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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종선의 배우탐구⑯] ‘비숲2’ 조승우, ‘정의로움’ 연기에 대한 새로운 정의


입력 2020.10.06 10:02 수정 2020.10.06 17:57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배우 조승우 ⓒ 배우 조승우 ⓒ

지난 4일 ‘비밀의 숲 2’(연출 박현석, PD 안창호·정연지, 극본 이수연, 이하 '비숲2')가 갔다. 그러나 아직 조승우를 보내지 못했다.


당연히 황시목뿐 아니라 한여진, 서동재, 최빛, 우태하, 이연재, 김사현, 강원철, 박 상무, 그리고 가족 같은 용산서의 최윤수 팀장과 장건 형사로부터 막내 박순창까지 ‘비숲2’를 완성한 모든 캐릭터와 배우의 얼굴이 눈앞에 오롯이 살아있다.


황시목을 연기한 조승우는 배우의 표현법에 대한 생각할 거리를 남겼다. 시즌1 때는 그나마 눈동자의 움직임이 있었고, 추리하거나 취조할 때는 셜록 홈즈처럼 말수가 늘었고, 동작이 굼뜨진 않았다. 다른 캐릭터들과 같이 ‘움직였다’.


황시목의 왼쪽 입꼬리 ⓒ 황시목의 왼쪽 입꼬리 ⓒ

이번엔 다르다. 흔히 ‘짤’이라고 하는 짧은 동영상으로 보면 사진으로 보일 정도다. 다른 캐릭터들은 움직이는데 혼자 정지된 것처럼 그 자리에 서 있다. 말수가 거의 없고 그나마 말할 때도 입술을 많이 벌리지 않고 목소리 톤이 낮아서 웅얼거리는 것으로 보일 지경이다. 조승우 정도의 발성과 발음이니 대사가 들렸다. 눈동자 움직임 최소, 걸을 때도 느릿, 팔을 흔들며 걷는 법도 없고 목을 잘 돌리지도 않는다. 웃음이 없는 건 기본, 웃음기조차 가물에 콩 나듯 그것도 왼쪽 입꼬리가 슬쩍 올라갈 뿐이다.


드라마 16부작을 통해 단 한 번 언성을 높였고, 감정을 드러냈다. 서동재 검사를 내다 버린 통영 사건의 살인자 김후정에게, 단 한 번. 한 번이어서 더욱 강렬했고, 그 한 번으로 황시목이 감정이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보여 주었다.


드라마 ‘모범형사’의 오종태, 배우 오정세가 연기한 캐릭터와 정도는 다르지만 방식이 비슷한 구석이 있다. 악인 연기에 얼마나 효과적인지, 얼마나 뱀처럼 서늘하게 무서울 수 있는지 오정세가 확인해 주었다.


표정으로 의정부지검 탈탈 터는 황시목 ⓒ 표정으로 의정부지검 탈탈 터는 황시목 ⓒ

그런데. 황시목은 선인이다. 찔러도 피 한 방울 나오지 않을 것 같은 냉정함은 흔히 선인 캐릭터의 짝꿍이 아니다. 선인을 넘어 정의로운 인물일 때는 더욱 그러하다. 정의는 피 끓는 투지와 흔들림 없는 강경함으로 문법처럼 표현돼 왔다. 하지만 황시목은 차가운 피를 지녔고, 흔들리지 않지만 거세지 않고 잔잔하다.


그 미동 없음은 소시오패스를 연상시킬 정도다. 상대가 선배 검사든, 내가 하는 일이 나조차 찬성하지 않는 ‘수사권 경찰에 전임’에 유리한 상황을 만드는 결과가 되든, 우태하의 죄를 사체를 이동한 것에 국한하지 않고 가짜 사진과 거짓 메모로 서동재 납치 사건 수사에 혼동을 준 것을 넘어 한조그룹을 위해 검찰과 경찰 인사를 별장으로 불러 불법 접대를 한 것까지 발본색원한다. 검찰 내 선후배 관계, 조직의 명령, 내가 속한 조직의 유불리를 눈곱만큼도 염두에 두지 않는 모습은 타인의 사정 따위엔 눈길도 주지 않는 반조직적 인격장애를 지닌 것으로 보일 정도다. 자신을 제외한 타인의 고통에 전혀 공감하지 못하는 반사회적 인격장애 소시오패스와의 분명한 차이는 황시목은 자신이 겪을 불리함에도 무심하다는 점이다.


고독한 소나무 ⓒ 고독한 소나무 ⓒ

조승우가 표현한 황시목을 보면, 홀로 비바람과 서리를 맞으면서도 꼿꼿이 서 있는 소나무가 떠오른다. 독야청청, 꽉 막힌 선비를 움직이는 힘은 돈도 명예도 권력도 아닌 정의와 진리뿐이다. 우리 대다수는 비밀의 숲 바깥에 선 나무들이다. 그리고 비밀의 숲에는 돈이나 권력을 독과점한 나무들이 그들의 돈과 권력을 유지하는 비밀을 철저히 은폐하고 있고, 그들을 위해 울타리로 서 있으면서도 자신이 소유자인 것으로 착각하는 나무들이 있다.


황시목은 행동하는 선비요, 서릿발 같은 매서움을 지닌 사철나무다. 비밀의 숲 울타리 역할만 했어도 평생이 편했겠지만 조용히 외면한다. 경계에 선 자는 비밀의 숲 안으로도 밖으로도 가지를 뻗을 수 있는데, 안으로 뻗었다. 시즌1에서는 그 추상같은 수사로 이창준(유재명 분)을 스스로 숨지게 했고, 시즌2에서는 끝내 버티는 우태하(최무성 분)를 휘감아 고사시켰다.


얼굴 근육으로 연기하는 조승우 ⓒ 얼굴 근육으로 연기하는 조승우 ⓒ

황시목을 통해 ‘비밀의 숲’, 그들만의 성역을 무너뜨리는 인물의 됨됨이를 되짚어 생각한다. 어쩌면 뜨겁지 않아야, 무심해야, 달리지 않고 등속도로 담담히 걸을 수 있어야 세상의 어떠한 유혹에도 눈길 한 번 주지 않고 ‘모두를 위해’가 아니라 ‘당연히’ 해야 할 일, 정의를 실천할 수 있겠구나.


다시금 그런데. 조승우의 몸을 빌려 표현된 황시목이 정의의 칼만 휘둘렀느냐는 것이다. 냉철하기만 했느냐는 것이다. 아니, 황시목을 떠올리면 누구도 하기 힘든 일을 무던히 하느라 세상 고독을 혼자 차지한 사람만 보이지 않는다. 도대체 이유는 모르겠지만 저 안에 따뜻한 난로를 품고 있는 것처럼 훈훈한 인간미가 살며시 전해 온다. 배우로서 표현법을 줄이고 줄였지만, 텅 비어 보이기보다 신선한 매력이 넘친다. 관객은, 특히 여성 관객은 ‘나쁜 남자’ ‘츤데레’를 좋아한다는 구문으로는 설명이 안 된다.


우리는 황시목을 보내지 않았다 ⓒ 우리는 황시목을 보내지 않았다 ⓒ

숱한 시청자가 황시목을 보내지 못하고 ‘조승우앓이’에 빠진 이유를 전부 알지는 못하지만 두 가지는 확실하다. 다양한 표현법을 스스로 거세하고 한 인물을 만들어낸다는 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 얼마나 중도 포기할 수 있고 하고자 해도 끝까지 유지하기 힘든지 알기 때문이다. 배우로서 조용히 뿜어낸 조승우의 내공을 절감한 덕이다.


두 번째는 배우 조승우의 ‘변화’이다. 시즌1과 달라졌다. 아니, 나아졌다. 연기 잘하기로는 정평이 나 있고, 연습벌레인 걸로는 영화 ‘퍼펙트게임’(2011)에서 투수 최동원을 완벽 재연하고 드라마 ‘마의’(2012)에서 침을 제대로 놓는 수의사를 통해 이미 확인시킨 바 있는데, 계속 성장하고 있다. 부족함을 채우는 과정에서 얻어지는 성장은 상대적으로 쉽다. 이미 잘한다, 절정이라는 극찬을 들은 배우가 변화하고 그 변화의 방향이 성장이기란 얼마나 힘든 일인가. 지난해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를 보았을 때, 같은 배역으로 과거의 자신을 넘어서는 조승우를 보며 감탄했다. 3년 만에 만난 ‘비숲2’, 황시목도 그렇다.


회자정리, 시즌3을 기다리며 ⓒ이상 tvN '비밀의 숲2' 홈페이지 회자정리, 시즌3을 기다리며 ⓒ이상 tvN '비밀의 숲2' 홈페이지

목소리만으로도 우리네 삶의 무게를 전하는 유재명의 내레이션에도 ‘변화’의 어려움을 절감케 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 대사가 황시목 검사에게만 해당하지 않고 한 줌의 희망을 쥐고 오늘을 산 최빛 단장(전혜진 분)을 비롯해 ‘비밀의 숲’의 많은 캐릭터, 그리고 이 드라마를 아껴 시즌3을 기다리는 숱한 시청자의 이야기이기도 해서 더욱 좋다. 황시목과 나란히, 자신만의 방식으로 흔들림 없이 정의를 향해 직진한 한여진 경감, 배두나가 시즌1처럼 똑 단발로 변화한 김에 시즌3까지 직진하기를 애시청자로서 희망한다.


“진리를 좇아 매진하는 것, 도리를 향해 나아가는 것, 이는 모두 끝이 없는 과정이다. 멈추는 순간 실패가 된다. 변화를 향해 나아간다는 건 나의 발이 바늘이 되어 보이지 않는 실을 달고 쉼 없이 걷는 것과 같다. 한 줌의 희망이 수백의 절망보다 낫다는 믿음 아래 멈추지 않는 마음으로 다시”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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