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뷔 16년 만에 최악의 악역으로 전성기
직접 시나리오 등 연출한 영화 감독 데뷔
배우 남궁민이 때를 만났다. 물론 데뷔 16년이라는 세월이 간과할 수 있는 기간은 아니지만 그 내공이 드디어 빛을 발하는 듯하다. 그도 그럴 것이 그동안 다양한 작품을 통해 쉴 틈 없이 작품을 해왔지만 항상 2인자였고, 매번 짝사랑에 그쳤다.
드라마 ‘냄새를 보는 소녀’에서 섬뜩한 살인마를 연기하며 안방극장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남궁민이 이번에는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캐릭터를 완벽하게 소화하며 ‘대체 불가 배우’로서의 입지를 다지고 있다. 본인은 애써 손사레를 쳤지만 지금이야말로 ‘남궁민’이라는 배우의 최대 전성기라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그 인기는 오로지 남궁민 본인의 노력이었고, 제작진은 그의 노력을 빛나게 했다.
“‘리멤버-아들의 전쟁’은 배우 인생 터닝포인트 작”
인기리에 종영한 SBS 드라마 ‘리멤버-아들의 전쟁’에서 남궁민은 분노조절장애를 가진 재벌 3세 남규만으로 열연을 펼쳤다. 살인을 해도 죄책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악질 중 최악의 인물이지만 마지막엔 친아버지에게 마저 버림을 당하는 ‘희대의 악역’ 캐릭터를 고스란히 그려내며 시청자들의 손을 쥐락펴락 했다.
사실 ‘남규만’이라는 인물은 극 후반 퇴장할 것으로 설정됐었지만 20회 마지막에서야 스스로 목숨을 끊는 설정으로 마무리 됐다. 그 만큼 ‘남궁민의 남규만’은 극의 중심이었고 마지막까지 최후를 지켜보게 하는 인물로 키워냈다.
“사실 실제 성격과 반대적인 부분이 많아 극 초반 인물을 연기하는데 어려움이 따랐어요. 그렇게 14부까지 긴장의 끈을 놓지 않았죠. 서서히 그를 이해하게 됐고 그렇게 남규만으로 살아가면서 단순히 악한 인물로만 그려낼 수는 없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반부에는 그래서 다소 엉뚱한 부분도 있고 해서 많은 분들이 사랑해주신 거 같아요.”
대부분의 작품이 그렇 듯, ‘권선징악’의 빤한 결말이 주를 이루고 있다. 악한 인물은 벌을 받거나 회개하며 개과천선한다. 하지만 남규만은 홀로 목숨을 끊으며 마지막까지 악역으로 남았다.
이 엔딩 역시 남궁민과 연출의 합작이었다. “적정선의 결말”이라며 만족을 표한 남궁민은 “감독님과 약속했던 부분이었다. 결말에 반성하는 악역이 아니길 바랐다. 악행을 저지르던 사람이 갑자기 마지막에 회개하는 인물은 도저히 이해가 안됐다. 서정적 자살이 약간 어색하긴 했지만 적정선이었고 남규만의 결말로 흡족했다”고 털어놨다.
마지막 결말까지 남규만 만의 색깔로 담아내고자 했던 남궁민의 노력은 고스란히 캐릭터에 녹아났고 시청자들은 악플 보다는 연민을, 그러면서 배우 남궁민에게는 천생 배우라는 극찬과 함께 박수를 보냈다. 어느 작품에서 보다 화려한 퇴장이었다. 때문에 감회가 새로울 법도 했지만 남궁민은 “그저 또 하나의 작품을 완성한 것”이라며 고개를 낮췄다.
“사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유독 많이 들었던 말인 거 같아요. 아마도 많은 분들이 봐주시는 드라마다 보니, 칭찬의 말씀도 많았던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갑작스레 연기가 늘었거나 어떠한 계기로 연기를 잘하게 되거나 한 건 없어요. 저는 사람들이 안 보는 곳에서도, 잘 보이는 곳에서도 작품을 쉬지 않고 했습니다. 이번에는 다만 임팩트가 강했기 때문이겠죠. 비전도 없고 시놉시스상에도 5번째 인물이었어요. 비중이 아닌, 도전해보고 싶은 캐릭터였기에 출연했고 좋은 결과가 나와 너무나 만족스럽습니다.”
남궁민의 연기를 보면, 2001년 영화 '번지점프를 하다'를 본격적으로 2004년 KBS1 '금쪽같은 내 새끼', 2006년 영화 '비열한 거리', 2007년 영화 '뷰티풀 선데이', 2010년 KBS2 '부자의 탄생'까지의 남궁민과 2011년 MBC '내 마음이 들리니' 이후의 남궁민으로 나뉜다.
‘내 마음이 들리니’ 전에도 캔디형 여주인공의 뒤를 묵묵히 지켜주는 실장님과 친구를 배신하는 악역, 그리고 재벌 2세 등 다양한 캐릭터를 소화했지만 ‘내 마음이 들리니’ 이후 남궁민은 ‘고운 청년’에서 벗어나 드디어 ‘색깔 배우’로 입지를 다지기 시작한다.
2012년 SBS '청담동 앨리스'와 2013년 MBC '구암 허준', 2014년 tvN '로맨스가 필요해 시즌3' JTBC '12년만의 재회: 달래 된, 장국' tvN '마이 시크릿 호텔', 그리고 드디어 악역의 본색을 확실하게 드러낸 2015년 SBS '냄새를 보는 소녀'와 KBS2 '리멤버'를 통해 ‘남.궁.민’이라는 이름을 각인시키기 시작했고 이제는 당당히 ‘연기파 배우’의 대열에서 이름을 꼽히게 됐다.
“‘내 마음이 들리니’를 마치고 2년 정도를 쉬었어요. 그러면서 슬럼프라면 슬럼프일까요. 나름 고민의 시간을 보냈죠. 그 시기를 거치면서 배우로서도, 작품을 선택하는데 있어서도, 많은 것을 얻었어요. ‘나를 내려놓자. 계산이 아닌 어떠한 배역이라도 그 안에서 충실히 연기를 하자’였어요. 작품을 선택하는데 기준은 없어요. 다만 내가 무언가를 얻는 작품 보다는, 꼭 필요한 인물로 그려낼 수 있도록 도전할 수 있는 작품이었으면 해요. 그런 의미에서 ‘리멤버’는 좋은 작품이었고 제 연기 인생에 터닝포인트가 됐죠.”
분명한 건 남궁민의 말대로 ‘리멤버’는 남궁민이라는 배우에 있어서 남다른 의미 있는 작품이 됐고, 그렇게 그 역시 또 하나의 필모그래피를 완성했다. 데뷔 초 감독들로부터 “곱상하게 생긴 놈이 무슨 악역을 하겠냐”, “연기를 왜 이렇게 못하냐. XXX야”라며 구박과 온갖 욕을 다 들었고 어설픈 ‘리틀 배용준’으로 악플 세례도 받았다. 그랬기에 그는 더 연기에 몰입했고, 연기로 인정받는 배우가 돼야겠다고 다짐했다.
하지만 여전히 곱상한 외모로 실장님이나 재벌 2세에 만족해야 했고, 그렇게 슬럼프를 겪었다. 그러나 2년 간의 시간을 보내면서 심적으로나 연기력으로나 성장했고 매 작품을 통해 초반의 우려와는 다른 캐릭터를 그려내며 ‘역시 남궁민’ ‘믿고보는 남궁민’으로 자리잡아 가고 있다.
그러면서 배우 남궁민을 뛰어넘어 영화 감독 남궁민으로서의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 직접 시나리오, 각본, 연출까지 맡은 영화 ‘라이트 마이 파이어’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이동휘 오정세 등이 출연한 작품으로, 남궁민은 이날 취재진에게 예고편을 최초로 공개하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작품을 가리기 보다는 작품을 보는 눈을 키우려고 노력 중이에요. 그것이 제 숙제죠. 저는 스스로에게 참 인색합니다. 그런 면에서 ‘리멤버’는 분명 의미가 있죠. 스스로에게 '이만 하면 잘했어'라고 칭찬해주고 싶은 작품이니까요. 영화 역시 내게 좋은 평가를 내리게 된다면 장편도 도전해볼 생각입니다. 연기자 출신 감독에 대한 안 좋은 편견을 깰 수 있는 기회가 됐으면 좋겠어요. 오늘도 편집실에서 밤샘 작업을 해야 해요.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을 할 수 있는 지금이 가장 즐겁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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