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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기획┃장애연기①] “더이상 연민 대상‧의존적 존재 아냐”


입력 2020.11.30 14:37 수정 2020.11.30 14:38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과거 의존적인 존재에서 독립적인 캐릭터로 표현

‘사이코지만 괜찮아’ 장애인 비하 논란 아쉬워

"장애인에 대해서 지나치게 어렵고 불편하고 고통스러운 모습을 부각시켜 동정심을 일으키려는 태도는 버려야 한다. 실제 우리 사회는 장애인이 사회적 차별 없이 편안하게 살아갈 수 있도록 보장하는 사회․ 제도적인 장치들과 장애인들에 대한 인권의식이 미흡한 점이 너무나 많다. 게다가 미디어에서 장애인을 지나치게 고통스럽고 우울한 이미지로 인식시키는 것은 장애인에 대한 또 하나의 편견과 차별을 낳을 뿐이다. 따라서 장애인의 어려운 삶을 그릴 때에도 그의 개인적 비극으로 부각시키는 것은 아닌지 주의하고, 되도록 그와 관련된 사회적 지원에 어떤 문제가 있는지, 이를 개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한지 등에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장애우권익문제연구소가 발표한 ‘언론인을 위한 장애인권 길라잡이’ 중 영상표현・장애인 캐릭터연출・언어표현 가이드라인에 게재된 내용이다. 미디어가 장애인을 어떻게 그려내는지에 따라, 장애인을 바라보는 인식 변화에 영향을 미칠 수 있기 때문에 최대한 사실에 근거한 표현을 고심해야 한다고 언급한 것이다.


하지만 과거 드라마 속 장애인은, 누군가의 도움을 받는 대상이거나 연민을 일으키는 수동적인 이미지가 강했다. 또 장애가 불안요소의 원인으로 종종 설정됐다.


2000년 MBC '엄마야 누나야' 황수정이 연기한 장여경 역은 언어장애로 인해 세상을 향한 마음의 문이 닫혀있는 배타적인 성격의 소유자로 묘사됐다. 이후 수철(안재욱 분)과 사랑하며 되며 점점 세상과 융화되지만, 누군가의 도움이 아닌 자체로는 미완성의 존재로 표현했다.


2004년 MBC '불새'의 미란(정혜영 분)은 재벌가의 딸이지만 사고로 하반신 장애를 가진 인물로, 자신의 약혼자 세훈(이서진 분)이 과거 자신의 친구 지은과 결혼했었다는 사실을 알고 질투와 괴롭힘을 일삼는다. 또 세훈이 하반신 마비가 된 사고에 대해 죄책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을 교묘하게 이용해 곁에서 떠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는 극적 긴장감을 높이기 위한 갈등의 요소로 그려진 것이나, 자칫 대중에게 장애인을 적대적인 존재로 인식시킬 수 있었다.


또한 '하얀거짓말'(2008), '남자 이야기'(2009) '찬란한 유산'(2009) 등은 자폐증이나 지적장애를 지닌 이들이 특정 분야에서 천재적 재능을 보이는 현상인 서번트 증후군 등장인물을 등장시켰다. 특정 분야에 뛰어난 능력을 가진 장애인이 있을 수 있지만, 모두가 그렇지는 않기 때문에 틀에 박힌 묘사가 장애인을 향한 그릇된 인식 혹은 기대를 가져올 수 있다.


비교적 가까운 시기에 방송된 '굿닥터'(2013)는 서번트 증후군을 잘 표현한 케이스다. 자폐성 장애인인 시온(주원 분)이 사람을 치료해주는 걸 좋아하는 일로 여기며 동료 의사, 환자들과 자신의 영역 안에서 소통하며 꿈을 이뤄내 호평 받았다.


송혜교가 시각장애인 역을 맡아 화제가 됐던 '그 겨울 바람이 분다'(2013)는 장애인에 대한 이해와 인식이 부족했다는 평을 들었지만, 해명 후 장애인의 다양성에 화두를 던지는 계기로 작용했다. 극중 송혜교가 연기한 오영이 립스틱을 바르고 킬힐을 신는다는 설정이 현실성이 떨어진다고 지적을 받았다. 하지만 노희경 작가는 "시각장애인들을 취재하면서 가장 놀랐던 부분이 그들이 가장 듣기 싫어하는 말이 '가만 있어'였다. 이 사람들을 가둬야 된다는 생각이 이 사람들을 다치게 한다는 걸 알게 하고 싶었다"면서 반박했다. 노희경 작가의 해명이 오히려 대중이 장애인을 편견 속에 가두고 있진 않았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물음표가 됐다.


지난해 개봉한 '증인'은 살인사건을 목격한 유일한 증인이지만, 서번트 증후군을 앓고 있는 지우(김향기 분)를 주인공으로 내세웠다. 변호사 순호(정우성 분)와의 만남이 세상과 소통하는 계기가 돼 스스로 증인이 되어가는 모습을 진정 있게 그렸다는 평을 들었다.


시간이 지나면서 미디어가 장애인을 바라보는 시선이 성숙하게 달라진 것은 사실이지만 여전히 경솔한 표현으로 논란을 야기한 사례도 있다.


지난 8월 종영한 tvN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고문영(서예지 분)이 출간 기념회에서 지적장애인 문상태(오정세 분)가 모욕을 당해 자신 만의 공간에 숨어버리자 "형은 뒷머리가 예민한가봐. 성감대 그런건가?", "아 폭탄 스위치. 만지만 펑 터지고 그런거지?"라며 문상태가 머리를 때리며 불안해하는 모습을 따라해 장애인 비하 논란에 휩싸였다. 여기서 고문영의 이 같은 행동은 문상태(김수현 분)의 시선을 끌기 위함이었다.


'사이코지만 괜찮아'는 오정세의 지적장애 연기가 호평을 받은 작품이다. 뿐만 아니라 정신병동을 배경으로 장애인 뿐 아니라 사회적 약자의 모습을 순수하게 표현해 즐거움을 줬지만, 배려가 부족한 장면으로 도마 위에 올랐다. 2020년에도 여전히 장애인을 향한 시선과 이해가 깊지 못했다는 아쉬운 사례로 기억됐다.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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