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여파에 기준금리 '빅 컷' 인하
먼저 움직인 시장…늑장 대응 지적 계속
한국은행 기준금리 0% 시대가 현실로 다가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타격이 일파만파 확산하자 한은이 결국 기준금리를 통한 경기 부양에 나선 모양새다. 하지만 한은이 앞서 한 차례 조정 기회를 놓치는 사이 주요 선진국들이 한 발 앞서 움직인 데다, 시장이 이미 기준금리 인하를 예고하고 먼저 움직인 탓에 그 효과가 미미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은은 16일 서울 세종대로 본부에서 임시 금융통화위원회를 열고 기준금리를 기존 연 1.25%에서 0.50%포인트 내린 0.75%로 결정했다. 당초 한은은 다음 달 9일로 예정된 정례회의에서 기준금리 조정을 논의할 계획이었지만, 이를 한 달여 앞당겨 인하를 단행했다.
한은이 임시 금통위를 통해 기준금리를 내린 것은 이번이 세 번째다. 한은은 9·11 테러 직후인 2001년 9월과 금융위기 때인 2008년 10월 당시 각각 0.50%포인트와 0.75%포인트의 기준금리 인하를 단행한 바 있다.
이번 기준금리 인하는 코로나19로 인한 경기 침체 심화 우려와 금융시장의 불안이 급속도로 퍼지고 있는데 따른 결정이다. 한은은 코로나19 영향으로 국내외 금융시장에서 주가, 환율 등의 변동성이 크게 증대되고 국제유가가 큰 폭으로 하락했다고 전하면서, 이에 따라 통화정책의 완화 정도를 확대해 성장과 물가에 대한 파급영향을 줄여나갈 필요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처럼 한은이 예정보다 빨리 기준금리 인하에 나섰음에도 시장에서는 아쉽다는 반응이 감지된다. 결과적으로 다른 선진국들에 비해 늦은 판단이 된 현실 탓이다. 한은은 지난 달 27일 열린 금통위에서 기준금리를 현 수준인 연 1.25%로 유지했다. 전달 금통위에 이어 올해 들어 두 번째 기준금리 동결이었다.
그런데 며칠 지나지 않은 이번 달 3일 미국 중앙은행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금융 위기 이후 가장 큰 폭인 0.5%포인트의 정책금리 인하를 단행했다. 이에 캐나다 역시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리며 미국을 즉시 뒤따랐다. 지난 11일에는 영국 중앙은행도 기준금리를 0.75%에서 사상 최저 수준인 0.25%로 끌어내렸다.
여기에 이어진 미국의 추가 기준금리 인하는 한은을 더욱 분주하게 만드는 결정타가 됐다. 15일(현지시간) 연준은 기준금리를 기존 1.00~1.25%에서 0.00~0.25%로 1%포인트 인하하기로 결정했다. 연준의 이 같은 기준금리 조정은 오는 17일부터 이틀 간 예정된 정례 연방공개시장위원회를 앞두고 두 번째로 이뤄진 조치다.
상황이 이렇게 흘러가면서 시장에서는 한은이 적절한 대처 시점을 놓쳤다는 불만어린 목소리가 나온다. 미 연준보다 며칠 앞서 기준금리를 손볼 수 있는 금통위가 예정돼 있었던 만큼, 선제적인 대응이 가능한 여건이었음에도 스스로 기회를 날렸다는 비판이다.
이 때문에 기준금리 인하가 크게 효과를 내지 못할 것이란 회의론도 제기된다. 시장이 이전부터 기준금리 인하를 기정사실로 받아들이고 앞서 조정 국면에 들어간 상황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기준금리의 바로미터로 쓰이는 3년물 국고채 금리는 지난해 말 1.370%에서 이번 달 16일 기준 1.099%까지 떨어지며, 이미 기존 기준금리를 밑도는 수준까지 떨어진 실정이다. 다만, 한은이 기준금리 조정을 통상적인 0.25%포인트보다 높은 0.50%포인트로 가져가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한 만큼, 당분간 효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는 목소리도 함께 나온다.
금융권 관계자는 "한은 기준금리 인하가 시기의 문제인 만큼, 시장에는 이미 그 영향이 반영된 모습"이라며 "선제적인 대응 타이밍이 있었음에도 이를 놓친 점은 아쉬운 대목"이라고 평했다. 또 다른 금융권 관계자는 "결국 관건은 기준금리 인하 폭"이라며 "과거 경제위기 때에 준하는 빅 컷이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장에 추가적인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