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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스형 나라가 왜이래④] 공염불 된 협치, 집권세력 지지율 하락엔 이유가 있다


입력 2020.12.18 07:00 수정 2020.12.18 00:27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야당 의원에게 '엿' 얘기까지 나오게 한 협치

'우분투' 말했지만 '승자독식'으로 채워 넣어

야당의 유일한 저항 수단 '필리버스터'도 막아

집권세력 지지율 하락은 일방독주에 대한 경고

문재인 대통령이 16일 국회 본회의장에서 열린 제21대 국회 개원식에서 개원연설을 마친 뒤 본회의장을 떠나며 주호영 미래통합당(국민의힘 전신) 원내대표와 인사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여야 협치를 몇 번이나 강조했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을 다 독식하고 며칠 있다 와서 협치를 얘기하는 것은 야당 '엿' 먹으라는 얘기 아니냐"


김태흠 국민의힘 의원은 지난 13일 국가정보원법 개정안에 반대하는 필리버스터 도중 협치와 관련해 격한 반응을 보였다. 문재인 대통령이 2017년 취임사에서 "야당은 국정 운영의 동반자"라고 말하고 지난 7월 21대 국회 개원 연설에서 "반드시 새로운 협치의 시대를 열겠다"고 강조했으나, 공언했던 협치가 제대로 되고 있다고는 문 대통령조차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하버드대 교수인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랫은 민주주의가 파괴되는 이유에 대해 "상대 정당을 정당한 경쟁자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들은 '어떻게 민주주의는 무너지는가'라는 책에서 민주주의는 형식적 법치주의로 지켜지지 않으며, 민주적 규범의 핵심인 상호 인정과 존중, 권력의 절제가 반드시 전제돼야 한다고 지적한다. 협치가 실종된 한국 정치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집권여당 더불어민주당은 정기국회 마지막 날까지 입법 폭주를 멈추지 않았다. 야당의 극한 반발 속에서도 사정없이 의사봉을 두드렸다. 범여권까지 포함해 190석 가까이 확보한 민주당은 다수결의 원칙에 따라 법이 정한 절차를 밟은 것이라고 강변했다. 그러나 앞선 지적처럼 '형식적 법치주의'에 불과하고, 토론과 숙의 없이 정파적 이익만 관철하는 것은 전체주의와 다름없다는 비판이 나온다.


집권세력은 협치의 자리에 승자독식을 채워 넣었다. 개헌 빼고 다 할 수 있다는 의석수를 확보했기 때문에 '합법적'이다. 민주당은 지난 20대 국회에서 법적 근거가 없는 전대미문의 '4+1 협의체'를 구성해 선거법 개정안을 짬짜미하고 공수처법을 패스트트랙으로 지정해 처리했다. 그러나 그런 수고조차 필요가 없어진 21대 국회는 '민주당 국회'가 됐다. 20대 국회에서 야당의 비토권을 공수처법의 명분으로 삼았던 민주당은 21대 국회가 되자 비토권을 빼앗는 공수처법 개정안을 단독으로 처리했다.


이낙연 민주당 대표는 당대표 취임 후 첫 교섭단체 대표 연설에서 넬슨 만델라 전 남아프리카공화국 대통령의 '우분투'(Ubuntu·당신이 있어 내가 있다)를 언급하며 협치를 강조했다. 그러나 정기국회에서 야당이 반대하는 법안들을 일방 처리한 뒤 이 대표는 "1987년 민주화 이후 가장 많은 개혁을 이뤘다"고 자평했다.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우분투 정신에 입각해 야당과 협치하는 게 맞느냐'는 질문을 받았지만 "국회법이 정하는 절차 내에서 처리했다"고 말했다.


국민의힘 의원들이 더불어민주당의 공수처법 개정안 등 입법 강행에 맞서 국회 법사위 회의실 앞에 집결해 규탄 구호를 외치고 있다. ⓒ데일리안 박항구 기자

이 과정에서 야당의 유일한 저항 수단마저 무력화했다. 국민의힘이 공수처법·국정원법·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 등 3개의 쟁점 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강제로 종결한 것이다. 처음에는 "소수정당의 반론권을 보장해주겠다"면서 야당을 존중하는 듯했으나, 국민의힘 초선 의원들이 필리버스터에 참여하겠다고 나서고 윤희숙 의원이 최장 기록을 세우는 등 기세가 심상치 않자 코로나19라는 다소 궁색한 이유를 내세워 마이크를 꺼버렸다.


21대 국회의 협치 실종은 개원과 동시에 나타났다. 민주당이 상임위원장 18개를 독식한 게 대표적이다. 전두환 정권 시절인 12대 국회 이후 33년 만이자 처음이었다. 법사위원장과 예결위원장을 야당이 갖는 것은 국회가 행정부를 견제하는 장치로 작용해왔으나, 이러한 여야 관행은 깡그리 무시됐다. 여권에 잔뼈가 굵은 보좌관조차 "이렇게 하는 게 맞는가 싶다. 저들(야당)은 집권했을 때 이렇게까지 안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


집권세력은 야당을 협치 상대로 말하면서도 때로는 '적폐세력' '토착왜구' '극우세력'이라고 몰아붙였다. 국민의힘이 대공수사권을 경찰로 이관하는 내용의 국정원법 개정안과 대북전단 살포를 규제하는 남북관계발전법 개정안에 필리버스터를 신청하자, 김태년 민주당 원내대표는 "독재정권의 후예임을 자처하는 것이냐"고 압박했다. 야당에서는 "협치가 민주당의 미사여구로 쓰인다"는 반발이 나왔다.


야당 무시 논란은 여당에서만 있지 않다. 지난 11월 청와대 참모들은 국정감사 불출석을 무더기로 통보해와 국회 운영위 파행을 불렀다. 청와대 경호원들은 문 대통령과 환담을 앞둔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를 몸수색해 야당으로부터 "협치하겠다고 오신 분들이 맞느냐"는 반발을 샀다. 추미애 법무부 장관은 아들 군휴가 미복귀 의혹을 묻는 야당 의원에게 "소설을 쓰시네"라고 비아냥대기도 했다.


압도적 의석수를 기반으로 "절차대로 한다"는 민주당은 그러나 최근 지지율 하락에 고심하고 있다. 민주당의 일방독주에 민심이 등을 돌리고 있는 것이다. 리얼미터가 TBS 의뢰로 지난 14~16일 실시한 여론조사에 따르면, 문 대통령의 국정 수행 지지율은 38.2%로 3주 연속 30%대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율은 29.9%로 국민의힘 지지율 31.2%보다 낮았다. 자세한 내용은 중앙선거여론조사심의위원회 홈페이지 참조하면 된다.


야당을 배제한 채 처리한 법안들도 민주당에 '마이너스'로 되돌아오고 있다. 민주당은 세입자 보호와 전월세 시장 안정을 위해 '임대차 3법'을 야당의 반대에도 강행 처리했지만, 지금은 전세난을 더욱 심화시킨 주범으로 지목되고 있다. 정치권 관계자는 "최근 나타나는 지지율 하락의 원인은 다른 데 있지 않다"며 "대선·총선에서 집권세력의 득표율은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국민 절반은 집권세력을 지지하지 않았음을 유념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유림 기자 (loveso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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