지점에서 한국 공포영화는 더 나아가지 못했다. 우려먹기(여고괴담 시리즈)이거나 어디선가 본 듯한 작품(터널 3D), 뻔한 스토리와 예측 가능한 결말(맨홀) 등에 대한 비판이 끊이지 않았다.
과거 성공 공식에 집착하려는 제작사도 문제지만, 공포영화에 조예가 깊은 연출가나 작가가 부재했던 탓도 크다.
‘퇴마: 무녀굴’은 뭐가 다른가
하지만 여전히 웰메이드 공포영화에 목말라 하는 관객들은 많다. 볼만 한 작품이 없어서 안 보는 것이지, 공포영화 시장 자체 죽은 건 아니기 때문이다. 실제로 제작비가 적게 들어도 세상을 깜짝 놀라게 할 만한 한 방이 존재한다면 대박을 터뜨릴 가능성은 충분하다. 밑바닥부터 다시 시작한다는 마음가짐이 중요하다.
이제 올 여름 공포영화 마니아들이 기대할 만한 작품은 ‘퇴마: 무녀굴’ 정도만이 남았다. 여름 정면 돌파를 선택하며 자신감을 보인 이 작품의 생존 전략을 뭘까.
‘퇴마: 무녀굴’은 신진오 작가의 인기 공포소설 ‘무녀굴’을 원작으로 한 작품으로 신병으로 고통 받는 한 여자를 치료하던 퇴마사가 그녀 안에 있는 강력한 존재와 마주하게 되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룬다.
배우들의 면면이 그리 신선한 건 아니다. 2012년 ‘이웃사람’을 통해 호흡을 맞췄던 김성균을 비롯해 공포영화 이미지가 강한 유선과 차예련, 그리고 군에서 제대한 뒤 첫 영화에 도전하는 김혜성이 함께 한다. 하지만 살인마, 깡패 연기에 익숙한 김성균에게 교수와 퇴마사 역할을 맡기는 등 안정감 속에서도 변화를 꾀한 점이 인상적이다.
가장 관심을 끄는 건 제주 김녕사굴에 얽힌 실화를 바탕으로 한 작품이라는 점이다. 그간 ‘에나벨’ 컨저링‘ 등 외국영화들이 실화를 다뤄 주목을 받았지만, 국내에선 흔치 않은 시도다.
또 ‘하모니’ ‘해운대’ ‘심야의 FM’ ‘시체가 돌아왔다’ 등을 집필한 시나리오 작가 출신의 김휘 감독이 연출을 맡았다는 점은 한층 완성도 높은 드라마를 기대케 한다. 예측 가능한 이야기 전개에 김이 샌 관객들이라면 한 번쯤 눈여겨볼 만하다.
2013년 ‘무서운 이야기 2’에서도 기존 공포영화와 차별화에 역점을 뒀던 김휘 감독은 이 작품을 통해 “단순히 사운드나 특수효과로 깜짝 놀라게 하는 공포”라는 한국 관객들의 편견을 완전히 깨겠다는 각오다.
14일 CGV압구정에서 열린 제작발표회에서도 “드라마를 강화하면서도 장르적인 재미를 주는 영화로 만들었다”며 “‘퇴마: 무녀굴’은 초자연적인 현상이 주는 기본적인 두려움에 더해 영화 속 드라마가 관객들의 공포를 자극할 것이다”고 덧붙였다. 심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겠다는 것.
‘이웃사람’에서 이웃 간 실제로 벌어질 수 있는 공포감을 치밀하게 담아낸 것처럼, ‘퇴마: 무녀굴’ 또한 심리적 압박에 초점을 맞추는 김휘 감독의 연출력이 얼마나 빛을 발하느냐에 따라 작품의 성패가 달려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작품 흥행 여부는 관객들의 평에 달렸다. 작품의 완성도와 별개로 공포영화에 대한 편견을 뛰어넘을 수 있는 결정적 한 방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개봉 초반 어떤 방식으로 이슈몰이에 성공하느냐가 관건이 될 것으로 보인다.
잘 만들어진 작품 하나는 그 자체의 성공에 그치지 않고 한국영화 산업 전반에 광범위하게 영향을 끼치기 마련이다. 침체된 한국 공포영화 시장에서 ‘퇴마: 무녀굴’이 빼앗긴 공포영화 시즌을 되찾을 수 있는 나비효과로 이어질 수 있을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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