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틴 시절 만든 영화로 20세에 칸 입성
25세에 ‘마미’로 최연소 칸 경쟁부문 수상
오래된 세상에서 새로움을 찾아내는 천재성
한 번의 키스로 흔들린 두 남자 ‘마티아스와 막심’
천재로 산다는 건 어떤 것일까. 16세에 쓴 시나리오를 19세에 영화로 만들어 세상에 내놓은 배우이자 감독 자비에 돌란은 천재라는 수식어를 달고 다닌다. 데뷔작 ‘아이 킬드 마이 마더’를 공개한 그때도, 서른한 살이 되어 마찬가지로 주연과 연출을 겸한 ‘마티아스와 막심’(수입·배급 ㈜엣나인필름)을 개봉하는 지금도 천재라는 수식어는 유효하다.
자비에 돌란에게는 ‘칸 최연소 수상’이라는 수식어도 있다. 1989년, 26세에 영화 ‘섹스 거짓말 그리고 비디오테이프’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종려상을 받은 스티븐 소더버그의 최연소 기록을 1989년생인 자비에 돌란이 깼다. ‘아이 킬드 마이 마더’로 칸영화제 감독주간에서 3개의 상을 받은 것, 2010년과 2012년 ‘하트 비트’와 ‘로렌스 애니웨이’로 주목할만한시선 부문에 초청된 것을 말하는 게 아니다. 2014년 ‘마미’로 심사위원상을 수상할 때 자비에 돌란의 나이는 25세였다. 그리고 2년 뒤에는 ‘단지 세상의 끝’으로 심사위원대상을 거머쥐었다.
명불허전. 요란한 빈 그릇이 아니다. 색깔과 음악을 쓰는 기막힌 감각과 타이밍, 감각적 영상과 편집. 자비에 돌란을 말하면서 빼놓을 수 없는 단어가 ‘감각’이다. 자비에 돌란은 지난 2017년 패션잡지 ‘보그’와의 인터뷰에서 “먼저 감각한 뒤 사유한다”고 말했다. “생각은 정직하지 않지만 감정은 정직하다”는 알베르 카뮈의 말을 빌려, 먼저 경험한 뒤 그 경험을 바탕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자신의 감각을 믿고 감각적 영화를 만드는 그다운 말이다.
그리고 ‘새로움’. 자비에 돌란은 계속해서 파격적 질문을 파격적 영상으로 우리에게 던진다. 그저 낯설기만 하기도 어려운데, 그가 보여 주는 낯섦에는 세계관이 있고 깊이가 있고 일관된 철학이 있다. 그리고 놀랍게도 그것은 시계를 거꾸로 돌려 1970~80년대에 우리가 중요시했던 가족의 문제, 많은 이슈의 수원지가 되는 인간관계의 문제에 집중한다.
가족, 관계, 돌란은 그중에서도 ‘엄마’와의 관계를 영화마다 빼놓지 않는다. 데뷔작부터가 ‘아이 킬드 마이 마더’이고, 소년이 어른이 되는 과정을 어머니로부터의 완전한 독립으로 그리기도 했거니와. 1대1의 낯선 화면비율을 시도한 ‘마미’ 역시 ADHD증후군 아들을 키우는 어머니가 세상을 살아가는 방법을 통해 삶의 비루함을 조망하고 인간을 인간이게 하는 조건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그 외 영화들에도 항상 어머니와 어머니들이 존재하고 자녀들이나 이웃들과 충돌하고 사랑하고 공존하며 세상을 품는다. 신작 ‘마티아스와 막심’에서도 맷(마티아스)과 막심의 어머니들, 그들의 친구 리베트의 어머니는 주인공들의 인생에서 또 작품 안에서 중요한 역할을 한다.
이제 갓 서른이 넘은 젊은이가 보여 주는 올드(old)한 세계는 메시지, 또 인물(엄마세대)에만 있지 않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 속 TV는 평면이 아니고 로터리로 채널을 돌리는 브라운관이고, 자동차 역시 방금 공장에서 나온 것 같은 신차가 아니라 구식 차들이다. 도리어 오래된 것에서 새로운 것을 만들어내는 감각과 재능이 자비에 돌란에게는 있다. 옛날 소품이나 가전제품을 선호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다. 그는 자신의 영화가 광고처럼 보이길 거부하며, 자신이 광고업자가 아니라 스토리텔러라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자비에 돌란은 자신이 각본을 쓰고 편집하고 연출하는 영화, 때에 따라선 미술과 의상과 음악마저 스스로 담당하는 영화에 출연하기도 출연하지 않기도 한다. 개인적으로 직접 출연하는 영화를 선호한다. 자비에 돌란 스스로도 “배우가 되기 위해 감독을 선택했다”고 할 정도로 배우라는 직업에 애착을 보이기도 하지만. 169cm의 크지 않은 키에 신화 속에서 방금 빠져나온 듯 나르시시즘이 느껴질 만한 조각 같은 외모, 섬세한 표현력을 갖춘 매력적 배우를 마다할 리도 없거니와. 자신이 연출하는 영화의 캐릭터를 그 어느 배우보다 완벽히 표현하고, 거꾸로 자신이 연기하는 배역을 그 어느 감독보다 완벽히 연출해 내기에 자비에 돌란 주연, 자비에 돌란 연출의 영화를 사랑한다.
천재는 1%의 영감과 99%의 노력으로 만들어진다고 했던가. 캐나다 퀘백 출신으로 프랑스에서 왕성히 활동 중인 자비에 돌란의 오른쪽 무릎 위에는 프랑스어로 ‘작품은 땀으로 만들어진다’는 어귀가 새겨 있다. 그가 가장 좋아하는 작가이자 영화감독 장 콕토의 명언이다. 그저 섬광 같은 영감만으로 작업을 해왔다면, 10년이 넘는 시간 사이 거짓 천재성은 바닥을 드러냈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오늘도 자비에 돌란의 신작을 기다린다. 이번에는 또 어떤 것을 보여 줄까. 오는 23일 개봉하는 ‘마티아스와 막심’은 죽마고우인 두 사람이 내기를 통해 참여하게 된 단편영화에서 감독의 지시에 따라 딥키스를 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다룬다. 두 사람의 오랜 우정을 흔들고 두 사람의 인생을 흔든 건 한 번의 딥키스였을까, 이미 잉태돼 있던 그 무엇이었을까.
전혀 녹슬지 않은 천재성을 감각적 소재와 영상으로, 농익은 연기력으로 확인하니 벌써 차기작이 기다려진다. 자비에 돌란의 영화라는 아이덴티티(identity)가 확실하면서도 다시금 새로움을 발견하게 하는 영화, 우리의 솔직한 민낯과 삶에 대한 진지한 고민을 감각적 영상 안에서 ‘재회’하게 하는 영화, 기다릴 수밖에 없지 않은가. 개별 작품들에 관한 얘기는 아껴두고 싶다, ‘올드무비’ 코너를 통해 차차, 차분하게 되짚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