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이외 금융사에 직접 자금 공급 나서…유동성 확충 '사활'
한국판 양적완화 이어 잇따른 비상플랜…코로나19 대응 총력
한국은행이 은행을 넘어 증권사와 보험사 등 제 2금융권 금융사들을 상대로 한 대출에 나서기로 했다. 한은이 은행 이외의 금융기관에 직접 대출을 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이후 처음으로, 특히 민간 증권·보험사에게 직접 대출을 시행하는 것은 역대 최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이하 코로나19)로 불안이 커지고 있는 금융시장의 안정화를 위해 한은이 배수의 진을 폈다는 평이다.
16일 한은에 따르면 금융통화위원회는 임시회의를 열고 새로운 대출제도인 금융안정특별대출제도를 신설하기로 의결했다. 이는 코로나19의 장기화 등으로 일반기업과 은행 및 비은행 금융기관의 자금조달이 크게 어려워질 가능성에 대비해 안전장치를 마련하기 위한 취지다.
이에 따라 은행을 비롯해 비은행금융기관인 증권사와 보험사에 일반기업이 발행한 신용등급 AA- 이상 회사채를 담보로 최장 6개월 이내의 대출이 시행된다. 한은은 이를 10조원 한도 내에서 3개월 간 한시적으로 운용하면서, 금융시장과 한도소진 상황 등에 따라 연장·증액 여부를 결정하기로 했다. 개별기관별 한도는 자기자본의 25% 이내다.
이처럼 한은이 은행 이외 금융기관에 직접 대출을 한 것은 1997년 외환위기 사태 때가 유일했다. 당시 한은은 한국증권금융에 2조원, 신용관리기금에 1조원을 지원하는 방식으로 증권사와 종합금융사에 자금을 풀었다.
한은은 최근 잇따라 유동성 공급 대책을 내놓으며 금융시장 안정에 사활을 걸고 있다. 앞서 한은은 금융권의 자금 조달에 숨통을 틔우기 위해 국채뿐 아니라 은행 채권까지 사들이기로 한 상태다. 이 역시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쓰인 적이 없었던 비상 플랜이다.
한은은 지난 14일부터 단순매매 대상증권에 산업금융채권과 중소기업금융채권, 수출입금융채권, 주택금융공사 주택저당증권(MBS)을 추가하기로 결정했다. 공개시장운영은 한은이 금융기관을 상대로 증권을 사고팔아 시중 유동성과 금리 수준에 영향을 주는 통화정책 수단이다. 이 가운데 단순매매는 증권을 매입하거나 매각해 시중에 유동성을 공급하거나 환수하는 효과를 영구적으로 낸다.
지금까지 한은은 공개시장운영의 효율성과 대상증권의 신용 위험을 고려해 단순매매 대상증권을 국채와 정부보증채로 제한해 왔는데, 이 범위를 특수 은행채까지 확대하기로 한 것이다. 이처럼 한은이 단순매매 대상증권을 확대한 것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처음 있는 일이다. 이를 통해 한은이 특수 은행채 매입을 통해 금융기관에 자금을 공급하면 특수은행은 더 낮은 금리의 채권을 발행할 수 있게 된다. 또 MBS을 단순매매 대상증권에 포함시킨 것은 안심전환대출 등으로 MBS 보유가 많이 늘어난 시중은행의 부담을 덜어주기 위한 차원이다.
이 같은 방안은 앞서 내놨던 이른바 한국판 양적완화에 이은 추가 조치 성격이다. 한은은 지난 달 26일 환매조건부채권(RP) 무제한 매입 프로그램으로 시중에 필요한 자금을 모두 제공한다는 대책을 내놨다. RP는 금융기관이 일정 기간 후에 다시 사는 조건으로 채권을 팔고 경과 기간에 따라 소정의 이자를 주고 되사는 채권이다. 사실상 채권을 담보로 맡기고 현금을 빌리는 것이다.
지금까지 한은은 단순매매 대상증권 확대와 RP 무제한 매입을 선언하면서도 비은행 금융사에 대출에 대해서는 신중한 태도를 유지해 왔다. 그러다 이번 달 초 이주열 한은 총재가 코로나19로 금융시장의 상황이 악화될 경우를 전제로 비은행 금융기관에 대한 대출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밝히며 물꼬를 텄다.
결국 이번에 한은이 내놓은 2금융권에 대한 대출은 유동성 공급의 최종 카드로 평가된다. 일각에서 제기된 회사채·기업어음(CP) 직매입에 대해서는 불가 방침을 고수해 온 까닭이다. 한은은 한은법 제80조에 의거해 비은행 금융기관 등에 자금을 지원하는 방식은 대출에 한정된다고 해석했다. 회사채·CP 직매입은 실질적으로 신용대출과 같은데, 이를 허용할 경우 은행에 대한 여신과 긴급여신에도 인정되지 않는 신용대출이 비은행 금융사에 허용되는 불합리한 결과가 발생한다는 설명이다.
한은 관계자는 "이번 특별대출이 회사채 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금융기관의 자금수급사정을 개선하는 데 기여할 것"이라며 "아울러 비상상황 발생 가능성에 대비해 대기성 여신제도를 미리 마련해 둠으로써 시장불안 심리를 완화하는 데도 효과가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