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감원, '자살보험금 지급하라' 진짜 군기 잡나
"2000억원 지급해야…소멸시효 주장 용납 안해"
“보험회사는 고객의 신뢰가 무너진다면 존립할 수 없다.”
금융감독원이 생명보험사들에 대한 ‘군기잡기’에 나섰다. 최근 대법원에서 재해사망 특약의 자살보험금을 지급하라고 판결했는데도 생보사들이 소멸시효에 따라 지급 여부를 구분하려는 등 또 다시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이에 금감원은 23일 자살보험금 지급을 미루고 있는 보험사들에 대해 “정당하게 청구된 보험금 지급을 미루는 행위는 용납할 수 없다”며 보험금 지급을 거부·지연한 보험사에 대해 과징금 등을 통해 제재하기로 했다.
권순찬 부원장보는 이날 서울 여의도 금감원 기자실에서 “보험회사가 소멸시효 기간 경과에 대한 민사적 판단을 이유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더 이상 미뤄선 안 된다”며 “법에 앞서 도덕적으로 용납할 수 없다”고 공개 경고했다.
특히 권 부원장보는 “보험사 임직원에 대한 문책과 과징금 부과 등을 고려 중”이라며 ‘버티는’ 보험사에 대한 강력한 징계를 예고했다. 그는 “보험금 규모와 지급에 걸리는 기간, 보험사 차원에서 실시한 노력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제재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용납 못해", "미뤄선 안돼", "임직원 문책 검토"…강도 높은 표현 동원
“용납할 수 없다”, “더는 미뤄선 안된다”, “임직원 문책 검토하겠다”는 등 금감원이 어느 때보다 강도 높은 표현을 동원한 배경에는 생보사들의 요지부동 태도에 있다.
이미 지난 2014년에도 금감원은 생보사에 민원이 제기된 39건의 계약을 대상으로 자살보험금을 합의해서 지급하라고 권고했지만, 생보사들은 이 시한에 맞춰 지급 거부와 소송 제기 방침을 내세우며 버텨왔다.
생보사들이 금감원의 권고를 무시한 것 자체가 이례적이라는 지적이다. 자살보험금 문제에 있어서만큼은 법원과 금융당국의 서슬퍼런 칼날 보다 천문학적 규모의 보험금이 두려운 생보사들이다.
현재 자살보험금 지급 여부를 두고 소송 중인 생보사는 9곳으로 미지급 보험금만 2000억원이 넘는다. 여기에 향후 지급해야할 보험금까지 더한 업계 추산규모는 1조원을 웃돈다. 보험사가 금융당국의 압박에도 ‘죽어도 못준다’며 버티는 이유다.
'죽어도 못준다' 버티는 생보사…'공동전선' 구축하나
자살보험금 논란의 중심에는 약관이 있다. 2010년 표준약관 개정 이전 대부분의 생보사 보험약관에는 ‘계약의 책임개시일로부터 2년이 경과된 후에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보험금을 지급한다’는 내용이 포함됐다.
2년의 무보장 기간을 둔 것은 보험금을 목적으로 스스로 목숨을 끊는 것을 방지하기 위한 안전장치였다. 2년 후에 자살할 목적으로 보험가입을 하긴 어렵고, 유가족을 경제적으로 보호해야 한다는 점을 고려했다.
이에 소비자들은 보험사에 ‘보험 가입 2년 후 자살한 경우 재해사망으로 간주한다’는 약관을 지키라고 하는 반면 보험사는 자살을 재해에 포함시킬 수 없다며 재해보상금 지급을 거부하고 있다. 보험사 입장에선 재해사망 보험금이 일반사망 보다 2~3배 정도 많아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보험업계에선 ‘자살을 조장할 우려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으나 여론은 ‘소비자와의 약속을 지키느냐 마느냐’의 문제로 보고 있다. 금융권에선 보험산업의 신뢰가 걸린 사안으로 예의주시하고 있다.
이와 관련 생보사들은 법원의 결정과 금융당국의 엄중경고에 대한 대응 방향을 두고 고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업계에선 생보사들이 ‘명운을 건 공동 전선’을 구축할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최근 신한생명이 업계 최초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결정한 이후 다른 생보사들도 내부적으로 자살보험금 지급을 위한 절차를 검토하는 등 미묘한 눈치싸움도 감지된다.
자살보험금 지급과 관련 소송 중인 생보사 한 관계자는 “당장 보험금을 지급하겠다고 판단하기 어려운 복잡한 사안”이라며 “업계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보면서 대응방향이 잡히지 않을까 생각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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