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방통행 탈원전, 법 위에 대통령 공약?
입법 절차 없이 한수원의 사업포기로 탈원전 정책 추진
독일‧대만 법 개정, 스위스‧이탈리아 국민투표 거쳐 진행
[일방통행 탈원전 정책]
① 탈원전이 세계적 추세?
② 법 위에 대통령 공약?
③ 탈원전 가속화에 수출경쟁력·인력양성 적신호
④ 공론조사 ‘안하나 못하나?’
입법 절차 없이 한수원의 사업포기로 탈원전 정책 추진
독일‧대만 법 개정, 스위스‧이탈리아 국민투표 거쳐 진행
정부가 대통령 공약이라는 이유로 탈원전 정책을 일방적으로 추진하면서 절차상 문제점이 속속들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는 탈원전 정책 추진 과정에서 국민 의견 수렴이나 별도의 입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은 후보 시절 ▲신규 원전(8기) 건설 백지화 ▲노후 원전 설계수명 연장 불허 ▲월성 1호기 조기폐쇄 등을 골자로 한 탈원전 공약을 내세웠다.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탈원전 공약에서 건설 계획 백지화에 포함된 신고리 5‧6호기가 뜨거운 감자로 떠올랐다. 논란이 거세지자 정부는 ‘숙의(熟議) 민주주의’를 모델로 한 ‘신고리 5‧6호기 공론화위원회’를 출범, 공론화 과정을 거쳐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가 결정됐다.
문제는 당초 신고리 5‧6호기 건설 재개 여부만 결정하기로 한 공론화위원회가 탈원전에 대한 논의까지 포함해 의견을 제시했다는 점이다. 공론화위원회는 ‘원전 비중 축소’도 정부에 권고했다.
정부는 공론화위원회의 권고를 수용, 지난해 10월 대통령의 탈원전 공약을 토대로 한 에너지전환 로드맵을 국무회에서 심의‧의결했다. 이어 지난해 말 수립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에 탈원전 정책이 포함됐다.
◆원전사업자 한수원의 자발적 사업포기로 탈원전 정책 이행
탈원전 정책은 원전사업자인 한국수력원자력(한수원)이 자발적으로 사업을 포기하는 방식으로 추진됐다.
한수원 이사회는 지난 6월 15일 신규 원전 4기 백지화와 월성 1호기 조기폐쇄를 의결했다. 대통령의 탈워전 공약사항 중 일부를 이행한 것이다. 한수원 이사회는 산업통상자원부의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확정에 따른 협조요청’ 공문을 근거로 이 같은 결정을 내렸다.
지난 4월 취임한 정재훈 한수원 사장은 공기업인 한수원은 정부 정책을 따라야 한다는 입장을 견지해왔다.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은 계획의 구속력에 대한 논란이 제기되고 있다. 지난달 9일 5차 변론을 마친 ‘제8차 전력수급기본계획 취소소송’(2018구합53344)에서 산업부 측 변호인은 8차 전력수급기본계획이 강제성이 없는 ‘비구속적 행정계획’이라고 변론하고 있다. 한수원이 강제성이 없는 행정계획에 따라 자발적으로 사업을 포기한 셈이다.
◆행정계획뿐인 한국…독일‧대만 법률 개정, 스위스‧이탈리아 국민투표
한국과 달리 탈원전을 선언한 다른 국가들은 입법절차와 국민투표를 거쳐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다.
최근 에너지경제연구원이 발표한 보고서에 따르면 독일과 대만은 입법절차를 거쳐 탈원전 정책을 추진했고, 스위스와 이탈리아는 국민투표에 부쳤다.
독일은 2002년 4월 ‘상업적 전력생산을 위한 원자력사용의 단계적 종료에 관한 법’이 의회를 통과해 탈원전 정책이 법적 구속력을 갖게 됐다. 또 2011년 후쿠시마 원전사고 이후 2022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정지를 공식적으로 선언하고, 이를 원자력법에 명시했다.
대만은 지난해 1월 입법원(국회)에서 ‘2025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을 완전히 중단한다’는 조항을 포함하는 전기사업법 개정안을 통과시켰다. 이 법은 지난달 24일 국민투표를 통해 폐기됐다.
스위스는 1979년 2월 원자력 정책 관련 첫 국민투표를 포함해 총 6차례에 걸쳐 국민투표를 진행했다. 지난해 5월 2034년까지 모든 원전의 가동정지를 담은 ‘에너지전략 2050’의 통과를 묻는 국민투표에서 찬성 58%, 반대 42%로 가결됐다.
이탈리아는 1987년과 2011년 두 차례에 걸쳐 탈원전과 관련한 국민투표가 진행됐다.
정승윤 부산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독일은 원자력법, 대만은 전기사업법 등 법률 개정을 통해 탈원전 정책을 추진하고 있고, 나아가 국민투표까지 실시하는 국가도 있다”며 “한국은 국가 백년대계인 에너지 정책을 법적 근거 없이 한수원의 자발적인 사업포기로 추진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국가 정책은 필요할 경우 법 개정이나 법안 입법으로 추진해야 한다”며 “현재 여당이 국회 과반을 차지하지 못하고 국회 선진화법이 있기 때문에 사실상 관련 법 개정이 불가능하고 판단한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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