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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대역행 규제공화국③] ILO핵심협약 비준, 노동계 폭주에 판 깔아주는 정부


입력 2020.10.03 07:00 수정 2020.10.02 21:33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노조 차별 대우 금지, 해외 흐름과 역행

경영계 우려에도 정부·여당, ILO 핵심협약 비준 관철 의지

상의 등 "가뜩이나 불합리한 노사관계, 더 기울어질 것 "

2020년 6월 24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 서초사옥 앞에서 열린 '먹고살자 최저임금! 열자 재벌곳간! 민주노총 결의대회'에 참석자들이 구호를 외치고 있다.ⓒ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한국 경제가 코로나19 여파로 흔들리는 가운데 정부가 노조 가입 문턱을 해고·실직자까지 낮추는 노조법 개정안을 밀어부치면서 경제계의 부담이 가중되고 있다.


그간 경영계는 개정안 필요성에 대해서는 동의하지만, 재계 입장과 우려 역시 반드시 반영돼야 한다고 요청해왔다. 가뜩이나 불합리한 노사 관계가 더욱 기울어질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대한상의 등 경제단체는 이를 해소하기 위한 대안책까지 제안했지만 정부와 여당은 이를 무시하고 '일방통행'으로 밀어붙이는 상황이다. 법안이 끝내 통과될 경우 노사 갈등이 증폭돼 기업 생산성 악화로 이어지고, 결국 한국 경제의 몰락을 가져올 것이라는 우려가 나온다.


"해고자, 실업자까지 노조 가입 허용…가뜩이나 기울어진 운동장인데"


3일 업계에 따르면 정부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은 ILO 핵심협약 비준을 위한 노동조합법 및 노동관계조정법 개정안을 이번 정기국회 내에 처리하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앞서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지난달 25일 경영계와 만나 노조법 개정안 등 노동 관련 현안에 대한 의견을 나눴다. 경영계가 각종 부작용을 호소했지만 기존 입장만 반복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개정안은 △해고자·실업자의 노조가입 허용 △비조합원의 노동조합 임원 선임 허용 △노조전임자 임금 지급 △개별 교섭 시 차별대우 금지 등 노조 측에만 힘을 싣는 것을 골자로 한다.


노조법 개정안 중 가장 우려되는 독소조항으로 '해고자·실업자 노조가입 허용' '비조합원 노조임원 선임 허용'이 손꼽힌다.


해고자, 퇴직자, 실업자, 사회적 활동가 등 기업과 무관한 이들이 노조 활동을 하게 되면 기업 내부 문제 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이슈까지 기업 노사관계에 끌어들일 것이라는 우려다. 이들은 특히 사용자의 인사권에 영향을 받지 않기 때문에 기존 노조원들 보다 얼마든지 대립적인 구도를 형성할 수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이 2020년 9월 25일 오전 서울 종로구 코리아나호텔에서 열린 30대 기업 CHO 간담회에 참석해 인사말을 하고 있다.ⓒ뉴시스
"노조전임자 급여 지급, 해외선 부당노동행위"


개정안엔 노조 전임자에 대해 급여 지급을 금지하는 규정도 삭제됐다. 노조업무에만 종사하는 자가 사용자로부터 급여를 지급 받을 수 있는 여지가 생긴 셈이다.


경영계는 이에 반대하고 있다. 노사관계 선진화에 역행하는 조치일 뿐더러, 노조의 자주성과 독립성 차원에서도 어긋난다는 이유에서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사실상 노조전임자 임금지급 허용으로 노조의 자주성·도덕성을 손상시킬 것"이라고 말했다.


이 같은 정부안은 해외 주요국들의 상황과도 전면 배치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 등 경제단체에 따르면 산별노조 체제인 미국, 유럽 등은 노조와 기업이 독립된 관계로, 노조 전임자 급여는 노조 스스로 부담하는 관행이 정착돼있다.


특히 일본의 경우 ILO 핵심협약 제98호를 비준하고 있으면서도 노조전임자가 사용자에게 급여를 받는 것은 부당노동행위로 간주한다.


사측이 복수노조와 개별 교섭을 진행할 경우 차별적 대우를 금지하는 조항도 문제가 있다고 봤다. 이번 개정안은 개별 노조별 교섭에서 차별대우를 금지한다.


경영계는 그러나 근무, 업무 특성상 차이가 날 수 밖에 없는 구조를 차별이라고 보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다는 지적이다.


한국경제연구원은 "사용자가 노조별 교섭을 추진하는 이유는 개별 노조의 근무지역, 업무특성 등이 현격하게 차이가 나기 때문"이라며 "개별노조가 신설된 차별대우 금지 조항을 근거로 경쟁적으로 무리한 요구를 하거나, 협상을 지연할 경우 기업의 노사관계 악화가 불가피하다"고 강조했다.


노조법 개정 입법예고안 주요 쟁점ⓒ한국경제연구원
"기업 입장도 제발 반영해 달라…일방적 입법 행태 우려"


이렇듯 정부안은 노조 가입 대상과 자격을 대폭 완화하면서도 재계가 요구한 사항들은 대부분 받아들이지 않았다. 단체협약 유효기간을 현행 2년에서 3년으로 늘리고, 노조가 사업장 내 주요 시설을 점거하지 못하도록 한 것 정도다.


경영계는 이 정도로는 무리한 파업, 사업장 불법 점거 등 막대한 피해를 미치는 행위를 원천적으로 차단하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그럼에도 정부가 해고자·실업자 등에 대한 단결권 보장을 관철시키고자 한다면 기업의 방어권도 반드시 선진국 수준으로 높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구체적으로 상의는 노조법 개정안의 보완책으로 해고자·실직자의 사업장 출입 원칙적 금지, 모든 형태의 직장점거 파업 금지, 노조전임자 급여지급 금지규정 삭제시 ‘근로시간면제제도’ 틀 유지, 파업시 대체근로 금지규정 삭제를 요구했다. 그렇지 않으면 파업에 대항할 수단이 없어 사용자가 일방적으로 노조의 부당 요구를 들어주는 악순환이 반복되기 때문이다.


박재근 대한상의 산업조사본부장은 "정부의노조법 개정안은 ILO 협약 비준을 위해 노동권만을 강화하고 있어 노사관계에서 힘의 불균형과 산업현장의 갈등을 증폭시킬 우려가 크다"며 "향후 국회 논의과정에서 노사 대등성과 노동시장 경쟁력이 보장될 수 있도록 균형 있는 입법이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조인영 기자 (ciy8100@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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