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퇴 없인 '3급 승진인사' 불가능…상위직급 '눈칫밥' 운영부담
금융권 "방만경영 인정하고 뼈 깎는 내부 쇄신 단행해야 한다"
공공기관 지정 위기에 놓인 금융감독원이 향후 3급 승진인사를 중단하거나 고위직에 대한 퇴사를 종용해야 하는 등 뼈를 깎는 쇄신 예고하고 있다. 금감원이 지난해 공공기관 지정을 면하면서 현행 43% 수준인 3급 직원 비율을 향후 5년 내 35%로 감축한다는 조건을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10일 금융권에 따르면, 지난해말 기준 금감원의 임원을 제외한 1~3급 직급의 비중은 42.8%다. '35% 감축 계획'을 이행하려면 매년 3급 이상 직원을 30명 이상 줄여야하는 쉽지 않은 과제를 떠안고 있다. 금감원 내부에선 "직원들의 불만이 쌓이는 등 조직운영 부담은 커질 수밖에 없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울리고 있다.
최근엔 금감원 1~3급 임직원 가운데 무보직자가 400여명에 달한다는 자료가 나오기도 했다. 1~3급 고위직이 일정 나이에서 승진이 안 되면 보직 없이 후배 팀장 밑에서 팀원으로 근무하게 되는 기형적인 구조를 지적 받은 것이다. 윤창현 국민의힘 의원이 금감원으로부터 받은 자료에 따르면 올해 9월말 기준 금감원 1~3급 중 무보직자는 총 413명이었다.
금감원은 "이들 대부분이 3급 수석조사역이며 감독‧검사국 등 주요 현업부서에 배치돼 실무 핵심인력으로 중추적인 역할을 수행하고 있다"고 해명했지만, 여전히 상위직급을 과다하게 운용하고 있다는 지적을 피하긴 어려운 상황이다.
당장 금감원은 2023년까지 3급이상 직원을 35%수준으로 감축하는 방안을 실행해야 한다. 금감원은 지난해 공공기관 지정을 면하기 위해 '35% 감축 계획'을 2028년까지 달성하겠다고 했다가 "정권이 바뀐 뒤엔 유야무야할 것 아니냐"는 지적을 받고, 목표 시한을 단축해야 했다.
금감원 내부에선 비현실적인 목표라는 지적과 함께 시간의 힘으로 뭉개려는 분위기가 적지 않았다. 당시 윤석헌 금감원장도 '상위직 35% 감축을 5년 내에 완료하는 것이 가능하냐'는 질문에 "쉽지 않지만, 방안을 찾아야 할 것"이라고 했다. 3급 이상 임직원에게 사직서를 받지 않는 이상,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점을 모를리 없는 윤 원장이다. 올해 이슈가 불거지자 "우리는 (공공기관 지정 유보) 절차를 잘 따라가고 있다"고만 했다.
公기관 지정 피하기 '3급 감축' 노력에 달려…인사 한파 시달릴 듯
금감원이 최근 3년 간 공공기관 지정이란 수술대에 오른 것은 고질적인 방만 경영 문제는 물론 채용비리, 부실 감독, 직원 비위 등으로 잇달아 물의를 일으켰기 때문이었다. 응시자의 점수를 조작해 부적격자까지 합격시킨 채용비리의 경우 여론을 들끓게 만들었고, 일부 직원의 가상화폐 투자와 주식거래 등은 금융시장의 신뢰도를 뒤흔들었다.
5000여개의 금융기관을 관리‧감독하는 강력한 권한을 가지고 공적 업무를 수행하면서도 민간 신분으로 공적 통제에서 벗어나 있는 '구조적 모순'에 따른 부작용이라는 학계의 지적이 끊이지 않았다. 이번엔 과거 신문 사회면에 실리던 수준의 논란이 아니다. 라임‧옵티머스 사태를 비롯한 사모펀드 사태가 정국을 뒤흔들고 있어 정치권의 손익계산에 따라 금감원의 명운이 갈릴 수도 있다.
우선 기획재정부는 내년 1월 말 공공기관운영위원회를 열어 금감원의 공공기관 지정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다. 형식적으로 보면 지난 2018년 금감원 대한 공공기관 재지정을 유보하며 내건 조건인 △채용비리 근절 △공공기관 수준의 경영공시 △엄격한 경영평가 △비효율적 조직운영 해소 등을 점검하게 된다.
이 가운데 채용비리는 최근 불거진 문제가 없어 금감원에서는 당당하게 '우수 이행'을 내세울 수 있는 사안이고, 경영공시나 경영평가 역시 비슷한 논리를 펼 수 있다. 문제는 '비효율적 조직운용 해소'다. 3급 이상 상위직 비중을 낮추는 노력이 부족하다며 공공기관 지정의 핵심 명분으로 작용할 수 있는 사안이다. 이와 맞물려 '신의 직장'으로 불리게 만든 임직원의 연봉이나 복지혜택 부문도 논쟁거리가 될 수 있다.
현재 금감원 대졸 신입사원은 5급인 조사역으로 입사해 선임조사역(4급), 팀장·수석조사역(3급), 국·부국장(2급), 국장(1급) 순으로 올라가는데, 공직자윤리법상 4급 선임부터 유관기관 취업이 3년간 제한된다. 금감원 직원 10명 중 8명이 취업제한을 받는 셈이다. 뼈를 깎는 쇄신을 하기 전에 뼈를 묻을 수밖에 없는 환경부터 살펴야 한다는 게 금감원 관계자의 설명이다.
일각에선 한국은행처럼 2급 이상 직원부터 취업제한 규정을 푸는 등 '퇴로'를 열어주는 것도 인사적체를 해소할 수 방안 가운데 하나로 꼽고 있다. 현재 명예퇴직 제도가 있긴 하지만, 퇴직금이 민간 금융사에 비하면 턱없이 부족해 사문화됐다. 자연스럽게 정년까지 채우고 퇴직하는 게 관행으로 자리 잡았다.
이에 지난해 금감원 노조는 헌법재판소에 임직원 재취업 제한에 대한 위헌소송을 제기하기도 했다. 다만 이 같은 규정 역시 금감원의 관리부실에 따른 '업보'라는 지적이다. 금감원은 지난 2011년 저축은행 부실사태 여파로 직원의 재취업 문제로 취업제한 적용 대상이 4급까지 확대됐다.
금융권 관계자는 "공공기관 논의에서 금감원을 관리‧감독에 무능한 조직이라고 지적하기 보단 방만한 경영을 하고 있다는 부분을 집중 거론할 것"이라며 "여론에 '이렇기 때문에 공공기관으로 지정한다'고 설명하기도 쉽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관계자는 "금융위원회가 또 한번 적극적으로 반대 논리를 펴주고, 방어해주면 공공기관 지정을 면할 것"이라면서도 "이후에라도 금감원이 방만 경영을 인정하고 뼈 깎는 내부 쇄신을 하면서 독립성 확보를 주장해야 할 것"이라고 지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