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의 대표적인 박물관이라고 하면, 지난 1978년에 개관한 ‘부산광역시립박물관’과 이 박물관의 분관이자 제2박물관인 동래구 복천동의 ‘복천박물관’을 들 수 있다. 부산광역시립박물관이 종합적 성격을 띠고 있다면, 복천박물관은 가야시대 고분군에서 출토된 대규모 유물을 중심으로 한 고고학 전문 박물관의 성격을 띠고 있다.
복천 박물관의 특징이라면 인근의 주택가가 훤히 내려다보이는 구릉지에 당시 발굴된 고분의 흔적이 고스란히 놓여 있다는 것이다. 특히 돔 양식으로 만들어진 야외전시관에는 가야시대의 고분이 발굴된 원형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흔히 가야는 신비의 나라라고 불린다. 가야는 독자적인 문자가 없었기에, 가야 인이 자신의 역사를 기록한 문서가 전해오지 않는다. 따라서 가야의 문화나 정치, 역사는 아직도 미지의 영역에 속하며 발굴된 유물을 통해 추론할 수밖에 없다고 한다. <삼국사기>등에서 보이는 가야제국에 대한 기록은 신화의 형태일 뿐, 가야의 정확한 연차나 국가조직, 사회상황을 전하는 자료는 없다. 다만 농경생산의 보급과 지석묘를 가진 사회형태 등에서 BC 1세기경에 초기 형태의 국가가 형성되었다는 것을 추측할 수 있을 뿐이다.
가야는 낙동강 하류지방의 변한 땅에 세워진 국가들의 통칭이라고 할 수 있는데, 구야·가라·가락 등 여러 가지 이름으로 전해져 내려왔다. 가야는 넓은 의미로 보아 낙동강 하류를 중심으로 중류지역까지 존재한 가야의 여러 국가를 칭하고, 좁은 의미로는 김해의 가야국이나 고령의 대가야국을 가리킨다고 할 수 있다.
대표적인 가야로는 금관가야(김해)·대가야(고령)·소가야(고성)·아라가야(함안)·성산가야(성주)·고령가야(함창) 등이다. 이들 가야에 관한 기록은 삼국유사, 삼국사기, 일본서기 등에 각각 다르게 나타나며 그 중 지명고증이 일치하는 것은 김해·함안·고성·합천·고령 정도라고 한다. 가야의 건국설화로 유명한 것이 김해 지역에 전해져 오는 김수로왕과 인도 아유타국에서 왔다는 허황후에 관한 이야기이다.
부산지역은 삼한시대에는 변한12국에 속하였으며, 삼국시대에는 화려한 가야문화가 꽃핀 지역이었다. 그 후 가야가 멸망한 후인 5세기 중기부터는 신라의 영역에 속하게 되었다. 복천동 고분군은 이런 과정을 잘 보여주는 대표적인 유적지인데, 부산의 끝자락인 노포동과 시내 중심가인 연산동에서 발굴된 고분군에서도 이런 역사적인 과정이 잘 나타나 있다.
복천동박물관은 1, 2전시실과 야외전시관, 고분공원으로 구성되어 있다. 1전시실에 가면 삼국시대의 모태가 된 삼한시대의 역사와 문화, 그리고 가야멸망 이후 부산의 상황을 알 수 있다. 또한 복천동고분군의 무덤 규모와 내부를 볼 수 있도록 모형 무덤이 정교하게 설치되어 있다. 특히 무덤을 제작하는 각종 과정이 미니어처 형식으로 전시되어 있는데, 고대 가야인의 복장을 한 인형들이 귀여운 모습으로 무덤을 만드는 모습은 신비로운 느낌을 준다.
2전시실에는 고분군에서 출토된 다양한 유물을 종류별로 전시하고 있다. 대표적인 유물로는 신라금관의 시원으로 추정되는 금동관이 있고, 철제로 만든 갑옷과 투구, 그리고 다양한 형태의 토기 등이 전시되어 있다. 전시된 유물 중에 가장 눈길을 끄는 것은, 철제 갑옷으로 무장한 전사가 역시 철제 갑주로 무장한 말을 타고 달려가는 모습을 형상화한 것이다. 그 전사의 생생한 눈을 깊숙이 쳐다보라. 신라의 침략에 맞서 조국을 구하고자, 낙동강 하류를 내달렸던 가야국 전사의 모습이 어느새 눈앞에 명징하게 떠오를 것이다.
복천박물관에서 가장 눈여겨 볼 곳은 역시 야외의 고분공원이다. 이 고분군은 6세기 이전에 부산 지역을 호령했던 지배자들의 무덤이다. 또한 가야문화의 번성과 신라로의 편입과정을 생생하게 보여주는 유적이기도 하다. 고분군의 규모는 해발 60m, 길이 700m, 폭 80~100m 정도이며, 당시 고분의 위치는 회양목으로 표시되어 있다. 지금은 고분군 자리 전체가 싱그러움을 듬뿍 안겨주는 푸르른 잔디밭으로 잘 조성되어 있다.
복천동 고분군은 지난 1969년 동아대학교 박물관이 1호 묘를 조사하면서 학계에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이후 본격적인 발굴 조사 결과 삼국시대 부산의 역사와 문화는 물론, 가야문화의 해명에 있어 중요한 고분군으로 확인되었던 것이다.
고분공원의 잔디밭에 가만 앉아서 눈을 감으면 아래쪽에서 불어오는 쾌활한 바람에 몸과 마음이 신선하게 젖어온다. 그리고 수 천 년 전, 이 땅을 스쳐 지나간 수많은 사람들의 흔적과 숨결이 어느새 내 삶의 궤적 속으로 들어온다. ´역사는 과거와의 끊임없는 대화´라는 경구는 언제 들어도 멋진 말임을 실감하게 된다.
데일리안 넷포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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