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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 나라가 왜이래②] '영도자의 뜻대로'…북한식 인치 뺨치는 文의 법치


입력 2020.12.16 07:00 수정 2020.12.16 03:04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북한식 법치주의 '법은 입맛대로 바꾼다'

권력분립‧적법절차 등 구현원리 없는 형식

與, 다수의석으로 공수처 강행…법치 형해화

'선량한 대통령의 개혁'이라며 반론 적폐몰이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월 28일 국회 예산안 시정연설을 마치고 국회 본청을 빠져나가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학창시절 '북한법과 체계'라는 수업을 들었을 때다. 북한의 '유사 법치주의' 사례를 살펴보면서 법치주의의 개념을 이해했던 계기여서 정확히 기억이 난다. 한반도에너지개발기구(KEDO) 미국 측 고위인사로 참여해 북한을 오랜기간 관찰했던 교수는 북한의 법치주의를 다음과 같이 설명했다.


"북한에도 헌법과 법률은 있고, 인민들은 엄격한 적용을 받는다. 하지만 고위층, 특히 수령이나 당 지도부로 가면 전혀 다르다. '절대선'인 영도자의 뜻과 당의 의지가 있다면 헌법과 법률 따위는 얼마든지 뜯어 고칠 수 있는 것이 되기 때문이다. 그래서 북한은 '인치 혹은 정치'가 중요하고 법치는 하위개념에 불과하다. 법을 통해 다스린다는 사전적‧형식적 의미의 법치는 맞지만, 현대적 의미의 법치주의는 아니다."


법치 측면에서 북한과 유사한 사례는 히틀러의 나치정권을 꼽을 수 있다. 지배자의 자의가 법률이라는 탈을 쓰고 합법으로 둔갑했고, 반인륜적 범죄까지 법으로 가능했다. 2차 대전을 겪고 나서야 인류는 단순히 '법에 따른 혹은 법을 통한 통치'라는 형식적 법치주의에서 나아가 주권자와 위임받은 권력 모두 '법의 지배'를 받는 실질적 법치주의의 필요성을 인식하게 됐다. 실질적 법치주의를 구현하는 핵심 요소로 확립된 것이 권력분립과 적법절차다.


그런데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법치주의의 핵심 원리가 훼손되고 있다는 우려가 적지 않다. 대표적인 사례가 문재인 대통령의 뜻에 따라 설치되는 고위공직자비위수사처(공수처)다. 고위공직자 비위사건에 관해 수사권과 기소권을 모두 갖고, 언제든 검경의 사건을 가져올 수 있으며 다른 기관의 견제도 받지 않는 준사법기관이 탄생했다. 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 강행으로 유일한 '견제' 수단이었던 야당의 공수처장 비토권 마저 무력화됐다.


반대의견은 철저히 무시했다. '선량한 대통령의 뜻과 민주당의 개혁의지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에 불과하다'는 논리였다. '민주당에 180석을 몰아준 국민들의 뜻'이라는 주장도 심심치 않게 나왔다. 선민의식을 바탕으로 선악 이분법으로 접근하는 586 운동권의 정치인식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유창선 시사평론가는 "불완전한 인간을 제도를 통해 견제해야 민주주의는 가능하다"며 "민주주의를 하는데 인간의 선의를 전제로 하는 것 만큼 어리석은 일은 없다. 공수처를 제도가 아닌 신념의 영역으로 만들어버린 것은 이성에 반하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민주적 통제' 명분으로 검찰 독립성 훼손
검사 99%가 비판해도 윤석열 징계 강행
진중권 "與, 얼굴에 철판깔고 적법절차 무시"


추미애 법무부 장관이 지난 10일 국회에서 열린 본회의에 출석해 손을 흔들어 인사하고 있다.ⓒ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공수처법 개정안 처리과정에서는 적법절차가 무시됐다. 충분한 시간을 갖고 여야가 숙의하라는 취지로 '90일 이내 안건조정위원회를 운영할 수 있다'는 국회선진화법은 1시간의 논의만으로도 끝낼 수 있다는 역발상적인 해석으로 둔갑했다.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는 '시끄럽다'는 이유로 반대토론을 2분여 만에 종료시키고 기립표결로 끝내버렸다. 공수처법을 떠나 합의를 위한 국회 시스템과 선례가 무너졌다는 게 국가적으로 무엇보다 큰 손해라는 지적이다.


백미는 '민주적 통제'를 명분으로 법무부 장관이 검찰총장을 무력화시킨 일이다. 올해 초 취임한 추미애 법무부장관은 "윤석열 총장이 영을 어겼다"며 법에 규정된 검찰총장 의견청취 절차를 건너뛰고 인사를 단행했으며, 헌정사상 단 한 차례 있었던 수사지휘권을 무려 6차례나 발동하기도 했다. 검찰 독립의 핵심 요소인 인사권과 수사권을 법무부장관이 쥐고 흔들었던 셈이다.


이와 관련해 법원은 윤 총장 직무정지처분 집행정지 결정에서 "검찰총장이 법무부장관의 지휘감독권에 맹종할 경우 검사들의 독립성과 정치적 중립성은 유지될 수 없다"며 "그래서 검찰총장으로 하여금 부당한 정치권력에 휘둘리지 않도록 임명 전에 국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쳐서 철저히 검증하고, 일단 임명되고 나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임기를 보장한 것"이라고 했다. 법치주의를 실현함에 있어 검찰 독립성이 중요하다는 취지였다.


윤 총장에 대한 징계 역시 '법치주의 훼손'이라는 비판이 거세다. 실체적 진실이 규명되지 않았을 뿐더러 절차도 지키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검사의 99%가 징계위 소집에 반대했고, 법무부 감찰위원회는 만장일치로 "부적정했다"고 결론내렸다. 징계위원 위촉과 기일지정 등 절차적 정의를 지켰는지를 두고 법적 다툼도 예상되고 있다.


논란에도 불구하고 정부와 민주당, 추 장관은 강행돌파다. '선량한 대통령의 뜻과 당의 개혁의지에 대한 기득권의 저항'이라는 일관적인 논리다. 일선 검사들의 반발에는 '검찰 조직을 싹 갈아 엎어야 한다'고 대응한다. 민주주의 위기를 설파하고 있는 진보학자 최장집 교수는 후안 린츠의 말을 인용, "민주주의의 가장 위험한 적은 스스로 민주주의자로 투쟁하고 있다고 확신하는 이들"이라고 했다.


진중권 전 동양대 교수는 "문제의 본질은 두 가지 법관념의 충돌이다. 근대사법에 기초한 자유주의적 법관념과 인민민주주의의 습속에서 비롯된 전체주의적 법관념"이라며 "지금 우리가 보는 것은 법정 안의 법리가 아니라 법정 밖의 대중선동으로, 후자가 전자를 무장해체시키는 과정"이라고 규정했다.

정계성 기자 (minjks@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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