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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지주에 '사회공헌 청구서' 내민 靑…정치금융 불만 고조


입력 2020.09.04 05:00 수정 2020.09.03 16:29        이충재 기자 (cj5128@empal.com)

민간금융서 70조원 조성…금융사, 투자·대출·보증 '부담' 떠안아

금융권 "금융사가 사회공헌 단체인가"…'정치금융' 가속화 우려

문재인 대통령이 3일 오전 청와대에서 제1차 한국판 뉻리 전략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뉴시스


정부가 국가발전전략으로 제시한 '한국판 뉴딜'을 지원하기 위해 20조원의 정책형 뉴딜펀드를 조성하고, 170조원의 금융지원 방안을 제시했다. 이를 위해 향후 5년 간 금융사들은 70조원의 부담을 지게 된다. 나머지 100조원은 정책금융을 통해 조성된다.


정부는 지난 3일 문재인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주재한 제1차 한국판 뉴딜 전략회의에서 이같은 내용의 '국민참여형 뉴딜펀드 조성 및 뉴딜금융 지원방안'을 발표했다.


특히 20조원 규모로 조성되는 뉴딜펀드는 강력한 세제 혜택을 통해 '공모 뉴딜 인프라펀드'를 유도하기로 하는 등 국민참여형으로 진행된다. 정부와 산업은행 등 정책금융기관이 모(母)펀드를 조성한 후 일반 국민을 비롯한 민간 자금을 자(子)펀드로 매칭하는 방식으로 추진된다. 공공부분이 7조원을 출자하고 민간의 돈 13조원을 끌어들여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공모 뉴딜 인프라 조성을 유도하기 위해 정부는 투자금액 2억원 이내 배당소득에 대해 9% 저율 분리과세를 적용하는 강력한 세제 혜택을 마련했다. 당초 "원금보장"을 내세웠다가 자본시장법 위반 지적을 받았던 부분에 대해선 "원금보장을 명시하지는 않지만 사후적으로 원금이 보장될 수 있는 충분한 성격이 있다"고 설명했다.


이날 행사에서 문 대통령은 금융권의 적극적인 동참을 당부했다. 코로나19 여파로 인한 경제위기 극복과 성장동력 확보가 한국판 뉴딜의 성공에 달려 있다면서 이를 위해 민관이 원활한 자금 공급에 힘을 합쳐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부재정, 정책금융, 민간금융'을 뉴딜펀드의 3대 축으로 꼽으며 "한국판 뉴딜의 성공을 위해서는 금융의 적극적 뒷받침이 필요하다"며 금융권의 협조를 거듭 호소했다.


한국판 뉴딜에 사활을 건 정부는 이날 청와대에서 열린 행사에 금융권 총동원령을 내렸다. 은성수 금융위원장과 윤석헌 금융감독원장은 물론 조용병 신한금융 회장, 윤종규 KB금융 회장, 김정태 하나금융 회장, 손태승 우리금융 회장, 김광수 NH농협금융 회장 등 5대 금융그룹 회장을 비롯해 지방금융그룹 회장과 한국투자금융·메리츠금융그룹 회장 등 금융권 주요인사 40여명이 자리했다. 금융권 인사들이 예정된 일정을 모두 취소하거나 연기하고 뉴딜펀드 지원에 동원된 셈이다.


주요 금융사들은 정부 정책에 떠밀리듯 한국판 뉴딜 관련 기업 투자와 여신 지원을 늘리기로 했다. 신한금융이 뉴딜·혁신성장 분야에 5년 동안 28조5000억원의 대출‧투자를 지원하기로 하는 등 5대 금융그룹이 약 70조원을 부담하기로 했다. 이에 은성수 위원장은 "(뉴딜펀드 활성화를 위해선) 규제 유연화가 필요하다"며 "민간금융회사들이 뉴딜 분야 투자, 대출, 펀드 모집을 제약하는 건전성 규제를 합리적으로 조정해나가겠다"며 금융사에 대한 당근책을 내놨다.


정부의 적극적인 의지와 달리 금융사들은 노골적인 정책금융 압박에 향후 발생할 수 있는 리스크를 우려하는 분위기다. 이미 주요 금융사들은 코로나19 사태를 계기로 정부의 방침에 따라 대출만기 연장‧이자상환 유예 등 정책지원 부담을 짊어진 상황이다. 금융권 내에선 민간금융회사에 대한 관치를 넘어 정치금융이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요즘 금융사가 사회공헌단체인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라고 꼬집기도 했다.


이와 함께 뉴딜펀드 구상이 '관제펀드'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려울 것이란 지적도 제기된다. 금융시장의 자발적 참여로 이뤄지는 펀드가 아닌 정부의 정책 실현을 위한 수단으로 금융시장을 도구화한 측면이 크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가 그동안 주도한 관제펀드들은 시장논리에 역행한 '태생적 한계'로 정권의 운명과 함께 자취를 감추거나 수익률 악화 등으로 관심에서 멀어지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이명박 정부에서 주도한 '녹색펀드'는 2012년까지 42개의 관련 펀드 상품이 쏟아졌지만, 정권이 바뀐 뒤 급격한 자금 이탈 등으로 유야무야됐다. 박근혜 정부의 '통일펀드'나 '청년희망펀드'도 마찬가지였다.


시중은행 한 임원은 "매 정권 마다 새로운 금융정책과 함께 펀드가 나왔지만 대부분 제대로 시행되지 못한 채 흐지부지됐다"며 "금융사들은 과거와 크게 다르지 않다고 보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금융사 관계자는 "금융시장에 정치논리로 접근하는 모든 것들은 좋은 결과로 이어지기 어렵다"며 "금융사는 언제까지 끌려 다니기만 해야 하나"라고 지적했다.

이충재 기자 (cjle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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