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껏 생각해본 적 없다" 출마 부인했지만…
정치적인 전략 차원에서의 발언으로 해석키도
'서울시장 후보 유승민이 좋다' 당내 여론 불변
유승민 국민의힘 전 의원이 내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부인하고 대권 직행을 시사했는데도, 당 안팎의 서울시장 출마에 대한 기대감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는 분위기다.
20일 정치권에 따르면, 국민의힘 내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이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가능성을 일축한 것과 관련해 정치적으로 당연히 취해야할 자세로 분석하면서도 '정치는 생물'이기 때문에, 실제로 출마 가능성이 완전히 사라졌다고는 볼 수 없다는 시각이다.
박성중 국민의힘 의원은 "항상 작은 것보다 큰 것을 해놔야 여러 가능성이 있기 때문에 통상적으로 이야기할 때는 '서울시장보다는 대권'이라고 얘기하게 된다"며 "정치적인 전략일 수도 있고, 상황에 따라 변할 수도 있다"고 관측했다.
허은아 국민의힘 의원도 "현재 유승민 전 대표 스스로는 대선을 말씀하는 게 당연한 것"이라면서도 "이번 서울시장 후보는 능력 있고 경제를 알아야 하는데, 그런 부분에서 고민했을 때 유승민 전 대표가 좋지 않겠느냐"고 말했다.
지난 18일 정치활동 재개를 알리는 기자간담회에서 유승민 전 의원의 발언이 나온 전후 맥락도 '서울시장 출마설'의 불씨를 꺼뜨리지 않게끔 하는 요소다.
당시 간담회가 시작되자마자 서울시장 출마 여부에 대한 질문부터 나왔다. 이에 대해 유승민 전 의원은 "이제까지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다"면서도 "그런 이야기가 건네져온다면 그 때 가서 답은 해야할 것"이라고 답했다. 정치문법으로서는 상당히 긍정적인 뉘앙스다.
도중에 진수희 전 보건복지부 장관과 구상찬 전 의원이 뭔가를 논의하다가, 권성주 대변인을 통해 메모를 전달했다. 메모를 전달받은 유승민 전 의원은 권 대변인에게 "뭐가 가능성이 높느냐. 왜"라고 한 뒤, 웃으며 다시 마이크를 잡고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높다고 쓰는 분이 있으면 오보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주의를 환기했다.
진 전 장관과 구 전 의원 같은 정치권 인사들이 보기에도 간담회 초반의 답은 오히려 서울시장 출마 쪽에 무게중심을 싣는 것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고 느낀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메모지가 들어오기 전의 발언이 속내에 가까울 것으로 해석하는 견해가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정황에 기대감 끼얹어져 '출마설' 꺼지지 않아
"대선이라기엔 스텝이 빨라…서울시장 염두?"
'필승카드'라 복잡한 구상 필요없단 점도 강점
통상적으로 정치인의 속내는 말보다는 정황으로 판단한다. 박성중 의원의 지적대로 '말'은 '정치적인 전략'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유승민 전 의원의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이 살아있다고 주장하는 인사들은 그 정황 근거로 캠프사무실 '희망 22'의 개소가 대선을 겨냥하기에는 지나치게 이르다는 점을 꼽는다.
국민의힘 4선 중진의원은 이날 데일리안과 만나 "대권주자 중에 벌써 캠프 사무실을 열고 공개활동을 하는 주자가 어디 있느냐"며 "대선보다 좀 더 이르게 열리는 다른 선거를 겨냥하고 있는 게 아닌가 생각되며, 그렇다면 서울시장 출마 가능성도 배제 못한다"고 바라봤다.
장성철 공감과논쟁 정책센터 소장도 SBS TV '주영진의 뉴스브리핑'에 출연해 "대선에 나가겠다고 하면 (개소식은) 내년 3~4월쯤인데, 대선 캠프라고 하기에는 너무 스텝이 빨라보인다"며 "일각에서는 스텝이 빠른 것으로 봐서는 서울시장도 염두에 둔 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온다"고 전했다.
이러한 측면에서 바라보면 유승민 전 의원이 캠프사무실 명칭을 2022년 대선을 겨냥한다는 점을 명시해 '희망 22'라고 지은 것도 오히려 허허실실(虛虛實實)의 전략으로 해석될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내년 4·7 서울시장 보궐선거의 최대 쟁점이 될 '서울 부동산 문제'에 대해 유승민 전 의원이 굉장히 준비된 모습인 점도 정황에 '부채질'을 하는 요소다.
유 전 의원은 지난 16일 토론회와 18일 기자간담회에서 서울의 주택 문제와 관련한 질문을 받고 상당히 깊이 있는 '공부'가 돼 있는 모습을 보였다. 이같은 모습이 유 전 의원이 최근 서울시장 출마 문제와 관련한 보고서를 접했다는 점과 맞물리며 '출마설'의 근거로 제시되는 모양새다.
이상의 정황은 단순한 '정황'에 기대감이 혼재된 모습이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권력형 성범죄 의혹으로 인해 치러지는 보궐선거조차 패배한다면, 향후 서울에서 국민의힘은 어떤 유리한 여건 속에서도 승리를 기대할 수 없다는 절망감에 휩싸일 수밖에 없다.
이러한 우려 속에서 유승민 전 의원은 '필승 카드'로 비쳐지기에 기대감이 쏠리는 것이다. 유 전 의원이 '결단'한다면 '2단계 단일화' '국민경선' '시민후보' 등 복잡한 시나리오도 필요 없다. '조국 흑서' 공저자 권경애 변호사가 "유승민 전 의원이 서울시장 후보로 나온다면, 선거권을 가진 이후 최초로 저쪽 후보에게 표를 던질 생각"이라고 밝혔을 정도다.
장성철 소장은 "(서울시장 보궐선거에서) 반드시 이길 수 있는 후보, 가장 경쟁력이 있는 후보가 누굴까 한다면, 국민의힘 내에서는 유승민 전 의원 밖에 없다는 인식이 광범위하게 퍼져 있다"고 설명했다.
김종인, 유승민에 '명분' 줄지 여부도 관심사
'과거 정부 과오 사과' 입장엔 일단 의기투합
"얘기가 건네져온다면 답은 해야할 것" 여운
대권주자로서 '체급'을 낮춰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나서려면 명분이 필요하다. 경선준비위원회가 '경선 룰'을 마련했으며 이미 출마선언을 한 후보들까지 있는 마당에, 전략공천이나 추대는 당을 큰 혼란에 빠뜨릴 수 있어 정치현실상 있을 수 없는 일이다.
'공식적인 루트'로 출마 제안이 오면 어떻게 하겠느냐는 질문에, 유승민 전 의원이 "경선에서 후보를 뽑는 원칙과 절차가 있으니 공식적으로는 말하지 못할 것"이라며 웃은 것은 이 때문이다.
다만 유 전 의원은 "현재로 서울시장 출마는 전혀 생각해본 적이 없다는 게 분명한 사실"이라면서도 "그런 얘기가 건네져온다면 그 때 가서 답은 해야할 것"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물밑 요청'은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의 당무 스타일은 아니다. 그러나 김종인 위원장도 유승민 전 의원의 명분을 살려주기 위해 가능한 범위 내에서 최대한으로 노력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온다. 지난 16일 유 전 의원의 사무실 개소식에 직접 참석해 힘을 실어준 게 하나의 예다.
경선준비위원으로 활동했으며 평소 김 위원장과 접촉이 잦은 것으로 알려진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이 "우리 당 대권주자로 거론되는 분들 중 성과를 보이지 않았던 분들은 서울시장 출마부터 하시라"며 "서울시장으로 성과와 업적을 국민들께 보여주고 대권 가야 찍는 유권자들도 안심할 게 아니냐"고 한 것도 의미심장하다.
김 위원장이 '교감'을 통해 메시지를 내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박 의원의 '독해' 가능성을 배제할 수는 없다는 분석이다.
또, 국민의힘 안팎에서 주목하는 것이 '이명박·박근혜정부 과오 사과' 문제다. 유승민 전 의원이 사무실을 개소하는 날이었던 지난 16일, 비상대책위원회의가 비공개로 전환된 직후에 김 위원장이 "이달말, 내달초까지는 대국민사과를 해야겠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김 위원장의 이 발언은 누가 물어봐서 대답한 게 아니라, 묻지도 않았는데 먼저 말한 것이라고 한다. 왜 이달말~내달초까지는 대국민사과를 해야겠다는 마음이 동했는지 생각해볼 여지가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유승민 전 의원에게 붙어있는 '탄핵 배신자' 꼬리표는 당내 경선에 뛰어든다면 후보자 토론회에서 일단 한 번 공격받고 시작하게 되는 소재"라며 "박근혜 전 대통령의 과오를 사과하겠다고 한 것은 이 꼬리표를 김 위원장이 나서서 떼주겠다고 한 셈 아니냐"고 분석했다.
유승민 전 의원은 김종인 위원장의 '이명박·박근혜정부 과오 사과' 입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를 계기로 쌍방 간에 마음을 읽어가는 절차가 심화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도 나온다.
유 전 의원은 "박근혜정부의 잘못을 사과하는 것은 국민의 마음을 얻기 위해서라면 한 번이 아니라 열 번, 스무 번이라도 할 수 있는 것"이라며 "김종인 위원장의 결정에 대해 지지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