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누리당 소장파는 왜 매번 실패를 거듭할까
남원정 등 개혁 앞세워 주류에 쓴소리…대부분 세력화 실패
영남권 패권주의·급진적 개혁 거부하는 이념 특성도 영향
남원정 등 개혁 앞세워 주류에 쓴소리…대부분 세력화 실패
영남권 패권주의·급진적 개혁 거부하는 이념 특성도 영향
“나는 실패했다.” 보수 정당의 대표적인 소장파 ‘남·원·정’(남경필 경기도지사·원희룡 제주도지사·정병국 새누리당 의원)의 원 지사는 2014년 출간한 자서전 ‘무엇이 미친 정치를 지배하는가’에 이렇게 적었다. 보수 정당의 위기마다 주류와 결이 다른 개혁의 목소리를 폈지만, 결국 그는 “개혁은 주도권을 쥔 사람 손에 달렸다”라는 현실론에 부딪혔다.
‘남·원·정’의 한 축 정병국 의원도 8·9 전당대회에서 당권 도전에 나섰지만, 비박계 단일 후보 자리를 주호영 의원에게 내주고 씁쓸하게 물러서야만 했다. 누군가는 정 의원이 비박계, 즉 비주류이기 때문에 밀렸다고 하지만 실제 이유는 ‘소장파’에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주류에 가감 없이 쓴 소리하는 소장파의 특성 탓에 세력화에 실패, 결국 당의 중심이 되지 못한다는 것이다. 이처럼 새누리당에서는 소장파가 빛을 발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수 정당의 쇄신그룹은 16대 국회부터 시작됐다. ‘젊은 보수’로 대표되는 ‘남·원·정’이 새누리당의 전신인 한나라당에서 ‘미래연대’를 창립하면서다. 이들은 “기성정치의 벽 앞에서 모래 알 처럼 흩어지고 당리당략, 개인영달, 눈치 보기 등 기성정치의 껍질 속에 갇혀 있었음을 반성한다. 기성정치가 외면해 온 목소리를 대변하겠다”라는 취지를 내걸었다. 이들은 2004년 이른바 ‘차떼기 논란’으로 당이 존폐의 기로에 섰을 때 개혁과 세대교체를 거세게 요구하고, 당시 박근혜 대표를 지지하면서 소장파의 대명사가 됐다. 박 대통령의 대표 브랜드인 ‘천막당사’는 남원정의 아이디어였다.
17대 국회 때는 ‘새정치수요모임’이 발족됐다. 한나라당의 개혁 아이콘이 된 남원정은 물론 권오을·김기현·김명주·김양수·김희정·박승환 의원 등 20여 명이 참여했다. 이들은 국가보안법을 대폭 개정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당시 박 대표와 충돌했다. 소장파는 17대 새누리당 대선후보 경선 과정에서 사실상 해체됐다. 이명박·손학규 후보가 수요모임에 적극적으로 구애하면서 멤버들이 각각의 주자로 갈렸기 때문이다. 모임은 커졌지만, 결국 당의 보수적 체질을 바꾸지 못하고 세력화 하는 데에도 성공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18대 국회에서 소장파의 명맥은 권영진·김선동·김성식·김성태·김영우·신성범·정태근·현기환·황영철 의원 등이 만든 ‘민본21’로 이어졌다. 이들은 당시 이명박 대통령의 밀어붙이기식 국정운영에 대한 비판을 서슴지 않았고, 이 전 대통령의 친형인 이상득 전 국회부의장의 2선 후퇴를 요구했다. 하지만 당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키는 데는 한계가 있었고, 이를 느낀 김성식·정태근 의원은 2011년 말 탈당했다.
19대 국회에서는 초재선 모임인 ‘아침소리’와 ‘경제민주화실천모임(경실모)’ ‘정치연대 플러스’ 등이 모습을 드러냈지만,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는 평가를 받았다. 20대 국회에서도 황영철 의원 등이 원유철 전 원내대표가 비대위원장을 겸하는 걸 반대하기 위해 만든 가칭 혁신모임이 두각을 나타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유야무야됐다.
‘남·원·정’의 두 지사처럼 권력의 자리에 올라선 경우도 있지만, 소장파 대부분 세력화 하지 못한 것으로 평가된다. 이 같은 원인은 영남권 중심의 패권주의를 꼽는 분석이 가장 지배적이다. 20대 총선에서 그 의미는 조금 퇴색됐지만, 영남권에서 공천장만 받으면 곧 당선이라는 말이 아직도 유효하다. 이 때문에 영남권 의원과 후보들은 공천을 받기 위해 주류와 대척점을 지지 않으려 한다. 반면 서울과 수도권 지역 의원들은 본선 경쟁력을 높여야 살아남을 수 있는 만큼 민심에 부응하는 개혁을 얘기할 수밖에 없었다.
당 혁신과 쇄신을 이야기 한 이들은 결국 당내 기득권 세력의 저항에 부딪혔고, 당내에 고령의 강성 보수가 많다는 점 때문에도 이들이 설 공간은 많지 않았다. 특히 근본적으로 급진과 개혁을 거부하고 기존 사회 질서를 존중하는 보수 정당의 특성 때문에 진보 정당 수준의 급격한 변화를 요구하기가 힘든 구조라는 점도 소장파의 입지를 좁힌다는 분석이다.
이와 관련해 새누리당 사정에 정통한 정치권 관계자는 12일 본보에 “보수 정당은 수직적인 의사소통 과정으로 이뤄지는 구조인데다 한 명의 인물이 영향력을 행사하는 경우가 많다”며 “이 때문에 주류에 반하는 의사를 내비치는 이들은 사실상 밀릴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소장파 계보의 주축인 정두언 전 의원도 2011년 ‘한국의 보수, 비탈에 서다’라는 제목의 책에서 “말로는 쇄신을 외치면서도 실제로는 이를 거부하는, 단지 당내 기득권을 유지하기 위한 정략적 쇄신론은 쇄신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을 수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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