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형 채용 잇따르는 핀테크 시장 "경력자만 받습니다"
기성 금융인 아니면 참여할 수 없는 혁신의 아이러니
"죄다 경력직만 뽑으면 우리 같은 신입은 어디서 경력을 쌓으라고……"
취업준비생 입장에서 고용 시장의 부조리함을 꼬집은 푸념이 최근 금융권에서 다시 회자되고 있다. 혁신금융을 표방하며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핀테크 기업들이 저마다 채용문을 넓히고 있지만, 이제 사회에 첫 발을 내딛는 초년생들에겐 그림의 떡이 되고 있어서다.
인터넷전문은행으로서 이제 금융권에 확고히 자리를 잡은 카카오뱅크는 새해를 맞아 대규모 채용에 돌입했다. 카카오뱅크는 이번에 100명 이상의 직원을 새로 뽑아 금융서비스 혁신에 더욱 박차를 가하겠다는 슬로건을 내걸었다. 계획대로라면 카카오뱅크의 직원 수는 처음으로 1000명을 돌파하게 된다.
최근 가장 각광받는 모바일 금융 플랫폼이자, 카카오뱅크에 이어 새로운 인터넷은행 출범을 앞두고 있는 토스도 올해 1분기에 신규 인력 330명을 채용하겠다고 밝혔다. 이를 통해 토스는 토스인슈어런스와 토스페이먼츠 등 기존 계열사는 물론, 조만간 선을 보일 토스증권과 토스뱅크에도 새로운 인재들을 수혈하겠다는 방침이다.
특히 토스는 과감한 인재 배팅으로 주목을 받고 있다. 그 동안 토스는 정규직 입사자들에게 1억원 어치의 스톡옵션을 부여해 왔다. 토스는 이런 보상 정책을 오는 3월까지만 유지하기로 했다. 사실상 이번 채용이 토스 초기 멤버로 합류해 함께 성장할 수 있는 마지막 기회인 셈이다.
금융사 입성을 준비하는 청년들이게 이 같은 보상은 취업 의욕을 한층 북돋우는 당근책이 될 것처럼 여겨진다. 하지만 첫 직장을 꿈꾸는 취준생들에게 이는 애초에 오를 수 없는 산이다. 카카오뱅크와 토스 모두 신규 채용 인원을 경력직으로 채울 예정이기 때문이다.
이른바 혁신을 앞세운 핀테크 업체들은 이처럼 경력자만 모집하는 이유로 시기상조론을 꺼내 든다. 아직 회사가 안정적인 성숙기에 접어들지 못한 만큼, 업무에 곧바로 투입할 수 있는 인력을 선발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란 설명이다. 진짜 신입을 받아 육성하기엔 시간도 비용도 여유가 없다는 하소연이다.
하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보면 이런 토로는 어딘가 앞뒤가 맞지 않는 구석이 엿보인다. 기존 금융사들이 생각하지 못한 혁신을 일궈내겠다는 이들이 속으로는 금융권 종사자만을 식구로 받아들이겠다는 얘기다.
혁신이란 단어는 언젠가부터 우리 금융권에 전가의 보도처럼 쓰이고 있다. 혁신이라는 구호만 붙으면 옳고 좋은 일이라는 반사작용이 비판적 사고를 가로막는 분위기다. 그러나 인간이 하는 일에 절대적인 선은 없는 법이다. 기성 금융인이 아니면 혁신에 참여할 수 없다는 핀테크들의 아이러니는 곱씹어 봐야 할 대목이다.
물론 이제 막 사업을 시작하려는 기업의 입장에서 경력란이 하얗게 비어있는 이력서를 받아드는 결단은 상당한 부담을 감내해야 하는 일이다. 그렇다고 서로 아는 얼굴들끼리만 모여 새로움을 논하겠다는 건 일종의 아집일 지도 모른다. 겉으로는 혁신이란 간판을 내걸고 있는 핀테크 시장이 안으로는 벌써 기성 금융권의 관성을 쫓고 있는 건 아닌지 스스로를 돌아봐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