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시대적 규제 혁신 외면…‘기업 옥죄기 법안’ 비판
소송 남발로 브랜드 훼손 우려…막대한 비용은 덤
“파급효과 예상 힘들어…경제·사회 피해 불가피”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기업경영 전반에 불확실성이 팽배한 가운데 정부가 집단소송제와 징벌적손해배상 확대에 나서면서 국가 경제 부담을 가중시키는 모양새다.
산업계와 재계에서는 구시대적 규제에 대한 혁신은 외면한 채 기업 활동만 제한하는 셈이라 ‘과잉입법’ 내지 ‘기업 옥죄기’ 법안이라는 비판이 높다.
블랙 컨슈머와 법률 브로커들에게 악용돼 ‘소송을 위한 소송’ 등 부작용이 우려되는 만큼 충분한 논의와 소통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국민참여재판에 소급적용까지…기업 부담 가중
법무부는 ‘집단 소송제’를 모든 분야로 확대 도입하고 징벌적 손해배상제를 적용하는 범위를 넓히기 위해 상법을 개정하겠다고 밝혔다.
입법예고를 거쳐 오는 11월 국회에 법률안을 최종 제출 후 연내 통과를 목표로 하고 있어 향후 관련 법안을 두고 논쟁이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된다.
정부가 도입하려는 집단소송제는 분야 제한 없이 피해자가 50명 이상만 모이면 피해자 중 일부가 제기하는 소송 결과를 바탕으로 같은 피해를 본 모두가 구제받는 제도다.
이번 추진안에서는 집단소송제에 대해 소급입법을 가능케 하는 내용도 포함됐다. 입법 이후에도 과거 사건에 대해 소급입법을 함으로서 집단소송을 제기해 사법적 판단을 받도록 한다는 것이다.
BMW 차량 화재 사건과 폭스바겐 배출가스 조작 사태, 가습기살균제 사태 등이 소급대상으로 우선 거론되고 있다. 다만 이 부분은 과거의 행위를 새로 만든 법률로 처벌할 수 없다는 헌법 원칙에 위반될 소지가 있다는 의견이 많다.
집단소송법에 국민참여재판을 적용한 점도 기업들의 부담을 가중시키는 요인 중 하나다. 법률 브로커와 블랙컨슈머 등이 국민참여재판을 악용해 여론몰이에 나설 경우 기업에 불리한 판단이 내려질 가능성을 배제하기 힘들다.
부문별로 산재돼 있는 징벌적 손해배상을 상법으로 묶어 전면 시행하고 배상책임한도도 피해액의 5배로 확대하는 상법 개정안 역시 기업들의 우려를 사고 있다.
그 중에서도 징벌적 손해배상이 기존의 과징금 부과 및 형사처벌과 동시에 이뤄질 경우 헌법상 이중처벌금지 원칙과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된다는 지적이 나온다.
◆여력 없는 중소기업 도산 가능성…국가 기반 흔들
재계에서는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확대 도입은 기업 활동에 대한 ‘옥상옥’을 만드는 행위라고 말한다. 제조물책임법과 소비자단체소송, 피해분쟁조정 절차 등 충분한 법적장치가 마련돼 있는 상황에서 규제만 강화하는 조치에 불과하다는 설명이다.
특히 대한민국 기업의 80% 이상을 차지하는 중소기업들의 경우 한 번의 소송으로 도산이 우려될 수 있는 만큼 한국 경제의 근간이 흔들릴 수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유환익 전국경제인연합 기업정책실장은 지난 23일 입장문을 통해 “기업들은 현재도 형사처벌, 행정제재, 민사소송 등에 시달리고 있다”며 “집단소송과 징벌적 손해배상 제도가 도입되면 기업들은 정상적인 경영활동이 어려워지고 무엇보다 소송 대응 여력이 없는 중소·중견 기업들의 피해가 막대할 것”이라고 반발했다.
한국경영자총협회도 “두 법안에 따라 소송이 제기될 경우 기업은 소송 부담과 함께 회복할 수 없는 경영상 피해를 감내해야 한다”면서 “블랙컨슈머와 악의적 법률 브로커 등이 문제 되는 상황에서 소송 제기만으로 기업 이미지가 심각하게 훼손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실제 집단소송이 활성화 돼있는 미국의 경우 많은 기업들이 소송 남발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지난 2002년 맥도날드가 광고 내용보다 실제 열량이 높다며 소송을 당하는가 하면 스타벅스는 얼음이 너무 많고 커피가 적다는 이유로 소비자들의 타겟이 됐다. 맥도날드와 스타벅스 모두 승소했지만 브랜드가치 하락을 포함해 많은 비용을 치렀다.
이형준 경총 노동경제연구원 수석위원은 “소송 남발로 인한 경영 불확실성과 비용 발생으로 기업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얼마나 클지 예상하기 힘들다”며 “의도적인 소송이 제기될 수 있고 긴 소송 과정에서 경제와 사회, 기업의 피해가 불가피하다”고 지적했다.
이어 “기존 규제를 건들지 않고 사후 발생한 문제의 책임마저 기업에게 떠넘기는 것은 무리가 있다”며 “개인사업자가 제품이나 서비스 출시 과정에서 소송을 당하게 되면 시장에 진입하지 못하는 불상사가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