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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감독탐구④] 올여름 극장가 승자는 결국 '그'였다


입력 2020.08.28 11:19 수정 2020.08.28 11:20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반도’ 연상호 ‘강철비2’ 양우석, 1000만 감독들 등판

홍원찬 감독,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대역전극

‘오피스’로 2015년 칸 입성,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순항

간결한 스토리 위에서 긴장·쾌감 고조시키는 재능 소유

배우 황정민과 촬영 후 한 컷, 홍원찬 감독 ⓒCJ엔터테인먼트 제공

해마다 여름이면 ‘텐트폴 영화’라 불리는 유명 감독에 배우, 거대 자본이 투입된 영화들이 흥행왕좌를 놓고 겨룬다. 이번 여름에는 그 어느 해보다 개봉 시기를 놓고 신경전이 치열했다. 늘 반복되는 전략적 차원에 더해 신종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코로나19)라는 치명적 변수 앞에 누가 먼저 나설까의 눈치작전이 펼쳐졌다.


주연배우가 물의를 일으킨 경우라면 먼저 나서는 영화가 총알받이 형국이 되고, 그로 인해 부정적 이미지가 희석된다면 이후 작품들에는 호재가 될 수 있겠다는, 논리적 예측과 합리적 추론이 가능하다. 하지만 코로나19가 언제쯤 완화되고 관객의 극장 나들이 두려움이 언제쯤 감소할지, 아니 언제 다시 코로나19가 극성을 부릴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개봉 시기를 정하기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다.


2020년 여름 극장가에 출사표를 낸 영화들의 흥행성적표를 받아들고 보니, 코로나19로 관객 수 규모 자체는 줄었지만 결국은 여느 때처럼 영화적 재미와 작품의 완성도가 ‘왕좌의 주인공’을 결정했다.


런칭 포스터 ⓒNEW 제공

기대를 한몸에 받으며 선발로 나선 건 ‘반도’였다. ‘부산행 2탄’이라는 수식어면 충분해 보였다. ‘부산행’의 큰 성공 이후 ‘염력’으로 주춤했던 연상호 감독의 진검 승부처인 만큼 제대로 만들었으리라는 예상을 가능케 했다. 190억원의 제작비 투입됐고, 컴퓨터그래픽이 미리 완성됐고 꽤 잘 나왔다는 평가도 흥행작 등극에 무게를 실었다. 여기에 강동원, 이정현이 주연으로 캐스팅되고 독립영화의 보배 구교환이 가세하면서 기대를 키웠다.


국내 관객 380만명. 코로나19 상황을 감안할 때 결코 적은 수치는 아니지만 기대 이하인 것도 사실이다. 실사영화 데뷔작으로 천만 관객의 사랑을 받고 칸국제영화제에 초청된 연상호 감독에 ‘부산행2’ 아닌가. 미국 등 185개국에 선판매되면서 손익분기점을 넘기는 데 있어 국내 흥행이 절박했던 것은 아니지만 예상 밖 결과였다.


답은 관객 평점에 있다. 포털사이트 네이버 기준 7.24. 7~8월에 개봉한 여름 영화 기대작 가운데 가장 낮은 점수다. 초반 기세는 가파른데 호불호가 심하게 갈리는 입소문 속에 관객 빠짐이 빨랐다. 좀비에 대적하는 인간의 사투가 카타르시스를 줬던 ‘부산행’의 장점이 증발하고 좀비는 다루기 쉬운, 심지어 무기화할 수 있는 객체가 되면서 맥이 빠졌다. 연기 되고 액션 되는 강동원의 활약을 기대했던 관객의 기대에 부응하지 못했던 것도 원인이다. 그래도 경쟁작 없이 스크린을 2주간 확보한 게 주효해서 여름영화 흥행 2위를 차지했다.


티저 포스터 ⓒ롯데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다음 타자는 ‘강철비2: 정상회담’이었다. 2탄 영화의 올여름 두 번째 등판이었다. 데뷔작으로 천만영화 ‘변호인’을 내고, ‘강철비’를 연달아 히트시키며 메시지와 재미를 동시에 추구하는 것으로 인정받은 양우석 감독의 신작이다. 게다가 1편의 정우성과 곽도원이 그대로 캐스팅되고 유연석이 보태졌다. 제작비 154억원, 작품의 완성도와 빈틈없는 내적 타당성을 기대케 하는 양우석 감독의 영화인 만큼 ‘반도’에 역전승을 보여 주는 건 아닌지 기대감이 모였다.


흥행결과는 가장 아쉬운 177만명. 영화를 본 관객 평점도 8.02로 ‘반도’에 비하면 훨씬 좋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왜일까. 본 사람은 만족하지만 보려는 사람이 적었다는 의미다. 남북의 대치상황을 고강도 액션으로 풀었던 1편에 비해 메시지가 강화됐다는 관람평, 예상치 못했던 블랙코미디가 큰 웃음을 준다는 호평이 아직 영화를 선택하지 않은 사람들에게는 ‘1편과 다르다’로 들렸다. 코로나19로 매주 극장에 나갈 수 없는 상황, ‘반도’ 이후 관객은 불안요소 없이 확실하게 재미를 보장받을 수 있는 발걸음을 기다리며 숨을 골랐다. 혹시 영화 제목이 ‘강철비2’였으면 흥행에 보탬이 됐을까. 엉뚱한 상상의 나래가 펴질 만큼 그 완성도와 작품에 담긴 열의, 존재 의미 대비 아쉬운 성적이었다.


'신세계' 이후 7년 만의 재회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신중해진 관객의 마음을 훔친 건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감독 홍원찬, 제작 ㈜하이브미디어코프, 배급 CJ엔터테인먼트)였다. 사실 관객들에게 기대작 1위는 아니었다. 황정민, 이정재가 영화 ‘신세계’ 이후 7년 만에 다시 만났다는 게 가장 큰 기대 포인트일 정도로 알려진 게 많지 않았다. 영화 제목도 어쩐지 멋있긴 하지만 영화의 내용이나 결을 짐작하게 하는, 정보성을 지닌 제목도 아니어서 더욱 그랬다. 잘나가는 형을 둔, 인기작의 후속편 영화도 아니었다. 제작비도 세 영화 중에서는 가장 적은 138억원이다. 특히 연출을 총지휘한 홍원찬 감독에 대한 대중적 인지도는 연상호 감독이나 양우석 감독과는 다르다. 두 감독처럼 천만영화 감독도 아니다.


시작은 미미했으나 창대한 끝을 만들어 가는 중이다. 27일까지 419만 관객의 사랑을 받았다. 관객 평점도 8.60으로 가장 높다. 사랑제일교회 발 코로나19 재확산으로 감독과 배우들의 무대인사도 취소되고,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 상황에 맞춰 극장 좌석도 한 자리 건너 한 명씩 앉는 상황에서 놀라운 결과다. ‘귀여운’ 스토리 대비 88억원의 제작비를 투입해 완성도를 높인 덕에 관객 평점도 8.07로 좋고, 심신이 어려운 시기 큰 웃음 주는 ‘오케이 마담’이 개봉하자마자 사회적 거리두기 2단계에 직면하면서 120만명 선에서 선전하는 것과 비교하면, 개봉 2주 차까지 영화관람에 대한 심리적 문턱이 낮아진 호황을 누린 것도 흥행에 한몫했다. ‘침입자’ ‘결백’이 코로나19로 꽁꽁 언 극장가 빗장을 풀고 ‘#살아있다’가 문을 연 상황에서 ‘반도’도, ‘강철비2: 정상회담’도 아닌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가 1위에 등극한 것이다.


모든 것을 내려놓고 살인청부업자가 됐던 인남을 연기한 황정민, 이보다 스타일 좋고 이보다 섬뜩한 킬러를 다시 보게 될까 싶은 레이를 만든 이정재, 손끝까지 트랜스젠터의 기운을 탑재시킨 박정민(유이 역)의 도전이 어려운 상황에서도 관객을 극장가로 불러들이고 있다.


스타일 좋은 액션,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 ⓒCJ엔터테인먼트 제공

그래도, 가장 큰 공은 홍원찬 감독에게 있다. 각본을 써서 인남과 레이, 유이 캐릭터를 만들었고 이 익숙한 배우들에게서 새로운 얼굴을 끄집어낸 연출력 때문만은 아니다. 인남과 레이의 숨 막히는 추격전과 살벌한 육탄전을 통해 에스컬레이터가 아니라 고속엘리베이터에 관객을 태워 아찔한 쾌감을 맛보게 한 주인공이기 때문이다. 액션영화는 좋아하지만, 누아르풍의 하드보일드 액션에 대한 호감도는 높지 않은 상황에서 대역전극을 이뤘다. 평이하지 않은 영화, 뻔하지 않은 영화로 거둔 성과라 더욱 의미 있다.


사실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 복잡한 줄거리는 없다. 스토리가 중요한 영화가 아니라는 얘기다. 특히 레이가 인남을 죽어라 쫓는 이유도 중요하지 않다. ‘형을 죽인 사람’이지만 흔히 생각하는 형제애에 입각한 핏빛 복수도 아니잖은가. 죽여도 내 손으로 죽이고 싶었던 자를 나보다 먼저 죽인 자를 향한 분노의 추격. 그렇기에 다른 손 빌리지 않고 얼마나 대단한 적수인 줄 알면서 직접 쫓는 것이다. 간결 명료한 스토리라인 위에서 영화와 관객의 감정을 고조로 끌어올리는 재능이 홍원찬 감독에게 있다는 것은 장편데뷔작 ‘오피스’에서 일찌감치 보여주었다. 고아성, 박성웅, 배성우 주연의 이 영화에서 홍원찬 감독은 장소의 이동조차 크지 않은 가운데 미스터리와 공포, 스릴을 자유자재로 변주한다. 손에 주어지는 정보가 별로 없어 관객은 탐정 혹은 박성웅이 연기한 형사가 된 듯 추리와 심리수사를 벌이며 영화를 보게 된다. 제작 규모는 크지 않지만 큰 매력을 지닌 ‘오피스’의 매력을 높이 사 2015년 제68회 칸국제영화제가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초청했다. 시체스국제영화제를 비롯해 여러 해외영화제에서 호평받았다.


제68회칸국제영화제 레드카펫. 앞줄 왼쪽부터 홍원찬, 나탈리 포트만, 라즐로 네메스 감독 ⓒ 출처=네이버 포스트 유로픽쳐스

영화란 주인공을 어디로 보낼까의 문제이자 해결이다. 배우 송강호와 ‘1승’ 촬영을 앞두고 있는 신연식 감독이 영화 관련 강의에서 하는 말이다. 홍원찬 감독은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에서 인남을 통해 이를 확실히 보여 준다. 국정원 요원이었다가 버림 받고 일본으로 가고, 일본에서 청부살인으로 목숨을 부지하다가 연인의 죽음으로 한국으로 오고, 그 죽음으로 인해 태국으로 가고, 태국에서 소중한 인연을 찾아 이동하고 또 이동한다. 다음 목적지가 억지스럽지 않고, 그 이동을 통해 자연스럽게 스토리가 이어지고, 몸만 이동하는 게 아니라 영화의 감정이 함께 실려 움직인다. 이동선이 분명하니 액션 시퀀스도 스토리에 착착 붙는다. 주인공을 다음엔 어디로 보내느냐, 말은 쉽지만 실행이 어렵고 그래서 잘 만든 영화의 기본이다.


감독 홍원찬 ⓒCJ엔터테인먼트 제공

우리는 단편 ‘골목의 끝’을 연출할 때, ‘추격자’ ‘작전’ ‘황해’ ‘내가 살인범이다’를 각색할 때 홍원찬 감독을 알지 못했다. ‘오피스’로 칸국제영화제 황금카메라상 후보에 올라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감독으로 참석한 나탈리 포트만과 레드카펫을 나란히 걸을 때도 각별하게 주목하지 않았다. 하지만 이제 ‘다만 악에서 구하소서’로 우리는 그의 이름, 홍원찬을 기억할 것이다. 두 번째 성적은 좋지 않다는 소포모어 징크스 없이 순항에 돛을 단 그가 한국 상업영화 지평 안에서 펼쳐 보일 세 번째 ‘독특함’을 기대한다.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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