YS가 '칠푼이'라던 박 대통령, 지금은 '하야' 압박
다시 떠오르는 YS와 박근혜의 악연
박 대통령 검찰 수사에 관심 떨어지는 YS 추도식
이른바 '최순실 게이트'가 블랙홀처럼 모든 이슈를 빨아들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의 탄핵 정국이 서서히 다가오고 있다. 이 바람에 22일 열릴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의 1주기 추모식이 상대적으로 주목을 받지 못하는 모양새다. 정치인 YS(김 전 대통령)와 박 대통령의 악연이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듯하다.
21일 국방부에 따르면 김 전 대통령의 서거 1주기 추모식이 내일 오전 10시 국립서울현충원 현충관과 고인의 묘소에서 거행된다. '사단법인 김영삼 민주센터' 주관으로 진행되는 추모식에는 유가족, 정관계 인사, 추모객 등 2천여 명이 대거 참석할 예정으로 알려졌다.
이 자리에는 지난해 장례식에서 사실상의 상주 역할을 한 김무성 전 새누리당 대표를 비롯해 상도동계 등 수 많은 전현직 유력 정치인들이 모일 것으로 보인다.
김 전 대통령 서거 이후 그와 관련된 행사에는 늘 유력 정치인들이 모여 사람들의 관심이 집중돼 왔다. 지난 5월 26일 서울현충원에서 열린 김 전 대통령 묘비 제막식에는 김 전 대표와 새누리당의 서청원·이인제 전 최고위원, 정진석 원내대표, 김광림 정책위의장을 포함해 당시 야당을 이끌던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등이 한 자리에 모였고 이를 취재하기 위해 수많은 취재진이 모여 현장은 발 디딜 틈 없이 붐볐다.
김 전 대통령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최연소 국회의원 기록을 갖고 정치초년생부터 주목을 받았고 대통령이 된 후는 물론 서거하고 나서도 '이슈 메이커'에 부족함이 없었다. 그러나 이번 행사에선 조금 달라질 것으로 보인다. 최순실 국정 농단 의혹에 박 대통령이 깊숙이 개입된 것으로 알려지며 국민적 관심이 그 곳에 쏠려 있기 때문이다.
검찰은 지난 20일 "박근혜 대통령은 피고인 최순실・안종범・정호성의 범죄사실과 상당부분 공모관계에 있다"는 내용의 수사 결과를 발표했다. 이에 야권은 일제히 탄핵 모드에 돌입해 박 대통령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여당 내 비박계에서도 탄핵과 출당 등을 거론하며 정권과 거리두기를 택한 상황이다.
전대미문의 사건에 국민들은 연일 관련 뉴스에 축각을 곤두세우고 있고 정치권 역시 수많은 회의체를 구성해 관심을 집중시키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진행되는 김 전 대통령의 추모식은 자연스레 전에 비해 그 관심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그 누가 의도한 것은 아니겠지만 김 전 대통령에게 쏠릴 시선을 박 대통령이 가져 가는 꼴이 됐다.
박 대통령 향해 "칠푼이"라고 했던 YS
누군가의 말처럼 YS와 박 대통령의 관계는 늘 위태위태했다. 1928년 경남 거제에서 출생해 1954년 제3대 국회의원에 당선되며 정계에 발을 들인 김 전 대통령은 박정희 정권의 독재에 맞서 싸우는 길을 택했고 그로 인해 정권의 압박을 늘 받아왔다. 김 전 대통령은 1969년 신민당 원내총무 시절 박정희 정권의 '3선 개헌'에 반대하고 있었고 괴한에 의해 초산 테러를 당하기도 했다.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배후는 박정희 정권으로 추측됐다.
김 전 대통령은 자신을 그토록 억누르던 정권과 관련 있는 박 대통령을 곱게 볼 수 없었다. 지난 2006년 5월 지방선거를 앞두고 당시 한나라당의 박근혜 대표가 서울 신촌에서 오세훈 서울시장 후보 지원 유세를 펼치다 괴한의 흉기에 얼굴이 10cm 가량 찢어지는 중상을 입어 입원한 상황에서 김 전 대통령은 병문안을 찾아 "나도 박정희 대통령 시절에 초산테러 등 테러를 많이 받은 사람이라 이번 일에 큰 충격을 받았다"라고 했다. 위로의 말이었지만 '뼈 있는 일침'이었다.
시간이 흘러 18대 대선 경선이 한청이던 2012년, 김 전 대통령은 이번에는 박근혜 새누리당 대선 후보를 향해 독설을 퍼부었다. 김 전 대통령은 경선에 참여 중인 당시 김문수 경기도지사의 예방에 덕담을 나누다 김 지사가 "지금은 토끼가 사자를 잡는 격"이라며 자신의 힘든 상황을 비유하자 "(박 후보는) 사자가 아니다. 아주 칠푼이다. 사자가 못 된다. 별 것 아닐 것"이라고 격려했다. 칠푼이는 조금 모자라는 사람을 놀림조로 이르는 말로 박 후보로서는 기분이 굉장히 상할 만한 일이었다.
이를 전후해 박 후보도 김 전 대통령을 예방했으나 김 전 대통령은 박 후보를 향해 "잘하기를 바란다"는 식으로 형식적인 덕담을 건네는 수준에 그쳤다.
박 대통령 취임 이후 이들이 더 이상 감정적으로 부딪힐 일은 없었지만 김 전 대통령이 서거하고 나서 또 하나의 일이 발생했다. 박 대통령이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하지 않은 것. 당시 박 대통령은 7박10일간의 주요20개국(G20)·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정상회의 등의 일정을 소화하고 새벽에 귀국한 직후여서 김 전 대통령의 빈소에 들러 조문은 했지만 영결식 대신 발인에만 참석했다.
당시 청와대는 날씨가 영하권으로 접어든 데다 영결식이 야외에서 1시간 넘게 진행되는 것을 감안, 박 대통령의 건강 상태를 위해 불참 쪽으로 결정을 내린 것으로 밝혔지만 'YS와 박 대통령 간 악연의 연장선상'이라는 분석이 지배적이었다. 그렇게 이들은 끝까지 좋은 관계를 회복하지 못 했다.
박정희 정권과 끝 없는 마찰을 빚었던 김영삼 전 대통령과 박근혜 대통령의 악연은 어쩌면 박 대통령의 탄생부터 시작된 것일지도 모른다. 김 전 대통령이 '칠푼이'라고 힐난했던 박 대통령은 현재 국민들로부터 강력한 하야 요구를 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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