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생부 파문 덮기' 친박도 비박도 ‘김무성’이 필요하다
친박, 청와대 공천 개입 논란 구설 오를까 우려
비박, ‘얼굴’ 없으면 총선 불리 셈법 반영된 듯
새누리당 공천 살생부 논란이 29일 일단락됐다. 지난 26일부터 나흘간 일촉즉발의 상황까지 치달았지만, 친박(친박근혜)계도 비박계도 논란을 덮기로 했다. 논란의 중심에 있던 김무성 대표와 정두언 의원도 ‘거짓말 주체’에 대해 타협한 모양새다. 이를 두고 친박계와 비박계 모두 김 대표가 필요한 상황이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는 분석이다.
논란의 발단은 공천 살생부, 일명 지라시가 26일 정가에 퍼지면서다. 정 의원은 김 대표로부터 청와대 의중이 담긴 공천 살생부에 대한 내용을 김 대표에게 들었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김 대표는 ‘소문을 전했을 뿐’이라고 부인했지만, 친박계는 공식적인 사과는 물론 퇴진론까지 언급했다.
김 대표를 향한 친박계의 공방이 거세지자, 당은 의총을 열고 김 대표와 정 의원의 ‘대질심문’을 하기에 이르렀다. 의총 직후에는 최고위원회의를 열어 정 의원과 당 지도부의 보다 깊은 진실 공방이 이뤄졌다. 정 의원은 최고위가 끝난 후 “이상한 사람이 되는 것 같다”라고 말했다. 큰 소리까지 오간 최고위는 시작한 지 약 2시간 만에 종료됐다.
당은 결국 김 대표의 공식 사과와 동시에 논란을 덮기로 했다. 김 대표는 “당 대표로서 국민과 당원에게 심려 끼친 점에 대해 사과드린다”고 했다. 그러면서 “공관위의 공정성이 저해되지 않도록 한다, 공천과 관련해 공정성을 저해하는 일체의 언행에 대해 클린공천위가 즉각 조사해 엄중하게 처리하도록 한다는 최고위의 결정사항을 저는 수용하겠다”라고 덧붙였다.
친박계 의원들과 비박계 의원들 모두 ‘총선을 앞두고 민생이 중요한 상황에서 당내 갈등을 보이는 것은 옳지 않다’라는 분석이다. 하지만 속을 들여다보면 두 계파 모두 김 대표가 필요한 이해득실을 따졌다는 시각이 강하다.
친박계 입장에서는 청와대의 공천 개입으로 비칠 수 있는 이번 논란과 관련해 각종 구설에 휘말리는 걸 원치 않았을 것이다. 친박계가 김 대표를 전방위적으로 압박할 경우 결국 살생부 진원지로 추측되는 청와대의 공천 개입 의혹을 다시 한 번 더 꺼낼 수밖에 없다는 것. 이 경우 집권 4년 차로 접어든 박근혜 정부를 향한 비난 여론이 강해지는 것은 물론, 더 나아가 레임덕 유발 요소가 될 수도 있다는 말이 나온다.
익명을 요구한 정치평론가는 29일 ‘데일리안’과 통화에서 “사실이 아닐지라도 공천개입에 청와대가 오르내리면 집권 하반기 정책 추진 동력이 약화될 수 있다는 우려가 작용한 것”이라며 “그래서 청와대도 공식 입장을 삼가고 있지 않은가”고 반문했다.
김 대표가 ‘얼굴’인 비박계는 더욱 절실하다. 당 지도부에 비박계 인사가 비교적 적고, 공관위까지 친박계 인사들로 대거 포진된 만큼 김 대표가 없을 경우 총선 과정에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친박계가 김 대표 ‘찍어내리기’에 열중할 때 일부 비박계 의원들이 “흔들지 말라”라고 경고한 것도 그런 차원에서 볼 수 있다.
특히 두 계파 모두 김 대표 대신 ‘총선 얼굴’로 내세울 수 있는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것도 이유 중 하나로 꼽힌다. 총선을 40여 일 남겨둔 급박한 상황에서 김 대표를 대신할 ‘거물급’ 인물이 쉽게 나서기는 어려울뿐더러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성하는 등의 물리적 시간이 부족하다.
새누리당의 한 관계자는 통화에서 “양쪽 다 이유는 다르지만 김 대표 아니면 내세울 만한 대안이 없는 상태”라며 “갈등이 극으로 치달을 경우 승부를 봐야 하는데 그런 상황을 안전장치 없이 일으키진 않을 것”이라고 했다.
다만, 이번 논란 수습이 계파 갈등을 완전히 봉합한 것은 아니라는 시각이 지배적이다. 공천 결과가 아직 나오지 않았을뿐더러 총선, 그리고 7월 전당대회까지 갈등의 뇌관이 곳곳에 남아있다. 김 대표와 가까운 한 인사는 통화에서 “김 대표의 사과로 매듭져졌지만, 사실 이번엔 한 번씩 서로 간 본 것”이라며 “친박계가 상향식 공천 등 김 대표의 ‘원칙’을 무너뜨리면 또 갈등이 불거질 것은 불보듯 뻔하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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