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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민석의 할많하당] 사모펀드 '사기 투자' 오명 벗어나려면


입력 2020.07.13 07:00 수정 2020.07.13 05:09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자산내역 확인 불가능'한 제도적 모순이 라임·옵티머스 등 사모펀드 사기사건 핵심

추후 사모펀드 사기 방지 및 소비자보호 위해 제도·법 개정으로 자산내역 공개해야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린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 결정 촉구 금감원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라임 무역금융펀드 분쟁조정위원회가 열린 지난 달 30일 오후 서울 영등포구 금융감독원 앞에서 열린 ‘사모펀드 책임 금융사 강력 징계 및 계약취소 결정 촉구 금감원 의견서 제출 기자회견’에서 김득의 금융정의연대 상임대표가 규탄발언을 하고 있다. ⓒ뉴시스

"책을 표지로만 판단하지 말라(Don't judge a book by its cover)"


진부한 표현일 수 있지만 사람이든, 물건이든, 상황이든, 겉만 보고 판단하지 말라는 의미다. 화려하거나 또는 초라한 겉모습에 속아 진실과 동떨어진 판단을 내릴 수도 있고, 지레짐작해 그릇된 결정을 할 수도 있으니 꼭 내면에 무엇이 있는지를 알아야 한다는 격언이다.


하지만 최근 금융시장을 뜨겁게 달군 '사모펀드 사기사건'에는 위 격언이 적용될 수 없다. 자산운용사가 사모펀드를 포장해 내놓으면 소비자는 그 겉모습에 혹해 거금을 투자한다. 하지만 고객을 비롯해 수탁사, 사무관리사, 판매사 등은 그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사모펀드가 금단의 영역처럼 여겨지는 이유는 현행법의 한계 때문이다. 사모펀드(private equity fund)는 문자 그대로 '사인(私人)'간 계약으로 형성된다. 공모펀드와 달리 금융기관의 관리와 감시를 받지 않는다. 또 현행법 상 자산운용사가 사모펀드 운용 내역을 세세하게 공개해야 할 의무는 없다. 이는 자산을 자유롭게 운용해 높은 수익률을 추구하라는 사회적 합의의 산물이다.


문제는 '권리와 의무'가 없었기 때문에 불거졌다. 최근 5000억원대 규모의 환매 중단 사태를 일으킨 옵티머스자산운용 펀드사기가 대표적이다.


옵티머스운용은 '공공기관 매출채권'에 자산을 투자해 수익을 내겠다는 투자제안서를 돌려 수탁사와 판매사를 유인했다. 그러다 갑자기 "수익이 나지 않아 만기에 돈을 돌려줄 수 없다"며 환매 중단을 선언했다. 이에 금융당국이 나서 펀드 뚜껑을 열어보니 안에는 '비상장 기업 사모채권'만이 그득했다. 수탁사와 판매사, 고객을 속이는 대범한 사기행각을 저지른 것이다.


현행법 상 사모펀드 판매사, 수탁사, 사무관리사는 운용사가 제공하는 정보에 의존할 수밖에 없다. 수탁사는 운용사의 지시에 따라 투자를 진행해야 한다. 사무관리사가 수탁사에게 투자 재산을 확인할 수 있는 권한과 의무는 없다. 옵티머스운용은 이 제도를 악용해 수탁사에 부실채권 매입을 지시했고, 사무관리사에 투자자산을 허위로 전달했다.


앞선 라임자산운용 펀드 사태 때도 비슷한 일이 벌어졌다. 라임운용은 펀드 수익률을 높이기 위해 미국 헤지펀드의 무역금융펀드에 투자했다. 하지만 이 헤지펀드가 폰지 사기를 저질러 자산 동결 조치를 받게 됐다. 문제는 이때 그 사실을 판매사가 알 수 없었다는 점이다. 현행 제도 상 판매사들은 라임 사태의 운용 구조는 물론 레버리지 비율조차 알 수 없기 때문이다.


물론 라임 사태의 핵심은 추후 부실이 발생한 사실을 알고서도 은행들이 라임 펀드를 판매했다는 점이다. 이는 분명히 '모럴해저드'에 해당한다. 도덕적인 흠집이기에 벌과 제재, 교육 등 개선을 위해 필요한 절차가 복잡하다.


하지만 가장 큰 문제인 펀드자산내역 확인 불가는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 펀드 가입 고객이 자산내역을 알 수 없는 건 판매사, 수탁사 등에게 이를 확인할 수 있는 권리 및 의무가 없기 때문이다. 이는 도덕적 결함이 아닌 ‘제도적 모순’이다. 법과 제도의 개정만으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다는 의미다.


금융감독원은 지난 1일 라임운용의 펀드 플루토 TF-1호에 대해 전례 없는 전액 배상안을 발표했다. 이번 사태가 금융사기에 가깝다는 이유에서다. 아쉬운 건 이번 결과로 소비자보호에 대한 전례는 생겼지만, 사모펀드 내역을 확인할 수 있는 제도 개선에 대한 부분은 빠졌다는 점이다.


사모펀드는 저금리·저성장이 고착화 된 현 시점에서 분명히 매력적인 투자처다. 동시에 안전한 투자처는 아니다. 지금까지 터져 나온 일련의 사모펀드 사태는 제도적 모순이 얼마나 큰 위협인지를 깨닫게 했다. 추후 이 같은 사모펀드 사기를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 또 소비자에게 진정한 의미의 '투자 상품'으로 인정받으려면 자산내역을 열어야 한다.

김민석 기자 (kms101@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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