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사에 없는 '찬성 토론'으로 野 입 막은 與
주호영, '야당의 시간'에 간신히 30분 발언
"나홀로독재당의 모습 그대로 보여줬다"
"발언 시간 30분 얻기가 이렇게 힘든 필리버스터를 할지 말지 참담하다."
엿새 동안 이어진 무제한 토론(필리버스터)의 대미를 장식한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14일 밤 국회 연단에 오르자마자 더불어민주당의 '잔혹함'에 대해 토로해야 했다.
당초 3시간 이상 연설을 계획했던 주 원내대표가 이재정 민주당 의원의 5시간 이상 계속된 연설에 발언 시간을 얻지 못하게 된 데 대한 항의다. 필리버스터가 국회법이 보장한 '야당의 시간'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전 세계에 유례가 없는 '찬성 필리버스터'로 제1야당 원내대표의 발언시간마저 빼앗아 간 것은 '악랄했다'는 비판이 나온다.
'이재정 다음은 주호영' 밝히자 민주당 연락두절?
대기하는 주호영 보며 5시간 이상 토론한 이재정
주 원내대표는 당초 이재정 민주당 의원 다음으로 필리버스터에 나서 3시간 이상 연설을 할 계획이었다. 배현진 원내대변인은 "국민의힘 다음 필리버스터 주자는 주호영 원내대표"라며 "원내대표로서 정권의 무도함, 여야 난맥상을 직접 3시간 넘게 지적할 예정"이라고 했었다. 주 원내대표는 이를 위해 저녁 시간부터 본회의장에서 대기하며 차례를 기다렸다.
그러나 이 의원이 5시간 이상 '찬성' 필리버스터를 진행하면서 주 원내대표의 발언 기회는 박탈됐다. 종결 투표가 예정된 이날 필리버스터는 시작부터 시간제한을 두고 시작됐기 때문이다. 이 의원 측은 토론 시간에 대해 어떤 사전 예고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배 원내대변인은 "양당 협상의 난항 가운데에도 양당 원내 지도부의 비공식 대화의 채널은 열려있어야 한다. 그러나 오늘 낮, 민주당 이재정 의원에 이은 국민의힘 필리버스터 주자가 주호영 원내대표라는 사실이 알려진 직후부터 민주당 지도부에 연락이 닿지 않았다"며 "의회주의와 법치파괴에 앞장선 민주당이 지난 6개월을 소통해 온 상대당 지도부에 대한 최소한의 도의마저 내팽개친 일에 심각한 유감을 표한다"고 비판했다.
필리버스터 종결 투표 직전에야 여당 지도부와 만난 국민의힘은 야당 원내대표에게 발언권도 주지 않는 민주당을 향해 '해도 해도 너무한다'며 강력하게 항의했고, 주 원내대표는 박병석 국회의장의 중재로 가까스로 30분의 시간을 얻어 연단에 설 수 있었다.
주 원내대표가 간신히 얻은 시간에 연설을 하는 동안에도 민주당 의원들은 "이러면 속 시원합니까?"라는 물음에 "시원합니다!"라고 대답하는 등 비아냥대는 모습으로 일관했다.
주 원내대표의 필리버스터는 26분간 이어졌고, 필리버스터 종결동의안 표결 결과 187명의 찬성으로 가결됐다. 이날 투표에선 박병석 의장도 찬성표를 던졌다.
'소수 의견의 표현 권리를 보장해야 한다'는 정의당 역시 중대재해기업법을 이번 회기 내에 처리해주겠다는 민주당의 '당근'에 표결에 참여해 6표의 찬성표를 던졌다.
'야당을 존중한다'는 민주당의 말에 시작된 이번 필리버스터는 사상 초유의 '강제 중단'으로 끝을 맺게 됐다. 지난 2012년 국회선진화법이 시행된 이후 필리버스터가 강제로 종결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주호영 "나홀로독재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
김기현 "시계를 과거로 되돌린 '운동권 독재의 나라"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는 민주당의 이같은 행태에 "나홀로독재당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다"고 강도 높게 비판했다.
주 원내대표는 15일 국회에서 열린 당 원내대책회의에서 "민주당은 이제 당명을 그대로 쓸 수 없을 것이다"며 "더불어도, 민주도 아니다"고 말했다.
이어 "요 며칠 사이 대한민국의 의회주의와 법치주의, 민주주의가 몰락해가는 과정을 국민들과 함께 목도하고 있다"며 " "(여당은) 심지어 필리버스터도 힘으로 강제중단시키고 막았다. 야당의 입을 막았다는 것은 국민의 입을 막은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필리버스터 종결에 찬성표를 박병석 의장을 향해서도 "당적을 이탈해서 중립을 지켜야 할 국회의장이, 더구나 법안 내용도 아니고 의사진행에 관해서 특정정당의 편을 들어서 의장석을 비우고 내려오는 것은 도저히 받아들일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기현 국민의힘 의원은 이날 자신의 페이스북에 "민주화 30여 년 만에 민주주의 시계를 과거로 되돌린 '운동권 독재의 나라'"라며 "정권과 다른 의견이라면 입을 닫고 살아야 하는 '전체주의의 나라!'라고 개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