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가 인성이 부족해서 벌어졌다고?
<자유경제스쿨>인성교육은 '자유주의 원칙'의 교육으로
세계 최초라는 ‘인성교육진흥법’이 만장일치로 통과되고(2015년 1월 20일), 시행령이 발표됨에(2015년 7월 21일) 따라 이 땅에서 인성 교육이 활발하게 진행되게 되었다. 그동안 우리 사회를 정신적 혼란으로 몰고 갔던 여러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그 원인을 찾아 비극적인 사건이 재발하지 않아야 한다는 여론이 형성되고, 왕따와 학교 폭력, 세월호 비극, 보육원에서의 아동 학대와 같이 사회적 충격이 큰 사건들이 일어난 원인을 ‘인성 부족’에서 찾았다. ‘인성 부족’은 우리 사회에서 발생하는 바람직하지 않거나 비극적인 사건들의 근본 원인으로 지적되고, ‘인성 회복’은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만병통치약으로 제시되었다.
이러한 사회적 인식이 확산되어 사사건건 대립하던 국회가 만장일치로 ‘인성교육진흥법’을 제정할 수 있었다. 이 법의 목적은 ‘대한민국헌법’에 따른 인간으로서의 존엄과 가치를 보장하고, ‘교육기본법’에 따른 교육 이념을 바탕으로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하는 것이다.
이 법은 ‘인성교육’을 분명하게 명시하고 있다. ‘인성교육’이란 자신의 내면을 바르고 건전하게 가꾸고 타인·공동체·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데 필요한 인간다운 성품과 역량을 기르는 것을 목적으로 하는 교육이다. 인성교육의 목표인 ‘핵심 가치·덕목’에는 예(禮), 효(孝), 책임, 존중, 배려, 소통, 협동 등의 마음가짐이나 사람됨과 관련된 핵심적인 가치 또는 덕목이 포함된다. 그리고 ‘핵심 역량’이란 핵심 가치·덕목을 적극적이고 능동적으로 실천 또는 실행하는 데 필요한 지식과 공감·소통하는 의사소통 능력이나 갈등 해결 능력 등이 통합된 능력을 말한다.
이 법에는 국가와 지방자치단체는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기 위하여 인성교육에 관한 장기적이고 체계적인 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여 인성교육과 관련하여 국가의 책무를 명확히 밝히고 있다. 인성교육을 위해 국가가 해야 할 책무를 명시함에 따라 교육부 장관 소속으로 ‘인성교육진흥위원회’가 설립되고 일선 학교는 인성교육의 기준을 설정하고, 국가 및 지방자치단체가 개발한 ‘인성교육프로그램’에 따라 매년 인성교육 과정을 편성하고 운영해야 한다. 뿐만 아니라 ‘인성교육 인증제’가 도입되고 교사들의 인성교육 연수를 의무화하였다. 사범대와 교대는 예비 교사의 인성교육 역량을 위한 교과목을 만들어야 한다.
국회와 정부가 주도한 ‘인성교육진흥법’은 그것이 가지고 있는 직관적 호소력에도 불구하고 여러 형태의 찬반 논쟁을 야기하였다. 국가가 특정 인성을 설정하고 그것을 교육하는 것이 바람직한가, ‘건전하고 올바른 인성을 갖춘 국민을 육성하여 국가와 사회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는 항목이 ‘개인’을 ‘국가와 사회 발전’의 도구나 수단으로 설정한 것은 아닌가라는 철학적 문제부터, 교육부 소속의 ‘인성교육진흥위원회’가 인성교육에 대한 독점권을 갖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으며, 정치 차원에서 충분한 준비 없이 시행에 급급하여 부작용이 많을 것이라는 우려도 제기되었다.
이러한 우려를 넘어 ‘인성교육진흥법’의 근본적인 문제는 개인의 자발성과 책임성을 무시하고 국가가 나서서 모든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는 유토피아적 사고방식이다. 사회적으로 바람직하지 않은 사건이 발생할 때마다 정치권이 나서서 문제를 진단하고 처방하고, 법을 만들어 강제적으로 시행하려는 생각은 ‘정치 만능’, ‘입법 만능’ 나아가 ‘국가 만능’을 초래한다.
인성교육의 필요성을 제기한 학교 폭력이나 왕따, 세월호 참사, 유아 폭력 사건의 재발을 막아야 한다는 당위에 대해서는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그러나 이러한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이 ‘인성 부족’이고 ‘인성 교육’을 통해 이러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있다는 인식은 잘못이다. 사건의 원인은 다양하고 복잡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성 부족’으로 단순화하면 다른 여러 원인을 무시하게 되어 동일한 사건의 재발을 막을 수 없게 된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 세월호 참사의 원인은 각기 다르다. 다양한 원인을 무시하고 ‘인성’ 하나로 설명하고 인성교육을 통해 그것을 해결하려고 하는 것은 사건의 직접적인 원인들을 무시하여 사건 재발을 막지 못한다.
학교 폭력이나 왕따는 청소년 폭력에는 관용을 베풀어야 한다는 인식이나 폭력을 엄격하게 처리하지 않는 학교 행정이 원인일 수도 있고, 세월호 참사의 근본 원인은 한 해운회사의 독점 운행과 정부의 과도한 개입 때문에 발생한 불행한 사건일 수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사건들의 원인을 ‘인성’으로 돌려 ‘인성교육’을 통해 재발을 방지하려는 것은 제도 개선을 통한 문제 해결을 간과할 뿐만 아니라 원인 해명과 재발 방지에 대한 다양한 논의를 차단하고 그것을 국가가 독점하는 부정적인 결과를 초래할 수 있다.
자유 사회는 모든 문제에 대한 논의를 열어 놓아 다양한 해결을 시도할 수 있는 개방성을 보장해야 한다. 이러한 사실을 무시하고 문제의 원인과 해결 방안을 국가가 판단하고 국가의 강제력을 동원하여 해결하겠다는 것은 문제의 진단과 처방을 국가가 독점하는 것이다. ‘인성교육진흥법’은 이러한 ‘국가 독점’의 한 양상을 보여주는 것이다.
자유 사회에서 이상적인 인간상이 무엇인가는 국가가 설정할 수 없다. 이상적인 인간이 갖추어야 할 구체적인 인성을 세세하게 국가가 나열해서는 안 된다. 더구나 국가가 교육을 독점하여 인성이라는 이름으로 특정 가치를 학생들에게 주입하는 것은 인간의 잠재력과 능력을 국가가 정한 틀에 가두는 것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학생들을 특정 가치로 교화하는 것이 아니라, 자유롭게 사고하고 상상할 수 있는 능력을 키워주는 것이다. 자유 사회에서 모든 인간이 지켜야 할 근본적인 규범으로 교육해야 하는 것은 ‘타인에게 해를 끼치지 않는 것’이다.
글/신중섭 강원대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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