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형표 징역형 “일 안 하면 감옥갈 일도 없다”는 반증
<칼럼>정책적 판단에 대한 사후적 단죄 부작용 뻔해
국민연금 손해액 계산 불가 직권남용 위헌적 요소
문형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은 직권남용죄와 위증죄, 홍완선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장은 배임죄의 유죄로 판단되어 각각 징역 2년 6개월의 실형이 선고되었다. 서울중앙지법 형사21부는 2017년 6월 8일 “문 전 장관이 2015년 6월 국민연금 기금운용본부에 ‘합병 찬성을 확실하게 하기 위해 대응 방안을 만들어 보라’고 지시하고, 이에 따라 홍 전 본부장이 관련 수치를 조작하게 한 사실이 인정된다”며, “국민연금 기금 운용의 독립성을 침해하고 ‘주주 가치 훼손’이라는 손해를 가져와 비난 가능성과 불법성이 크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문 전 장관이 지난해 국회 청문회에서 “국민연금의 결정에 관여하지 않았다”고 위증(僞證)한 부분도 유죄로 인정했다. 재판부는 또 “홍 전 본부장이 기금 운용의 원칙을 저버리고 부당한 방법을 동원해 국민연금은 보유 주식의 가치가 감소하는 등 큰 손해를 입게 됐다”고 말했다. 문 전 장관의 범죄는 직권남용죄와 위증죄, 홍 전 본부장의 그것은 배임죄이다.
문형표의 직권남용죄
우선 직권남용죄는 공무원이 직권을 남용하여 사람으로 하여금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하거나 사람의 권리행사를 방해함으로써 성립하는 범죄이다. 범죄의 구성요건은 ‘직무의 범위 내’에 속할 것과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것’이다. 문 전 장관은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므로 이러 저러한 지시는 그 직무범위 내라고 볼 수 있겠다. ‘의무 없는 일을 하게 할 것’ 부분을 보면, 문 전 장관은 조남권 전 복지부 연금정책국장에게 지시를 했고, 이에 대하여 조 전 국장은 의무 없는 일을 하게 됐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만약 지시를 받은 사람도 지시받은 사항이 자신의 의무라고 생각했다면 직권남용죄가 성립하지 않는다. 이 사건에서는 두 가지 구성요건이 모두 충족하므로 법원은 직권남용죄가 성립한다고 판단했다. 다만, 이 사건에서 직권남용의 증거는 조 전 국장의 구두진술 뿐인 점이 걸린다. 대통령 선거 과정에서 러시아의 개입이 의심되고 있어 곤란한 처지에 빠진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사법방해죄’의 결정적인 증거가 부족하여 탄핵은 어렵다고 본다.
위헌적 요소가 강한 직권남용죄
직권남용죄는 위헌적 요소가 강한 범죄이다. 이것은 배임죄와 비슷하게 걸면 걸리는 범죄이다. 그래서 헌법재판소 권성 전 재판관은, “‘직권남용’은 그 의미가 모호하고 광범위하며 추상적인 개념으로 법원의 해석 역시 추상적인 기준만을 제시할 뿐 직권남용의 의미를 파악해 내기가 쉽지 않아, 수사기관이 그 규범 내용을 명확하게 인식하여 어떠한 행위가 이 사건 법률조항에 해당하는지를 일관성 있게 판단하기 어렵게 함으로써 자의적인 해석과 적용의 여지를 남기고 있어, 이른바 정권교체의 경우에 전임 정부에서 활동한 고위 공직자들을 처벌하거나 순수한 정책적 판단이 비판의 대상이 된 경우에 공직자를 상징적으로 처벌하는 데에 이용될 위험성도 있으므로 이 직권남용죄를 규정한 법률조항은 죄형법정주의의 명확성 원칙에 위반된다”고 말했다(헌법재판소 2006. 7. 27. 선고 2004헌바46 전원재판부 판결에서 권성 재판관의 반대의견).
순수한 애국심이 아니었는지
문 전 장관과 홍 전 본부장은 불법이득이나 무슨 개인적인 이익을 위하여, 또는 삼성그룹의 총수나 대통령의 사익을 위하여 일 한 것처럼 보이지는 않는다. 그래서 수사과정이나 재판과정에서 문형표, 홍완선은 윗선에게 책임을 떠 넘기는 비루한 짓을 하지 않았다. 파렴치범들이라면 자기만 살려고 죽을 힘을 다해 책임을 미뤘을 것이다. 널리 알려진 바와 같이 이 사건은 2015년 악명 높은 국제 헤지펀드 ‘엘리엇 매니지먼트’가 삼성물산 주식을 대량 매집하여 3대주주의 지위를 취득한 다음 삼성이 제시한 합병 비율 1대 0.35(제일모직 1주당 삼성물산 0.35주)가 삼성물산의 주식 가치를 저평가했다면서 삼성물산(주)과 제일모직(주)의 합병에 반대하면서 촉발된 사건이다.
엘리엇의 경영간섭 또는 한국 대표기업에 대한 공격에 대하여 주주들은 물론이고 언론과 일반인들까지 사건의 추이에 대하여 관심을 가지고 지켜봤었고, 여론도 외국계 투기 자본이 대한민국 대표 기업을 뒤흔들게 놔둬선 안 된다는 쪽이었다. 당시 합병과 관련해 의견을 밝힌 22개 증권사 리서치센터 가운데 21곳(95%)이 합병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문 전 장관이나 홍 전 본부장이 이 사건으로 단 한 푼의 돈도 먹은 사실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들은 특검이 부당한 지시라고 규정지은 행위를, 그러나 본인들은 부인하고 있는 행위를, 만약 했더라도 순수한 애국심에서 한 것으로 볼 수 있지 않겠는가?
홍완선의 배임죄
배임죄는 임무를 위배함으로써 본인(국민연금)에게 손해를 가하고 자기(홍 전 본부장)가 이익을 취하는 범죄이다. 이 사건에서 과연 국민연금이 손해를 입었는가? 법원은 “공단은 장래 기대되는 이익을 상실하고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는 이에 상응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었다”고 판결함으로써 기대이익의 상실을 배임으로 보았다. 즉, 합병반대를 했더라면 큰 이익이 있었을 것이 명백한데 이를 포기하여 소극적 손해를 입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증권가에서 널리 예측된 대로 만약 합병이 무산되었더라면 삼성물산의 주가는 더 폭락했을 수도 있으므로 법원의 이러한 주장은 설득력이 없다. 일어나지 않은 일에 대하여는 판단할 필요가 없고, 당시에 국민연금에 손해가 갈 것을 알면서도 직권을 남용했는가 만을 판단하면 처벌받아 마땅하다는 주장도 있다. 그러나 이들이 국민연금에 일부러 수천억원의 손해를 끼칠 고의를 가지고 양심에 반하여 직권을 남용하거나 배임행위를 한 것으로 보이지는 않는다. 실제로도 국민연금이 손해를 보았을 것이라는 추측만 있을 뿐 확증은 없다.
주식가치의 저평가 문제
주식가격의 평가가 항상 말썽이다. 법원은 주식평가와 관련하여서는 대체로 너그러운 태도를 보였다. 심지어 대법원은 주주가 취득한 주가의 10분의 1로 평가되어 합병한 사건에서도 불공정한 것으로 볼 수 없다는 판결을 한 바 있다. 즉, 대법원 2015.7.23.선고 2013다62278판결에서 주주가 2004.7.2.자 비상장회사인 갑(甲) 회사의 주당취득가액은 13,899원이었고, 2004.7.16. 갑 회사의 유상증자 직후 주식의 평가금액은 10,027원, 2005. 9. 6. 병(丙 ) 회사가 인수할 당시의 주식취득가액은 9.912원 이었음에도, 합병 시 갑 회사의 주당 평가가액은 상증세법상의 평가방법에 따라 1,382원에 불과한 것으로 평가된 사례가 있다.
위 2013다62278 사건에서 대법원은 “전문성을 가진 회계법인이나 법무법인의 검토보고서, 국세청에 대한 질의회신내용 등을 토대로 하여, 법령이 정하고 있는 방법에 따라 합병비율을 산정하였다. 따라서 산정된 합병비율이 객관적으로 합리성과 상당성을 결여한 현저히 불공정한 것이라고 볼 수 없다.”고 판단하였던 것이다.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은 상장회사이므로 사건의 합병비율은 자본시장법에 정한 방식에 따라 결정된 상태였고, 위 2013다62278판결에 비추어보면 합리성의 결하였다고 볼 수도 없다. 그러므로 삼성물산 사건에서 서울중앙지방법원과 서울고등법원에서도 주식평가방법에 문제가 없다고 보았다.
손해액 계산 불가
재판부는 “홍 전 본부장의 배임 행위로 인해 국민연금은 장래 기대되는 재산상 이익을 상실한 것이고, 반대로 이재용 등 삼성그룹 대주주는 이에 상당하는 재산상 이익을 얻은 것이 된다”고 하면서도 국민연금의 정확한 ‘손해액’이나 삼성 측의 ‘이득액’을 계산할 수는 없다고 했다. 특검은 국민연금의 손실이 1,387억원에 달한다고 주장했으나, 받아들이지 않았다. 여기서 배임죄의 악령이 다시 홍 전 본부장을 덮쳤다. 배임죄는 실제 손해가 발생하지 않았어도, 심지어는 이익을 가져다 주었더라도 애초에 손해의 위험이 있었다면 성립한다는 것이다.
정책적 판단에 대한 사후적 단죄가 몰고 올 부작용
과거에 행한 정책적 판단행위를 사후에 재단하는 것은 기업인의 경영판단에 대하여 법원이 사후에 그 잘잘못을 따지는 것이나 같다. 보건복지부장관은 국민연금 최고 의결 기구인 기금운용위원회 위원장이고, 기금운용본부장은 기금 운용 총책임자인데 주요 사안에 아무런 의견이 없었어야 했다는 것은 스스로 감독책임을 포기하는 것이고 무능의 극치라는 비난을 받았어야 할 일이다. 이 사건은 “일 안 하면 욕먹을 일도 없다”는 제2의 변양호 신드롬을 낳을 것이다.
일반적으로 필자와 같은 법학자들은 법원의 판결에 대하여는 신뢰하는 편이다. 그런데 일반 국민은 그렇지 않은 모양이다. 형사정책연구원이 2017년 2월에 발간한 보고서 '형사정책과 사법제도에 관한 평가연구'에서 2016년 9~10월 전국 성인 1천 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국민의식조사 결과를 공개했다. 이 조사가 보여준 놀라운 사실은 법원이 경찰이나 교도소보다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앞으로는 사랑받고 신뢰받는 법원이 되기를 기대해 본다. 그러자면 지엽적인 시각에서 벗어나 큰 그림에서 보아야 한다.
글/최준선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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