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 철거 후 분양' 규정에 길 잃은 재개발·재건축
철거 쉽지 않아 계림8구역 분양 일정 6개월 늦추기도
'알박기'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져
건설사들이 올해 재개발·재건축 등 정비사업의 분양 일정을 두고 깊은 고민에 빠졌다.
정부가 11·3 부동산 대책에 정비사업은 ‘100% 철거’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서를 발급 받아 분양신청을 가능하도록 했기 때문이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철거가 진행 중인 일부 정비사업의 분양일정을 올 하반기로 늦추거나 확정하지 못한 상태다.
업계는 정비사업의 경우 입주민이 거주하면 강제철거가 어렵고 소송을 진행해도 수개월 이상 시간이 지체돼 금융비용 등 손실이 불가피한 상태라고 불만을 토로하고 있다.
일각에서는 더 높은 이주 보상금을 노리는 '알박기'를 부추긴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7일 건설업계와 조합에 따르면 올 초 일반분양을 계획했던 정비사업 가운데 재개발 구역 상당수가 분양일정을 하반기로 미루고 있다.
정부는 재건축·재개발 단지의 경우 폐기물까지 반출한 100% 철거 후 주택도시보증공사(HUG)의 분양보증서를 발급받아야 한다고 못 박았다.
아파트 분양보증은 시공사의 파산 등으로 분양계약을 이행할 수 없을 때 보증기관이 대신 분양을 이행하거나 분양 대금을 돌려주는 안전장치다.
아파트 분양보증을 받지 못하면 사실상 분양을 불가능하다. 이 때문에 건설사들은 철거를 완료하지 못하면 분양일정을 미룰 수밖에 없는 처지가 됐다.
실제 중흥건설과 호반건설이 시공사로 선정돼 재개발이 진행 중인 광주시 동구 계림8구역은 당초 일반분양을 올해 상반기로 잡았다.
이 구역은 현재 철거가 60% 가까이 진행된 상태지만 현금청산자들과 세입자들이 이주를 하지 않고 있어 분양일정을 하반기로 미뤘다.
계림8구역조합 관계자는 “100% 철거 후 분양을 해야 한다고 하니 추가 보상금 등을 요구하는 거주자들이 버티고 있는 상황”이라며 “가능하면 이르면 올해 중순이나 연내 분양을 끝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지난해에는 철거와 이주 문제로 일반 분양 일정을 못 잡아 해를 넘긴 곳도 있다.
서울 은평구 응암10구역을 재개발 하는 ‘백련산 SK뷰 아이파크’는 지난해 연말 분양일정을 4개월 미뤄 이달 말 분양에 나설 계획이다.
지난해 11월 일반분양을 계획했던 SK건설의 ‘공덕 SK리더스 뷰’(아현뉴타운 마포로6구역)는 일반분양을 빨라야 올 4월이나 돼야 가능할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한 건설사 정비사업팀 담당자는 “소유권이 확보됐음에도 무단점거를 하는 경우 소송까지 가는 경우가 적지 않다”며 “더 높은 보상금을 받기 위해 사업을 지연시키는 '알박기'가 더 성행할 수도 있다”고 말했다.
전문가들도 조합원들의 금융비용 증가는 곧 분양가 인상 등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우려하고 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가뜩이나 사업기간이 길어 고전하는 곳이 많은데, 정부가 사업추진의 발목을 잡는 모양새"라며 "정부의 탁상행정으로 벌어지는 후유증을 고스란히 수요자들이 떠 안고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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