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안법 등 사업주 처벌강화한 입법에도 사고재해는 증가
타국가 사례봐도 기업 처벌강화 산업재해 예방효과 불확실
법상 사업주 범위 너무 넓고, 유해 위험방지 의무 범위 모호
포퓰리즘 입법 멈추고 산업현장 특성 맞는 법률 개발해야
요즘 들어 부쩍 갈팡질팡하는 국민의힘이 '중대재해에 대한 기업 및 책임자 처벌 등에 관한 법률안'(중대재해처벌법)의 통과에도 협조하기로 했다 한다. 이미 ‘김용균법’이라는 산업안전보건법이 금년 1월부터 시행되고 있어서 사업주에 대한 처벌 형량이 세계 최고인 상황인데, 입이 떡 벌어질 만큼 강력한 처벌을 예고하는 법안이 추가로 통과될 전망이다.
기업인을 처벌하겠다고 겁을 주면 사고가 예방되고 재해도 줄어들 것인가. 산안법 전면개정(2020년 1월16일) 등 사업주 처벌강화 입법에도 불구하고 2020년 전반기 사고 사망자수는 전년 동기 대비 5명, 사고 재해자 수(4만4331명)가 1486명(3.5%) 증가했다.
영국, 호주, 캐나다 등 산업재해에 대한 기업의 형사처벌을 강화한 국가들의 연구사례를 보더라도 기업 처벌강화의 산업재해 예방효과는 불확실한 것으로 조사됐다. 처벌만이 능사가 아닌 것이다.
정부와 국회는 항상 사회적 물의를 일으키는 사건이 터지면 기존 법체계와는 전혀 맞지도 않는 특별법을 뚝딱 만들어 놓고는 할 일을 다 했다는 식이다. 이 법안도 똑 같다. 아무런 예방효과도 없이 기업인을 과도하게 처벌해 기업을 망가뜨리거나 해외로 내쫒는 역할 이상을 기대할 수 없다.
문제는 사업주나 경영책임자가 ‘유해·위험방지’ 의무를 위반하면 처벌한다는 것인데, 사업주의 범위가 너무 넓다. 사업주나 경영책임자에는 중앙행정기관, 지방자치단체, 공기업, 공공기관의 장(長) 및 공무원도 해당된다. 나아가 법인의 대표이사나 이사가 아닌 자로서 해당 법인의 사업상의 결정에 상당한 영향을 미치거나 그러한 결정에 실질적으로 관여하는 지위에 있는 자도 포함한다.
말하자면 그룹 명예회장·회장·부회장 등 소위 상법상의 ‘업무집행지시자’를 모두 포함한다. 또 ‘유해·위험방지’의무의 범위가 어디까지인지 알 수 없다. 사고가 나면 무조건 사업주에게 책임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므로, 안전의무를 다 했다는 증명책임이 기업 또는 기업주에게 있는데 이것을 증명하기는 매우 어렵고, 감독기관은 법 준수 여부를 자의적으로 판단·집행할 소지가 매우 크게 된다.
또한 사고발생시 사업주가 자신의 관리책임 범위 내에서 산재예방을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더라도 법상 의무이행의 최종책임자라는 이유로 처벌을 받게 돼 있다. 직원의 과실에 대해서도 사업자와 기업대표를 처벌한다는 것은 자기책임의 원칙에 어긋난다. 하청에 대한 안전관리 의무와 책임을 원청에게 공동으로 부과하는 것도 어느 입법례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과도한 조치이다.
형량은 더 문제이다. 각 정당별로 약간씩 차이가 있으나, ‘국민의힘’이 제출한 법안은 사망사고시 기업과 경영자에게 5년 이상의 유기징역 또는 10억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정의당’은 사업주 및 원청은 3년 이상 징역 또는 5000만원 이상 10억원 이하 벌금, 상해시에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억원 이하의 벌금을 규정하고 있다.
'○년 이상'과 같은 하한형의 징역형 부과는 부녀자 약취유인, 식품위생법 위반 등 악질적인 고의범의 경우에나 적용돼야 할 규정으로, 과실범에 대해서는 과잉처벌이며, 헌법상 과임금지의 원칙에 위배된다. 정의당이 낸 법안은 이것도 모자라 영업취소·정지를 병과할 수 있고, 피해자가 입은 손해액의 3배 이상 10배 이하의 징벌적 손해배상 책임도 부과한다.
한국은 중대재해기업처벌법이 아니어도 이미 산안법상 근로자 사망시 법인에 대한 벌금이 최대 10억원으로 일본(50만엔)·미국(7000달러)·독일(5000유로)·프랑스(1만 유로, 위반 반복시 3만 유로) 등 주요국보다 크게 높다. 아울러, 위반 행위자 등 개인에 대한 처벌도 한국은 최대 7년의 징역형으로 영국(2년 이하), 일본(6개월 이하), 미국·독일·프랑스(고의·반복시에만 각 6개월, 1년, 1년)보다 처벌 강도가 높다.
산업재해가 줄어들지 않고 있는 것은 기업에 대한 처벌이 약해서가 아니라 구조적인 문제 때문이다. 낮은 생산성과 높은 인건비 비중으로 인하여 안전 부문에 충분한 투자를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윤이 보장되지 않으면 시설개선이나 근로조건 개선은 엄두를 낼 수 없다. 이 부분에 대한 근본적 개선 없이 처벌 수위만 높인다는 것은 배 아픈데 빨간약 바르는 것처럼 엉뚱한 처방이다.
처벌보다 무사고, 무재해 기업에게 인센티브를 부여하는 방식으로 기업의 자발적인 안전관리 강화를 유도해야 한다. 국회는 안이하고 단세포적인 포퓰리즘 쇼잉(showing) 입법을 멈추고 기업 스스로가 다양한 산업현장 특성에 맞춰 예방활동을 강화하도록 하는 법률을 개발해야 한다.
글/ 성균관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 최준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