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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큐레이터 픽] 수억 개의 점으로 탄생한 무수한 실선의 향연, 작가 박해수


입력 2020.10.18 13:53 수정 2020.10.18 13:54        홍종선 대중문화전문기자 (dunastar@dailian.co.kr)

석류_96.5x162(100호)_Acrylic on canvas_2014 ⓒ갤러리K 제공 석류_96.5x162(100호)_Acrylic on canvas_2014 ⓒ갤러리K 제공

점묘법, 즉흥적으로 붓질을 하는 대신 원하는 색을 표현하기 위해 정확하게 계산한 후 점을 찍어 그림을 그리는 기법을 말한다. 19세기 프랑스 조르주 쇠라에 의해 처음 시작된 기법이기도 한 이 점묘법은 오늘날 많은 작가에게 계승되어 다양한 작품을 탄생시켰다.


박해수 작가는 쇠라의 점묘법, 잭슨 폴록의 노동집약적 액션 페인팅을 결합시켜 신점묘법을 탄생시킨 작가다. 점에서 선으로 발전, 선과 선이 중첩돼 나오는 우연한 색 조합 등으로 탄생한 작품은 밤하늘을 수놓는 은하수보다 더 많은 작은 실선들이 화면을 가득 메우고, 규칙적이지 않으면서도 나름이 질서를 지닌 날카로운 선들의 향연으로 이루어져 있다. 보고 있노라면 작가의 고뇌와 영혼이 보는 이에게 전달되어 경이로움까지 일으킨다.


박 작가는 바닥에 붙은 껌을 떼는 데 사용하는 공구용 칼 ‘헤라’를 사용해 작품을 만든다. 5cm도 되지 않는 헤라나 1.5cm 남짓한 끌 같은 공구의 날에 아크릴 물감을 묻혀 일일이 손으로 찍어 완성한다. 한 작품에 수억 차례씩 찍어 무수한 실선들이 25~30겹 캔버스를 가득 메운 작품은 마치 촘촘히 수를 놓은 것처럼 보인다. 박해수 작가는 이러한 표현 방식에 대해 “사막을 물 없이 가는 고통이라 할 만큼 고통스럽고 지루한 작업”이라고 말한다.


작가 박해수 ⓒ데일리안DB 작가 박해수 ⓒ데일리안DB

자신만의 독특한 기법을 처음 시작한 계기는 꿈이었다. “보름 동안 눈만 감으면 얇은 실선들이 자석의 음극과 양극에 몰리듯 형상을 만드는 거예요. 이걸 회화로 하면 좋겠다는 욕망이 생겼죠”.


박 작가가 꿈에서 본 것은 하나의 형상 위에 수많은 색이 주기적으로 계속 바뀌며 끊임없이 쌓여 올라가는 과정이었다. 하지만 현실을 꿈에 일치시키기는 쉽지 않았고 수많은 실패를 겪었다. 그러던 중 공구상에서 구입한 헤라 칼에서 이제까지의 난점을 극복할 만한 기법을 발견, 현재의 신점묘법이 탄생했다.


작가 박해수는 “내 그림은 반성문 같은 것”이라고 말한다. 자신에게 고통스러울 정도로 쓰로 육체적 노동을 가함으로써 반성문을 쓰고 있다는 의미다.


무엇에 대한 반성일까. 어린 시절부터 그림 그리는 걸 좋아하며 재능을 보였고, 모든 상을 독차지할 만큼 그림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많은 역경을 딛고 짧게 준비한 대학입시에도 불구하고 중앙대 미대에 합격하였다. 그러나 대학 졸업 후 돈을 벌기 위해 미술학원 강사를 시작했고 잘나가는 학원 원장으로 18년 동안 수십억 원을 벌었지만, 사회적 고립감 등 갖은 어려움을 겪으며 모든 재산을 잃고 다시 고향 집으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노부모의 도움으로 다시 재기한 작가 박해수는 잘못 살아온 지난 세월에 대한 반성을 통해 많은 사람의 마음을 어루만지는 치유를 소망하며 한 작품 한 작품을 세상에 내놓고 있다.


Life story_53x73(20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Life story_53x73(20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Life story_53x73(20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Life story_53x73(20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물감을 몇 겹씩 쌓아 올리는 작업 방식은 ’삶의 고뇌를 담아내겠다‘는 결심에서 시작되었고, 이러한 결심은 다양한 매체를 활용하는 요즘 미술계의 트렌드를 등지고 고집스럽게 ‘그리기’에 집착하는 배경이기도 하다. 정성스럽게 얽히고설켜 있는 짧은 실선들은 누구도 쉽게 모방할 수 없는 예술작품으로 승화되어 캔버스 깊은 곳에서부터 맨 위까지 담담한 듯하면서도 비장하게 존재한다. 색색의 실선들이 펼친 마티에르의 향연은 아름답고도 슬픈 감동을 전한다.


Pray for…_65x65(25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Pray for…_65x65(25호)_Acrylic on canvas_2019 ⓒ갤러리K 제공

향후 작가 박해수가 자신의 독창적 표현 세계를 현대적 감각으로 확립해 나가는 모습을 기대한다. 더불어 관람객에게는 점이 실선이 되고, 실선이 겹겹의 존재감이 된 박해수 작가의 화폭을 찬찬히 감상하는 시간이 자신의 삶이 맞는 방향으로 가고 있는지 되돌아보는 사색이 되는 기적의 시간을 꿈꾼다.


박해수 작가/중앙대 예술대학 회화학과를 졸업했으며 2019년 콩세유 갤러리 개인전(서울) 전시, 2018년 이스탄불 아트페어(터키), 2017 광저우 삼현사 갤러리 개인전(중국) 등 국내 외 다수의 개인전, 단체전, 초대전에 참여했다. 현재는 갤러리K 제휴 작가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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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최영지 갤러리K 큐레이터 c6130@naver.com

홍종선 기자 (dunastar@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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