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들어 4대銀 잠재적 최대예상손실액 평균 220% 급증
제로금리 현실화·널뛰기 증시에 위험 확대…위기관리 비상
국내 4대 시중은행들에 잠재된 금융 리스크가 올해 들어서만 세 배 넘게 불어난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금융 시장의 안정성이 훼손되면서 대형 은행들의 경영을 둘러싼 수면 아래 불안도 커지는 모습이다. 코로나19 충격이 생각보다 길어지면서 금융권의 불확실성도 좀처럼 해소되지 않는 가운데 은행들의 위기관리에도 비상이 걸리고 있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상반기 말 기준으로 지난해 말과 비교한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국내 4개 은행들의 시장리스크 최대예상손실액(VaR·Value at Risk) 평균 증가율은 220.0%에 달했다.
VaR은 과거 각 은행들의 영업 데이터를 토대로 특정 시점에 발생할 수 있는 최대 손실 가능 금액을 추산한 값이다. 이는 글로벌 투자은행인 JP모건에서 개발한 기법으로, 금융사의 각종 위험을 계량화하는 대표적 지표로 사용되고 있다. 금리와 주가, 환율 등 금융적 위험 요소들의 변동성을 통계적으로 분석·산출해 일정 기간 생길 수 있는 손실액을 보여준다.
은행별로 보면 하나은행에 내재된 리스크가 제일 큰 것으로 분석됐다. 하나은행의 10영업일 기준 VaR은 조사 대상 기간 2311억원에서 3412억원으로 47.6%(1101억원) 증가했다. VaR 값이 2000억원은 물론 3000억원을 넘는 곳은 하나은행이 유일했다. 다만, 액수가 큰 만큼 증가율은 낮은 편이었다.
금융 불안에 따른 위험이 가장 빠르게 확대된 곳은 국민은행이었다. 같은 기준으로 국민은행의 VaR은 204억원에서 1327억원으로 550.5%(1123억원) 급증했다. 신한은행의 VaR 역시 480억원에서 1240억원으로 158.3%(760억원)나 늘었다. 1영업일 기준으로 해당 수치를 계산하고 있는 우리은행의 VaR도 76억원에서 170억원으로 123.7%(94억원) 증가했다.
이처럼 최근 주요 은행들의 리스크가 일제히 커진 배경에는 코로나19에 따른 금융 시장의 불확실성이 자리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 이후 시중 금리와 주식 시장의 변동성이 급속도로 커지면서, 최악의 위기 시 은행이 감내해야 할 위험도 몸집을 키우고 있는 형국이다.
우선 국내 기준금리는 코로나19를 계기로 추락하기 시작해 이제는 0%대까지 급락한 실정이다. 우리나라에서 제로금리 시대가 현실화 한건 올해 처음 있는 일이다. 한국은행은 올해 3월 코로나19 여파가 본격 확대되자 임시 금통위를 열고 기준금리를 1.25%에서 0.75%로 한 번에 0.50%포인트 인하하는 이른바 빅 컷을 단행했다. 이어 지난 5월에도 0.25%포인트의 추가 인하가 단행되면서 한은 기준금리는 역대 최저치를 다시 한 번 경신했다.
코로나19 이후 증시는 말 그대로 널뛰기 장세를 벌이며 한치 앞을 내다보기 힘든 흐름을 이어가고 있다. 지난해 말 2200선 안팎을 오가던 코스피 지수는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시작한 3월 중순 1500선마저 무너지는 폭락세를 면치 못했다. 그러다 코스피 지수는 이번 달 한 때 2400선까지 돌파하며 코로나19 이전 수준을 넘어서는 등 요동치는 장세를 지속하고 있다.
문제는 코로나19가 예상을 뛰어 넘는 장기화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경제적 불안 심리가 더욱 심화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렇게 되면 금융권의 불확실성 역시 완화되지 못하고 오히려 악화할 공산이 크다. 가뜩이나 리스크가 커진 은행들로서는 고민이 깊어지는 대목이다.
코로나19로 경기 침체 먹구름이 짙어지고 있는 현실도 금융 시장의 전망을 한층 어둡게 만들고 있는 요인이다. 이로 인해 시장에서 자금이 돌지 않고, 그에 따른 악순환이 계속돼 차주들의 경제적 여건이 나빠질수록 이들에게 돈을 빌려준 은행들의 부담도 커질 수밖에 없어서다.
올해 2분기 우리나라의 경제성장률이 전기 대비 3.3% 감소하며, 지난 1분기(-1.3%)에 이어 마이너스 성장을 이어가고 있는 것은 이런 최근의 불황을 상징하는 지점이다. 이 같은 경제성장률은 외환위기 한파가 몰아 닥쳤던 1998년 1분기(-6.8%) 이후 22년여 만에 가장 낮은 수치다.
시중은행 관계자는 "잠시 진정되는 듯 보였던 코로나19가 재확산하면서 금융 시장의 예측 불가능성도 다시 커질 것으로 예상된다"며 "은행들로서는 최악의 상황을 가정한 리스크 관리가 필요한 때"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