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 총선 뜨거운 현장을 가다-서울 종로>
"정세균, 더 맡겨도 믿음직" vs "대권주자 큰인물 키워야"
20대 총선 '카운트 다운'이 시작됐지만, 표심은 여전히 부유(浮遊)하고 있다. 선거판을 주도할 이슈의 부재, 정치권 전반에 대한 불신 상승으로 부동층만 30%에 이르는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역대 어느 선거보다 격전지가 늘어나고 있다. '뚜껑'을 열어보기 전엔 그 누구도 승패를 확신할 수 없다는 것. 이에 데일리안의 정치부 기자들이 20대 총선에서 가장 뜨거운 관심 지역을 직접 찾아가 현장의 목소리를 들어보았다. < 편집자 주 >
"선거요? 우리 개 산책시켜야해서 바쁜데..."
'정치 1번지'란 말이 무색했다. 7일 종로구 평창동 거리에서 만난 50대 남성은 '선거'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에이"라며 고개를 돌려버렸다. 질문조차 받고싶지 않다는, 짧지만 분명한 의사표시였다. 단번에 거절한 게 못내 미안했던지, 아직 자리를 뜨지 않은 기자를 향해 "뭔 대답을 못줘서 미안한데 다른 사람들한테 가서 물어보라. 나는 정치라면 아주 질색"이라고 했다.
평창길 인근 상가 주인인 한 중년 남성도 "선거 홍보하려고 온 사람이냐"고 물으며 대뜸 경계심을 드러냈다. 질문 취지를 설명하자, 횡단보도에 서 있는 행인들을 가리키며 "아 나는 잘 몰라서, 저기가서 한번 물어보라. 난 관심이 없다"고 잘라말했다.
정치 불신과 무관심이 위험수위에 다다른 속에서 '그래도 종로'라는 인식에 기대기엔 민심의 벽은 너무 높았다. 이 지역엔 현역 의원이자 당 대표를 지낸 더불어민주당 정세균 후보와 전직 서울시장인 새누리당 오세훈 후보가 초박빙 승부를 벌이고 있지만, 주민들에겐 '먼 얘기'였다. 화정박물관 건너편 정류장에서 버스를 기다리던 유모 씨(57.여)는 "투표요?"라고 되물은 뒤 "별로 안하고 싶은데. 맨날 지들끼리 싸움질이나 하고 거기 우리 세금 쓰고. 하고싶은 마음이 없다"고 다짐하듯 말했다.
누구에게 표를 줄지 결정했느냐고 물었다. 유 씨는 한숨처럼 짧은 웃음을 내뱉으며 "옛날에야 모이면 선거 때 누구 뽑는다, 누구 뽑는다 이런말 했지만, 요새는 뭐"라며 "선거해서 뭐가 달라지는지 모르는데 누가 가서 그걸 하고 싶겠나. 그냥 짜증나는거지"라고 푸념하듯 답했다. 후보 선택을 떠나, 투표장에 갈 마음 자체가 생기지 않는다고도 했다.
주택가 초입에서 반려견 두마리를 데리고 나오던 60대 남성을 만났다. 투표를 할 계획인지 묻자, 그는 반려견을 쳐다보며 잠시 침묵을 지킨 뒤 "잘 모르겠다"고 했다. 여야 후보들의 공약을 봤느냐는 질문에는 "안 봤다. 관심이 없어서 아직 누구 뽑을지 생각을 안해봤다"고 답했다. 후보들에 대한 평을 물으려 하자, 그는 "나 얘네들 산책시켜야한다. 병원도 들러야하고"라며 서둘러 발길을 옮겼다.
"오세훈은 안좋은 일로 시장 그만둔 사람 아닌가요"
이날 오후, 정 후보는 대형 유세트럭 대신 좁은 골목도 다닐만한 소형차에 올라탔다. 주변 차들에 불편함을 주지 않으면서도 주택가의 주민들을 만나는 데 용이하다는 판단에서다. 청바지와 유세 점퍼 차림의 정 후보가 지지를 호소하며 지나간 뒤, 40대 여성을 만나 표심을 묻자 "공약도 확인했고 마음 정했다"며 "오세훈 씨는 안 좋은 일로 그만둔 분이라고 알고있다"고 답했다. 이어 "문제 일으킨 사람이 우리지역 의원을 맡는 건 싫다. 믿음직하고 무게감 있는 분이 됐으면 좋겠다"며 정 후보에 대한 지지 의사를 드러냈다.
구립 어린이집 옆 놀이터에서 어린 자녀들과 산책 중인 젊은 엄마들과 마주쳤다. 3세, 6세 아이를 둔 주모 씨(34.여)는 "지금 정세균 의원이 현역인 건 알고 있다. 특별히 흠이 있거나 문제있는 분이 아니라서 계속 맡아도 괜찮은 것 같다"며 "오세훈 씨는 일단 종로 사람이 아니고 강남 사람 아닌가. 그리고 서울시장 하면서 중간에 그만둔 안좋은 이력도 있고"라고 했다. 어린 아기를 안고 있던 또다른 30대 여성도 "오세훈 씨는 그리 좋은 분 같지는 않다"고 거들었다.
특히 두 여성은 "투표는 할 거다. 남편도 꼭 투표는 하기로 했다"면서도 "근데 오세훈 씨가 '새누리당'을 업고 나오기 때문에 당선될지도 모르겠다"고 내다봤다. 후보 개인에 대한 평은 정 후보에 비해 뒤쳐지지만, 여권 지지층에서 정당을 보고 표를 주지 않겠냐는 것이다. 다만 "아이들 밥주는 것 때문에 안좋게 그만둔 것은 다들 알고 있지 않겠느냐"고 덧붙였다.
'대권주자 오세훈'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적지 않았다. 지역구 발전보다는 본인의 대권가도를 위한 방향으로 무게가 쏠릴 거란 우려에서다. 창신동에 거주하는 50대 여성은 "오세훈 씨는 이미 붙은거라 생각하고 얼굴도 잘 안보이더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어 "우리동네 국회의원 선거하는 거지 대통령선거나 인기투표 하는 건 아니다. 그렇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동숭동 소재 어린이집에서 어린 딸을 데리고 나오던 37세 여성은 "누구 찍을지는 정했다. 나는 여기 산지 3년정도 됐고 우리 어머니는 종로 토박이신데, 정세균 의원 좋아하시더라. 야당인데도 정세균 씨는 오히려 어른들에게 평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젊은사람들한테 오세훈 후보는 더 안 좋다. 그 분이 한강르네상스 이런 거 사업만 벌여놓고 제대로 수습을 못했던 모습이 있기 때문에"라고도 했다.
다만 3040에게 '강남출신'에 대한 거부감은 크지 않아 보였다. 혜화역에서 만난 30대 후반 남성은 "젊은 사람들은 여기 출신이냐 아니냐는 별 문제가 아닌 것 같다. 나도 그렇고, 일 잘하고 괜찮은 사람이면 되는 거 아닌가"라며 "그것보다는 오세훈 시장 시절에 업적이 안좋고 부정적인 모습으로 많이 기억됐는데, 그것때문에 안 좋게 본 것이지 출신때문은 아니다"라고 말했다.
대학생인 김모 씨 역시 "출신이나 지역 이런건 별로 신경 안쓴다"며 "오세훈이 유명하긴 하지만, 너무 화려한 것만 좇다가 한번 크게 혼난 사람인데 또 맡기는 건 좀 아닌 것 같다"고 밝혔다. 또 "정당을 보고 뽑는 것도 솔직히 크다. 오세훈이든 누구든 새누리당한테는 표를 주고싶지 않다"고 덧붙였다.
정 후보 측은 선거 전까지 의정활동 기간의 공약이행률(83.6%)을 기반으로 '약속을 지키는 후보'임을 강조하는 한편, 도시재생산업 완결과 신분당선 착공 등 종로와 주변 지역을 모두 살피는 '품격있는 정치'를 강조함으로써 표심을 다시 한 번 붙잡겠다는 전략이다. 캠프 관계자는 "종로도 정치 불신이 많이 높아져서 예전같지가 않다. 분위기나 여론을 봤을 때 정 후보쪽으로 많이들 기울었다. 다만 투표율이 문제"라며 "총선에서 처음 사전투표를 하는 만큼, 젊은층이나 적극적 투표층의 참여율이 중요하다. 투표에 참여하도록 계속 독려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대권후보 할 사람인데, 큰 인물은 종로에서 키워줘야지"
하지만 '스타 오세훈'은 여전히 건재했다. 특히 주부들의 지지는 단연 압도적이었다. 서울시장 경력을 바탕으로 '일 잘하는 후보'를 앞세운 데다 유권자들에게 호감을 살 만한 외모도 표심을 잡는 데 단단히 한 몫을 하고 있었다. 실제 현장에서 만난 주민들의 반응이 이를 증명했다.
이날 오후 오 후보가 유세를 위해 창신3동 주민센터 앞에 나타나자, 길을 걷던 대다수의 주민들은 오 후보에게 먼저 다가와 반가움을 표시하며 손을 내밀었다. 일부는 사진촬영을 요구키도 했다. 젊은 학부모들의 지지도 뜨거웠다. 서울시장 경력으로 인지도도 높은 만큼, 도로를 달리던 시내버스의 몇 승객들이 오 후보를 향해 손을 흔드는 모습도 보였다. 오 후보의 외모에 호감을 느낀 건 여성 유권자뿐이 아니었다. 창신동 주민 차모 씨(56.남)는 "나는 오세훈을 뽑을거다. 지역민들도 다 오 후보를 호감으로 생각한다"라며 "저 사람 인물도 좋지 않나"라고 말했다.
현장에서 만난 오 후보 지지자들은 대부분 '큰 일 해본 사람'이 종로를 맡아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전직 서울시장이라는 경력이 큰 몫을 하는 모습이었다. 여기에 오 후보가 최근 여당 내 차기 대권후보로 급부상하고 있는 만큼, 종로가 '큰 인물'을 놓치지 말고 적극 키워야 한다고도 했다. 아울러 지난 4년 간 지역경제가 크게 변하거나 나아지지 못했다며 변화를 원한다는 목소리도 제기됐다.
전업주부인 35세 현모 씨는 "오 후보는 시장을 두 번이나 지내지 않았나. 능력 면에서 더 전문적으로 일을 해줄 거라는 기대감이 있다"며 "정세균 후보가 4년 간 많은 일을 하긴 했지만, 오세훈이 오면 더 큰 정치를 할 수 있지 않을까 한다"고 말했다. 또다른 30대 여성도 "지난번 총선에서 경제를 살려달라는 의미로 정세균을 뽑았지만 변한게 없었다. 지금 우리 가족은 모두 새누리당을 지지한다"고 밝혔다.
정 후보가 임기 동안 큰 문제 없이 의정활동을 잘 해오긴 했지만, 오 후보가 대권을 바라본다는 점에서 기대감을 크게 자극한다는 표심도 드러났다. 70대 주민 김모 씨는 "정세균이가 크게 잘못한 것은 없지만 오세훈이 그릇이 더 크다고 생각한다"며 "대권도전을 할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번에는 오세훈이가 돼야 한다"고 답했다. 40대 여성 김모 씨도 "정세균이 종로 와서 크게 달라진 게 없는 것 같다. 큰 일을 해본 능력있는 오세훈이 오면 종로가 변할 것 같다"고 기대감들 드러냈다.
아울러 무상급식 문제로 앞서 시장직을 내려놓은 것과 관련, 박원순 서울시장에 대한 부정적 인식과 맞물려 "현실감각이 있다"는 호평도 나왔다. 30대 방모 씨는 "오 후보가 시장을 하면서 무상급식 논란이 있었지만 지금 박원순 시장하는 것을 보면 야당의 주장은 포퓰리즘이라는 게 드러났다"며 "정치는 현실이다. 젊고 큰 후보가 나와서 이제는 세대교체를 했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캠프 관계자는 "여론조사가 조금 여유있게 나오기도 하고 그렇지 않을 때도 있지만, 잠깐 확인하는 정도일 뿐 거기에 크게 개의치 않는다"며 "실제로 오 후보가 만나는 주민들의 반응은 나쁘지 않다. 1분이라도 더 밖에 나가서 한 명이라도 더 만나면서 이대로 끝까지 열심히 하려 한다"고 밝혔다. 이어 "종로는 구청장도 야당, 시장도 야당, 국회의원도 야당이다. 여당이 우세하다고 볼 순 없는 지역"이라면서도 "그동안을 서울시를 위해 일을 많이 했고 앞으로도 많이 할 것이다. 각 동별 맞춤형 공약을 내세워 생활밀착형 국회의원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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