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대銀 연체율 평균 0.25%…지난해 말보다 오히려 개선
코로나 악재에도 이례적 흐름…정부 금융지원 '착시효과'
국내 4대 시중은행들의 대출에서 발생하고 있는 연체 비율이 역대 최저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이하 코로나19) 사태로 경제적 어려움이 커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정부가 인위적으로 금융 시장에 손을 대면서 생긴 착시효과가 현실을 가리고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이에 금융권에서는 지금의 연체율이 금융권의 현 주소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하고 있다는 분석과 함께, 조만간 부실 폭탄이 터질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온다.
27일 금융권에 따르면 올해 3분기 말 신한·KB국민·우리·하나은행 등 4개 은행이 보유한 대출에서 1개월 이상 상환이 밀린 금액의 비중은 평균 0.25%로 집계됐다. 이는 국내에서 코로나19가 기승을 부리기 직전인 지난해 말(0.25%)보다 0.01%포인트 낮아진 수치이자, 금융당국이 관련 통계를 작성하기 시작한 이래 가장 낮은 연체율이다.
은행별로 보면 우선 국민은행 대출의 연체율이 올해 들어 0.24%에서 0.20%로 0.04%포인트 하락하며 조사 대상 은행들 중 최저를 기록했다. 우리은행의 대출 연체율 역시 같은 기간 0.30%에서 0.29%로 0.01%포인트 낮아졌다. 하나은행과 신한은행의 대출 연체율은 각각 0.20%와 0.26%로 같은 수준을 유지했다.
이런 흐름에 대해 금융권에서는 이례적이란 평가가 나온다. 은행 연체율은 통상 경기 여건이 나빠질수록 악화하는 흐름을 보이는데, 올해는 코로나19로 인한 경제적 타격에도 불구하고 오히려 다소 개선된 모습을 나타내고 있어서다.
이처럼 은행 연체율이 낮아진 요인으로는 우선 눈에 띄게 몸집을 불린 대출 규모가 꼽힌다. 연체율은 대출에서 상환이 미뤄지고 있는 금액을 대출 총액으로 나눠 계산하는데, 분모에 해당하는 대출금 자체가 워낙 빠르게 늘다 보니 전반적인 연체율이 낮아지고 있다는 얘기다.
실제로 4대 은행의 지난 달 말 기준 원화 대출 잔액은 1017조6301억원으로 지난해 말보다 9.5%(88조6181억원)나 증가했다. 지난해 한 해 동안 이들의 원화 대출이 875조8528억원에서 929조120억원으로 6.1%(53조1592억원) 늘어났던 것과 비교하면, 아직 올해가 다 가기도 전에 연간 대출량이 30조원 넘게 확대된 상황이다.
하지만 금융권이 이보다 더 주목하는 대목은 정부 정책의 영향이다. 금융당국은 올해 초부터 코로나19 금융지원이라는 이름으로 은행들에게 적극적인 만기 대출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주문했다. 코로나19로 일시적 어려움에 빠진 서민들의 금융비용 부담을 줄여줘야 한다는 취지에서였다.
이 같은 금융지원 정책은 대출 연체액을 줄여주는 효과를 낳을 수 있는 요소다. 만기나 이자 상환 시점을 연기해주지 않았더라면 즉시 연체로 잡힐 수 있었던 대출이 정책의 혜택 덕에 수면 아래로 가라앉게 돼서다. 4대 은행의 대출 연체 금액은 올해 3분기 말 2조5200억원으로 지난해 말(2조5011억원)보다 다소(0.8%·189억원) 감소했다.
이로 인해 금융권에서는 현재 은행의 대출 연체율을 곧이곧대로 바라볼 수 없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대출 총량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코로나19 충격이 계속되고 있음에도 연체율이 하향 곡선을 그리고 있는 배경에는 정책적 개입의 반사작용이 강하게 자리하고 있다는 해석이다.
이 때문에 정부의 대출 관련 금융지원 정책이 종료되면, 숨어 있던 대출 연체가 드러나면서 은행의 건전성 지표가 급격히 악화될 수 있다는 염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만기 대출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 조치는 내년 상반기 중 끝날 예정이다. 아울러 코로나19를 딛고 경기가 회복돼 대출 규모가 줄기 시작하면 연체율은 더욱 오를 가능성이 있다.
금융권 관계자는 "코로나19 금융지원에 가려져 숫자로 확인되지 않는 부실 대출이 상당 폭 잠재돼 있다고 봐야 하는 만큼, 지금의 연체율로 은행의 대출 건전성을 긍정적으로 파악해서는 안 될 것"이라며 "경기 침체 국면이 장기화하는 가운데 정책적 효과가 사라지게 되면 자칫 연체율이 급등할 수 있다는 측면을 감안해 금융 리스크를 관리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