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은 핵놀음 불길로 개성공단 폐쇄...그게 정부탓?
<칼럼>대화냐 채찍이냐 막론하고 북은 핵개발 몰두
정치권, 정부에 대고 음모론 펼치는게 할 도리인가
한반도 상황이 긴박하게 돌아가고 있다. 북한이 1월 6일 제4차 핵실험을 강행한데 이어 2월7일 ‘우주개발 로켓’이라는 뻔한 거짓말을 앞세우고 또 다시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하자 한국정부는 유엔과 국제사회를 향해 강력한 대북제재를 결단해줄 것을 호소하면서 2월 9일 ‘개성공단 전면 중단’이라는 초강수를 꺼내 들었다.
북한이 크게 화를 냈다. 개성공단을 ‘군사통제구역’으로 선포하고 남측 인원들을 ‘추방’했다. 남아 있는 시설, 설비, 원자재, 제품 등에 대해서 동결조치를 취했다. 정부도 이 정도의 반발은 예상했겠지만, 어쨌든 남북관계는 2010년 천안함-연평도 도발 이후 최악의 상태로 빠져들고 말았다.
이토록 엄중한 시기에 또 다시 한국의 고질병이 재발하고 있다. 개성공단 중단 조치와 이 조치를 촉발한 북핵 문제의 책임소재를 놓고 정치권이 보혁(保革) 논쟁을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결론부터 말해 이 논쟁은 승자가 없는 부질없는 말싸움일뿐 아니라 시기적으로도 매우 부적절하다.
소위 ‘진보’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대북 압박정책이 북한의 핵문제를 잉태한 근원이며 이럴 때일수록 대화와 포용이 필요함에도 개성공단마저 철수하여 마지막 남은 대화의 끈을 끊었다면서 박근혜 정부를 비난하고 나섰다. 반면, ‘보수’를 대변하는 정치인들은 햇볕정책이 북한에게 핵을 개발하는 시간과 돈을 제공한 것이라고 주장하면서 개성공단 중단은 불가피한 조치였다고 항변한다.
하지만, 일찍부터 북핵 문제를 추적해온 전문가의 입장에서 보면 이런 논쟁은 한가하기 짝이 없는 철부지 놀음이다. 김일성은 6.15 전쟁 종전 직후부터 미국의 핵무기 때문에 중국과 러시아가 결정적인 도움을 주지 않아 적화통일을 이루지 못했다고 한탄했었다. 또한, 미국의 공군력 때문에 군사작전을 제대로 펼칠 수가 없었다고 인정했다. 그래서 김일성은 50년대부터 핵관련 인력을 양성하기 시작했고 60년대부터 핵시설을 건설했으며, 정부의 각 부처들에게 핵무장 사업을 최우선적으로 지원하라는 지령을 내렸다.
1980년대부터 부분 가동에 들어간 영변의 핵시설, 1990년대부터 시작된 플루토늄 생산, 이후에 실시된 핵실험과 장거리 미사일 시험발사 등은 그 이전 수십 년동안 투자해온 노력의 산물로서 어차피 일어날 일들이었다.
바꾸어 말해, 북한의 핵무장 및 투발수단 개발 사업은 한국에 진보정부나 보수정부가 들어서는 것과 무관하게 반세기가 넘는 세월동안 그 누구의 눈치도 보지 않고 죽기살기로 진행해온 것이며, 그 과정에서 한국이 펼치는 대북정책이 별 영향을 미치지 못했음은 물론 6자회담이나 미국의 압박도 제대로 먹히지 않았다.
이를 두고 “한국 정부의 진보적 또는 강압적 대북정책 때문에”라고 논쟁을 벌이는 것은 우스운 일이다. 햇볕정책 이전부터 진행되었던 북한의 핵무장을 놓고 “햇볕정책 때문에”라고 말하는 것은 맞지 않으며, 이보다는 “햇볕정책이 재정적으로 북한의 핵개발을 도운 측면이 있다”라고 하는 것이 객관적인 평가일 것이다.
마찬가지로, “압박정책 때문에”라는 주장도 옳지 않다. 이 주장이 맞다면 북한은 노무현 대통령의 서거로 한국에서 진보세력이 재기할 수 있는 여건이 조성되었던 2009년 5월에 핵실험을 하지 않았어야 했다.
때문에 지금은 여야(與野) 할 것 없이 모든 정치인들이 북핵을 만류하지 못한 대한민국의 미약함을 한탄하고 대한민국이라는 나라의 총제적 실패를 인정하고 힘을 모아야 할 시기이지, 부질없는 말싸움을 하고 있을 때가 아니다. 나라를 위하는 정치지도자들이라면 북한의 막가파식 핵무장 앞에 인질이 되고 있는 나라 안보를 걱정하고 현 상황을 타파하는데 지혜를 모아야 마땅하다.
북핵 문제를 체계적으로 공부할 겨를도 없이 이따금씩 참모진이 써주는 보고서를 읽는 것이 전부인 정치인들이 당리당략을 위해 북핵 책임론 공방을 벌이는 것 자체가 을시년스럽다. 정치인들은 “국회를 폭파하고 싶다”는 국민의 원성을 귀담아 들어야 한다.
정부의 개성공단 가동 중단 조치 문제도 그렇다. 정부든 국민이든 또는 진보든 보수든 이 나라 국민이라면 공단을 닫는 것이 제살을 도려내는 아픔을 수반한 것임을 모르지 않는다. 개성공단은 남북협력의 옥동자이자 남북관계의 허파이며, 동시에 위기시 폭발을 막아주는 완충장치이자 갑압(減壓)밸브였다.
5만 5천 명에 달하는 북한 근로자와 20만 명의 가족들의 생계를 도와주는 직장이라는 점에서 개성공단이 가지는 인도적 가치도 컸다. 그래서 개성공단은 2006년 이래 유엔안보리가 5개의 대북 결의를 채택하여 광범위한 대북제재를 가하는 중에도 지장없이 가동되어 왔다. 즉, ‘한반도의 특수한 상황에서 평화를 유지관리하기 위해 필요하다“는 논리로 면책(免責)을 받아온 것이다. 그렇다면, 정부가 이런 사실을 알면서도 중단조치를 취한 배경에 대해서도 이해를 해야 마땅하다.
사실 한국 정부는 중국과 러시아가 강력한 대북제재에 제동을 걸고 나서는데 대해 상심했고, 이들을 움직일 수 있는 마땅한 외교카드가 부재하다는 점 때문에 곤혹스러워했다. 국제사회를 향해서는 ‘돈줄 죄기’를 포함한 강력한 대북제재를 호소하면서도 스스로는 매년 1억 달러의 경화(硬貨)를 북한에 제공하는 모순에 대해서도 고민이 깊었다.
게다가 북한이 ‘수소탄 실험 성공’을 선언할 만큼 북핵 위협이 엄중해지는 상황에서, 핵개발을 위한 재정을 지원하는 핵심 부서인 노동당 39호실이 개성공단에서 벌어들이는 달러의 대부분을 관장하는 것을 무한정 방치할 수 없었다.
결국, 개성공단 중단 조치는 북핵 문제의 엄중함을 국제사회에 호소하고 강력한 대북제재를 이끌어내기 위한 외교적 울림을 만들기 위한 정부의 고육지책(苦肉之策)이었다. 그렇다면, 정치지도자들은 당분간 이 노력이 성과를 거둘 수 있는지를 지켜봐야 한다. 적어도 유엔 안보리가 추가적 결의를 채택할 때까지는 국민적 합의로 이를 뒷받침해주는 것이 순리이며, 그것이 대한민국이 외교력을 발휘하도록 돕는 길이다. 그러면서 테러방지법을 채택하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한다. 당리당략적 주장들을 반영하느라고 누더기가 된 법이 아니라 해당 기관들이 간명하고 신속하게 일할 수 있는 그런 법을 만들어야 한다.
요컨대, 지금은 정치권이 북핵 책임론이나 개성공단 중단 조치를 놓고 말싸움을 벌일 때가 아니다. 더욱이, 보수와 진보를 가리지 않고 모두가 개성공단의 폐쇄를 안타깝게 생각하는 상황에서 “통일의 명줄을 끊은 것”, “대결론자들의 주장을 수용한 것”, “총선을 앞두고 북한의 도발을 유도하기 위한 북풍전략” 등의 음모론을 펼치는 것은 도리가 아니다.
정부가 취한 조치를 놓고 냉정하게 득실을 분석할 기회는 나중에 얼마든지 있을 것이다. 북한이 핵실험과 미사일 발사로 한반도 안보와 세계 평화를 위협하지 않았다면, 개성공단이 문을 닫는 일은 결코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김정은 정권의 핵․미사일 놀음이 뿜어내는 화마(火魔)가 개성공단을 집어 삼킨 것이다. 이를 막아내지 못한 대한민국은 총체적으로 실패한 것이다. 전현 정부, 정당, 군, 언론, 전문가, 국민 등 대한민국에 속한 모든 사람들이 실패한 것이다. 정치인들은 이러한 국민적 자각 위에 거국적 안보체제를 다듬어나가는데 선도적 역할을 해야 마땅하다.
글/김태우 전 통일연구원장·동국대 석좌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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