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하기

카카오톡
블로그
페이스북
X
주소복사

[D:인터뷰] 정진영 감독 "첫 영화 개봉, 발가벗겨진 기분"


입력 2020.06.12 07:19 수정 2020.06.12 07:20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영화 '사라진 시간'으로 연출 데뷔

"낯선 이야기, 관객들 반응 기대"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관객분들이 영화를 어떻게 보실지 궁금해요. 정말 긴장되고 떨립니다."


33년 차 베테랑 배우 정진영(55)은 초조한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자신의 꿈이자 새로운 영역인 영화 연출에 도전했기 때문이다. 영화, 드라마, 방송을 오가며 30년이 넘는 긴 시간 대중과 소통해온 그도 감독으로 대중과 마주할 때는 풋풋한 신인이었다.


정 감독이 연출한 영화 '사라진 시간'(18일 개봉)은 한적한 시골 마을에서 발생한 의문의 화재 사건을 수사하던 형사가 자신이 믿었던 모든 것이 사라지는 충격적인 상황과 마주하면서 자신의 삶을 찾아가는 이야기를 그린다. 정 감독은 각본과 연출, 모두 맡았다.


11일 서울 삼청동 카페에서 만난 정 감독은 "개봉을 앞두고 너무 긴장된다"며 떨리는 마음을 드러냈다.


연출은 그가 오랫동안 품어온 꿈이다. 매번 시도하려고 하다가 '잘 할 수 있을까' 걱정하는 과정을 반복하며 망설였다. 그러다 4년 전, 드라마 '화려한 유혹'을 끝내고 아들을 대학을 보낸 그는 '이젠 무엇을 해야 하나' 고민했다. '배우'라는 안정된 시스템 안에 있다는 걸 깨달았고, 작품을 이어가려다 일정이 밀리면서 직접 연출을 하자고 다짐했다.


"처음에는 물리도록 봐왔던 관습적인 이야기를 썼어요. 그러다 다시 시나리오를 수정했죠.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촬영하는 과정은 재밌었는데 개봉이 닥치니 긴장됩니다. 배우로서 영화 개봉은 여러 차례 경험했지만 감독이 돼서 개봉을 기다리는 지금 기분은 정말 다릅니다. 내면이 발가벗겨진 듯한 느낌이랄까요?"


'사라진 시간'은 예상했던 스릴러와 결이 다른 작품이다. 전혀 가늠할 수 없는 이야기와 다소 불친절한 전개는 호불호 반응이 갈릴 수밖에 없다. 정 감독은 이런 '사라진 시간'에 대해 '모난돌'이라고 소개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본 사람은 배우 조진웅이었다. 조진웅에게 어렵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니다. 괜찮다"는 반응을 얻었다. 시나리오를 고치지 말라는 말도 들었다. 이준익 감독은 "잘 쓴 시나리오야. 근데 호불호 갈릴 작품"이라고 평가했단다. 이후 만난 관계자들에게도 "뭔지 모르지만 괜찮다"는 반응을 얻었고, 이는 감독에게 힘이 됐다. 이제 평가는 관객의 몫이다.


'사라진 시간' 정진영 감독.ⓒ에이스메이커무비웍스

정 감독은 "낯선 이야기는 이 영화의 운명"이라며 "어떤 규칙을 정하지 않고 이야기를 썼고 영화를 보고 나서 '뭐지?'라는 생각을 했으면 한다. 관객의 다양한 반응을 기대한다"고 미소 지었다.


'사라진 시간'은 내가 생각하는 나와 남들이 생각하는 나의 간극에 대해 묻는다. 대중에게 노출된 배우인 정 감독 역시 고민하는 부분이다.


"내가 생각하는 내가 있고, 남들이 규정하는 내가 있잖아요. 그 사이에서 고민하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고 싶었어요. 정해진 틀에 얽매이지 않고, 자유롭게 풀어내려고 했습니다. 서퍼가 파도 속에 몸을 맡겨 파도에 따라 자연스럽게 흔들리듯 말이죠."


영화엔 '참 좋다'라는 대사가 자주 등장했다. 마지막 조진웅의 입을 통해서도 전달된 이 대사의 의미가 궁금했다.


"형구가 자신의 정체성에 혼란스러워하며 외로움과 슬픔을 느끼잖아요. 이 감정을 다른 사람도 느낀다고 깨달은 거죠. 나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나와 같이 힘들다고 인정한 겁니다."


미스터리 스릴러를 표방한 영화는 스릴러, 코미디, 드라마 등 다양한 장르가 섞이며 묘한 재미를 준다. 정 감독은 "계속 바뀌는 이야기 속에 아이러니한 상황 속에 벌어지는 유머 코드를 넣고 싶었다"고 말했다.


다소 복잡하고 난해한 이야기 구성에 대해선 "논리적으로 설명할 순 없어서 배우들이 연기하기 힘들었을 것"이라며 "관객들이 어렵게 느낄 수도 있을 듯하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감독은 영화를 통해 알려주고 싶은 메시지를 꺼냈다.


"눈에 보이는 것만 존재한다고 생각하지 않아요. 한 생명이 끝난다고 하더라도 완전히 사라졌다고도 판단하지 않고요. 누구나 다 사연과 아픔을 지녔는데, 서로의 아픔을 이해할 수 있다면 좀 더 살 만한 세상이 되지 않을까요?"


연출에 또 도전할 의향이 있느냐고 묻자 "하고 싶다"는 답을 선뜻 내놓지 못했다. 다음을 예상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관객들의 엄정한 평가를 기다리는 이 순간이 '패닉' 상태란다.


"글을 쓸 땐 정말 재밌었고, 촬영 과정도 행복했는데 개봉을 앞두니 너무 초조해요. 단순히 하고 싶다는 이유만으로 또 영화를 만들 수 있을지 모르겠습니다."


1988년 연극 '대결'로 데뷔한 정진영은 '약속'(1998), '달마야 놀자'(2001), '황산벌'(2003), '왕의 남자'(2005), '즐거운 인생'(2007), '국제시장'(2014), '화려한 유혹'(2015), '판도라'(2016), '보좌관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2019) 등 다양한 작품에 출연했다.


배우로 다채로운 감정 연기를 소화한 정 감독은 감독의 자리에선 배우들을 오롯이 믿었다. 그는 "배우들은 현장에 오기 전 감정을 다 준비해온다"며 "난 배우들이 감정 연기를 편하게 할 수 있도록 판을 깔아주는 역할을 했다"고 강조했다.


이 영화의 총 제작비는 15억원대로 손익분기점은 30만명이다. 조진웅은 노개런티로 출연했다. 정 감독은 "주변 도움으로 영화를 만들 수 있었다"며 "영화가 빛을 볼 수 있게 도와준 모든 분에게 큰 빚을 지고 있다. 이들의 노고를 위해서라도 영화가 잘 됐으면 한다"고 바람을 드러냈다.

부수정 기자 (sjboo71@dailian.co.kr)
기사 모아 보기 >
0
0
관련기사
부수정 기자가 쓴 기사 더보기

댓글 0

0 / 150
  • 최신순
  • 찬성순
  • 반대순
0 개의 댓글 전체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