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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農권 교체'에 농협금융 칼바람…공허해진 '신경분리'


입력 2020.03.05 06:00 수정 2020.03.05 06:00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이대훈 농협은행장 전격 사의에 '중앙회 종속' 우려

4일 임추위 가동…'회장입김' 얼마나 작용할까 주목

서울 중구 소재NH농협금융지주 전경 ⓒNH농협금융지주 서울 중구 소재NH농협금융지주 전경 ⓒNH농협금융지주

이대훈 농협은행장이 지난 3일 전격적으로 사의를 표명하면서 금융사 지배구조에 대한 금융권의 우려가 커지고 있다.


지난해 12월 농협금융 임원후보추천위원회의 단독 추천을 받아 처음으로 3연임에 성공했던 이 행장이 사임한 것을 두고 농협 내부는 물론 금융권에서도 "예상 못한 상황"이라는 반응이다. 이 행장이 이성희 신임 농협중앙회장 취임과 맞물려 용퇴를 선택했다지만, 임기 석 달 만에 물러나는 모습은 자연스럽지 못하다는 것이다.


금융권에선 금융사 지배구조의 연속성과 경영 안정성을 훼손한 인사라는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 시중은행 한 관계자는 "연임을 확정하고 3개월만에 CEO를 교체하면 경영계획이 제대로 돌아기 어렵다"며 "최소한의 경영 연속성을 보장하지 못한 일"이라고 지적했다.


더욱이 이 행장은 2017년 취임 1년 만에 농협은행의 당기순이익을 1조원대로 끌어올리며 2년 연속 사상 최대 실적을 기록을 갈아치우는 성과를 올렸다. 결과적으로 인맥이 아닌 성과주의로 탈바꿈하려는 은행권의 추세에도 찬물을 끼얹는 사례로 남게 됐다.


농협은행 관계자는 "이 행장은 농협중앙회장 취임 후 관례에 따라 사퇴 수순을 밟은 것"이라며 "정권교체 후 정부 주요직 인사들이 교체되는 것과 비슷하다고 보면 된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 행장은 김병원 전 중앙회장의 측근으로 지난 1월 이성희 회장 당선으로 농권(農權)이 교체되면서 물갈이 대상에 올랐다.


이 행장은 지난 2016년 은행 본부장에서 상호금융 대표이사로 승진하고, 2018년에는 농협은행장으로 선임되는 등 김병원 전 중앙회장 임기 중 승승장구했다.


이 때문에 '대리전' 양상으로 치러진 농협중앙회장선거에서 김병원 전 회장측 후보였던 유남영 전북 정읍 조합장이 승리했다면, 이 행장의 현재 거취도 달라졌을 것이란 뒷말도 나온다.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신임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낙생농협 조합장이 1월 3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중앙본부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제24대 농협중앙회장 선거에서 신임 회장으로 당선된 이성희 낙생농협 조합장이 1월 31일 서울 중구 농협중앙회 중앙본부에서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데일리안 홍금표 기자
차기 은행장‧금융회장 선임에 '중앙회 입김' 얼마나 불까


이성희 회장 체제가 본격 가동하면서 농협금융에 대한 대대적인 '인사 물갈이'가 시작될 것으로 보인다. 전남 나주 출신인 김병원 전 회장의 흔적을 지우는 인사가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커지며 호남출신 주요직 인사들이 숨죽이며 지켜보는 상황이다.


농협금융은 다른 금융지주사와 달리 농협중앙회가 지분 100%를 보유하고 있는 구조다. 선출직인 중앙회장은 농협중앙회 산하 계열사 대표 인사권과 예산권, 감사권 등 막강한 권한을 가진다.


당장 4일부터 시작되는 새 은행장 선임과 다음달 임기가 끝나는 김광수 농협금융지주 회장 후임 인선 과정에서 이성희 회장의 입김이 어떤 방향으로 작용할지가 최대 관심이다.


농협금융은 이달 중 회장후보추천위원회를 가동해 신임 회장을 결정할 예정이다. 농협금융 내에선 김 회장도 인사 칼바람을 피하긴 쉽지 않을 것이란 얘기가 많다.


무엇보다 이번 일로 농협의 신경분리(신용사업과 경제사업의 분리)로 탄생한 농협금융이 여전히 중앙회의 입김에 좌지우지된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게 됐다.


농협금융은 지난 2012년 신경분리를 통해 금융 경쟁력과 독립성 확보에 나섰지만, 중앙회와의 '종속관계'를 끊지 못한다는 지적을 받아왔다. 인사시즌이면 "중앙회의 횡포", "인사권침해 논란" 등 구설이 뒤따랐다.


지난 2013년에는 신동규 금융지주 회장이 사의를 표명하면서 "경영전략, 인사, 예산권 등 모든 면에서 (중앙회장의) 간섭이 심했다.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하나도 없었다"며 중앙회장에 과도한 권한이 집중되는 지배구조를 직접 문제 삼기도 했다.


농협금융 한 관계자는 "농협중앙회가 금융계열사 위에 있다는 인식은 변하지 않았다"며 "우리 내부에서도 '중앙회가 은행장에게 사퇴를 통보했다'고 말하더라. '통보'를 받는 관계가 아닌데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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