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인 요인, 초반 실패와 심리적 압박감
실수 줄이고 창의적 기보에 기대
“역사적인 순간이다. 알파고의 수준이 이 정도일줄 몰랐다.”
인류 최대 바둑기사 이세돌 9단과 구글 인공지능(AI) 프로그램 ‘알파고’의 첫 대국 결과, 관계자들은 물론 전문가들 사이에서도 놀라움과 충격이 이어졌다. 이세돌 9단을 꺾을 정도의 알파고의 판단력과 진행 능력에 감탄사가 이어졌다. 승부를 자신했던 이세돌 9단이 첫 대국에서 알파고에 불계패를 당하면서 남아있는 4번의 경기 전망은 더욱 예상하기 어려워졌다.
◇ 어깨 힘 너무 들어갔나? 실수 뒤집지 못해
이세돌 9단은 9일 서울 포시즌스 호텔에서 알파고와 ‘구글 딥마인드 챌린지 매치’ 1국을 치뤘다. 흑돌을 잡은 이세돌 9단은 초반부터 변칙 수를 두는 대범함을 보이기도 했다. 일부 해설가들은 “썩 좋다고 보기 어려운 수를 뒀다”면서도 “예상치 못한 수를 두는 것은 알파고를 시험하기 위함인 것 같다”고 풀이했다.
그러나 알파고는 치밀하게 계산된 최적의 수로 대응했다. 특히, 경기 후반으로 치닫을수록 인공지능답지 않게 우변에 과감하게 침투하는 수(102수)를 보이며 승기를 뒤집었다. 알파고의 초반 공세를 막아내며 중반까지 우위에 있던 이세돌 9단이었으나, 알파고의 승부수에 당황함을 감추지 못했다.
결국 이 9단은 장고를 거듭하며 맹렬히 추격했지만, 마땅한 대응책을 찾지 못하고 186수만에 항복을 선언했다. 이세돌 9단은 양쪽의 집계산이 분명해지자 4시 30분쯤 돌을 던지면서 패배를 인정했다.
전문가들은 이 9단의 심리적 압박감에 따른 실수를 패배요인으로 꼽았다. 바둑 TV에서 해설을 한 유창혁 9단은 “오늘 이세돌9단이 낯선 상대와 대국하면서 긴장했던지 평소보다 더 많은 실수가 나왔다”고 지적했다.
이세돌 9단은 “초반의 실패가 끝까지 이어졌다”며 “예상보다 알파고가 대국을 풀어가는 능력에 놀랐다. 특히 승부수(102수)가 나온 것을 보면 남은 대국의 승률은 5:5가 되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밝혔다.
◇ ‘인간’적인 바둑, 남은 승부 가를까
이세돌 9단이 알파고에 첫 패배하면서 남은 대국의 승부 전망도 분분하다. 앞서, 알파고는 유럽 바둑 챔피언 판후이 2단과의 대결에서 첫판에서 승리를 거둔 뒤, 연이어 5판도 이기며 강세를 이어갔다. 이후 지난 5달간 온갖 기보를 익힌 것으로 알려졌다. 이같은 맥락에서 전문가들은 상대방의 경험이 없는 상황의 경우 전체 흐름을 가늠할 첫 대국이 가장 중요하다고 분석하기도 했다.
후반부로 갈수록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의 데이터를 쌓아가기 때문에 초반에 승부를 잡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그러나 첫 번째 대국에서 이 9단이 패배하면서 남은 대결의 승리도 불투명해졌다. 이 9단 스스로도 경기 시작전에는 승부 확률을 ‘5:0’이라고 자신했지만, 패배 이후 ‘5:5’로 정정하기도 했다.
그러나 아직 포기는 이르다는 목소리도 높다. 이세돌 9단이 초반에 다소 긴장해 변칙수나 실수가 잦았던 만큼, 이후 대국에서는 평소 프로기사들을 상대하듯 편안한 마음에서 바둑을 두면 좋은 기보가 나올 것이라는 예상이다.
치밀한 알파고를 꺾기 위해서는 인간의 창조적 능력을 십분 활용한 지금까지는 볼 수 없었던 이 9단만의 새로운 기보가 결정적이라는 의견도 있다. 단, 인간의 단점인 심리적 압박감을 잘 다스리는 것은 남은 대국에서 이 9단이 풀어야 할 숙제이다.
공개 해설을 맡은 김성룡 9단은 감정면에서 알파고가 유리했었다고도 분석했다. 김 9단은 “프로 기사는 좋은 점이 있고 있고 나쁜 점이 있을 때 수의 흐름을 따라 다음 수를 놓는데, 알파고는 몇 번의 실수에도 냉정함을 유지해 최적의 수를 뒀다”고 설명했다. 이세돌 9단은 “패배가 충격적이긴 하지만 즐겁게 경기에 임했다”며 “앞으로의 남은 바둑 대결이 기대가 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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