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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점] ‘순수’로 포장된 무례함, 논란에 무딘 ‘방송인’ 기안84의 탄생


입력 2020.08.16 12:44 수정 2020.08.16 13:35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MBC ⓒMBC

방송이 만든 캐릭터의 힘은 생각 이상으로 강력하다. 드라마 혹은 예능에서 부여하는 캐릭터에 따라 누군가는 털털하고 소박한 사람이 되고, 또 누군가는 매사에 윽박을 지르고 호통을 치는 사람이 된다. 물론 실제 성격과는 별개다. 어떤 논란에서 ‘악의 없는 순수함’으로 포장되는 ‘방송인’ 기안84도 그렇게 탄생했다.


방송에서 기안84를 다루는 방식은, 특히 그가 고정으로 출연 중인 MBC ‘나 혼자 산다’는 상식 밖의 행동들도 그저 ‘가벼운 실수’로 포장하기에 바쁜 모양새다. 대부분이 이해하기 힘든 사안들로 문제를 일으켜도 우스꽝스러운 자막으로 가볍게 넘기거나, 기안84를 치켜세우면서 두둔하기에 여념이 없다. ‘태어난 김에 사는 남자’라는 별명까지 만들어주면서 그의 잘못들을 예능의 소재로 사용한다.


지난해 ‘나 혼자 산다’에는 패션쇼에 참석한 기안84의 모습이 그려지면서 태도 논란이 일었다. 이날 런웨이에 프로그램의 동료이기도 한 배우 성훈이 오르자 기안84는 “성훈이 형”이라며 소리를 내질렀다. 공식적인 자리에서 아는 사람이 나왔다고 소리치는 기안84의 행동에 제작진은 ‘초딩84’라는 우스꽝스러운 또 하나의 별명을 안겼다.


2018년에도 이시언, 헨리와 함께 간 여행에서 무작정 고집을 피우는 모습으로 비판을 받았고, 같은 해 6월 루게릭병 환자를 돕기 위해 얼음물을 뒤집어쓰는 ‘아이스버킷 챌린지’를 속옷 바람으로 수행하면서 비판이 일자 ‘나 혼자 산다’를 통해 사과했다. 또 매년 연말 시상식 때마다 무대에 올라 부적절한 발언을 내뱉어도 그저 방송에 익숙하지 않은 기안84가 긴장감에 한 ‘실수’로 단순히 넘겨왔다. 게스트에게 무례한 말을 던져도 “원래 이런 사람이니 이해하라”는 식으로 마무리를 짓는다.


논란이 반복 될 때마다 ‘나 혼자 산다’에서 기안84는 주눅 든 모습으로 스튜디오에 앉아 고개를 숙였고, 멤버들은 적당한 위로와 타박으로 무겁지 않게 상황을 풀어갔다. 여기에 제작진은 예능적인 자막으로 기안84를 예능 캐릭터의 하나로 만들어내면서 ‘상황 종료’라는 인식을 남긴다. 연예 소속사와 계약을 할 정도로 꾸준한 활동을 이어온 기안84에게 여전히 ‘방송인이 아니’라는 면죄부를 주면서 충분히 생길 수 있는 논란이라고 치부하는 방송사의 태도가 지금의 기안84를 만들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네이버웹툰 '복학왕' ⓒ네이버웹툰 '복학왕'

이번 웹툰을 통해 불거진 여혐 논란에서도 ‘나 혼자 산다’는 슬쩍 발을 빼는 듯 보이지만 사실상 아무것도 하지 않음으로써 기안84를 향한 불편함을 토로하는 시청자들의 여론을 말끔히 무시하며 그를 추켜세우기는 것에 집중한 것이나 다름없다. 논란 이후인 14일 방송에서 제작진은 시청자들의 잇따른 하차 요구에도 기안84의 모습을 편집 없이 내보냈다.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대중이 이렇게까지 기안84의 하차를 요구하는 건, 비단 이번 논란뿐만 아니라 웹툰에서 상습적으로 부적절한 이슈를 생산해냈기 때문이다. 이주노동자를 비하했다는 비판을 받기도 하고, 여성 청각장애인의 대사를 어눌한 말투로 표현하면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조장했다는 질타를 받기도 했다. 이번엔 업무에 미숙한 인턴 봉지은을 20세 이상 차이나는 직장상사 팀장과 성관계를 맺으며 정직원으로 전환되는 인물로 그렸다. 반복되는 논란에 기안84를 겨냥한 청와대 국민청원까지 올라온 상태다.


일각에서는 기안84의 웹툰을 ‘창작의 자유’라고 옹호하지만, 약자 혐오 표현을 창작자의 자유라는 범주에 둬서는 안 된다. 또 ‘나 혼자 산다’ 역시 지상파 방송이 주는 영향력을 개인의 부적절한 이슈를 덮어주는 데 이용하는 행태를 즉각 멈춰야 한다. “방송이 너무 힘들다”면서도 꾸준히 방송을 이용해 자신의 행동을 정당화하는 방송인 기안84를 만든 ‘나 혼자 산다’는 문제의 심각성을 깨달을 필요가 있다.

박정선 기자 (composerj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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