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지개행동 논평 "SBS, '보헤미안 랩소디' 동성 간 키스 편집, 고인 뿐 아니라 성 소수자 모욕"
SBS "15세 이상 시청가·설 특선영화라는 점 고려한 편집"
지난해 드라마 JTBC '이태원 클라쓰' '안녕 드라큘라' tvN '(아는건 별로 없지만) 가족입니다'의 공통점은 성소수자가 주·조연으로 등장해 이야기를 끌어갔다는 점이다. 커밍아웃을 하며 성 정체성이 다르다는 이유로 연예계에서 퇴출 시키거나 게이가 주인공인 드라마를 보며 시청자의 불만이 쏟아지던 2000년대 초반과는 달라진 그림이다. 이는 미디어나 시청자 모두 성소수자의 다양성을 인정하고 나아가고 있음이 분명했다. 하지만 이같은 방송가의 노력은 지난 13일 SBS가 설연휴 특선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에서 동성 간의 키스신을 삭제하며 의문이 들게 했다. 특히 SBS가 그간 성소수자를 바라봤던 시선과 다른 행보라 더욱 고개를 갸우뚱하게 만들었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영국 록밴드 퀸의 보컬 프레디 머큐리를 주인공으로 한 전기 영화다. '보헤미안 랩소디'는 2018년 개봉 당시, 성 정체성과 음악을 치열하게 고민한 프레디 머큐리의 삶을 조명해 호평을 얻었고 994만명의 관객을 동원해 흥행에도 성공했다.
SBS는 영화에서 프레디 머큐리의 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프레디 머큐리(라미 말렉 분)와 짐 허튼(아론 맥커스커 분)의 키스신 두 장면을 삭제했다. 또 다른 배우의 동성간 키스신은 모자이크 처리했다. 반면 프레디 머큐리의 아내인 메리 오스틴과의 키스와 자연스러운 스킵십은 온전히 전파를 탔다.
시청자들은 SBS가 동성 간 키스 장면을 편집, 모자이크 한 행위를 두고 실존 인물을 바탕으로 한 전기 영화의 정체성을 검열했다고 비판했다. 프레디 머큐리의 성 정체성을 나타내는 키스신 편집은 그의 인생을 부정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라는 이유에서다.
무엇보다 성 소수자 혐오를 방송사가 앞장섰다는 뼈 아픈 비난을 피하지 못했다. SBS 측은 이같은 논란에 "지상파에서 15세 이상 시청가로 방송하는 설 특선 영화라는 점을 고려한 편집일 뿐 다른 의도는 없었다"고 해명했다.
앞서 JTBC '선암여고 탐정단'이 여고생들의 키스신을 그대로 내보낸 사례를 언급하며 "그대로 내보냈다면 방심위 제재를 받았을 것"이라고 전하기도 했다. 실제로 일부 시청자들 중에는 SBS의 이같은 선택이 다수의 시청자를 고려했다는 방송국의 합리적인 판단이었다고 보는 시각도 있었다.
하지만 공식 해명에도 논란은 줄어들지 않았다. 성소수자차별반대 무지개행동은 15일 "동성 간 키스 장면 편집 방영은 명백한 차별이며 검열"이라고 유감을 표했다. 무지개행동 측은 공식 SNS에 논평을 게시하며 "'보헤미안 랩소디'는 프레디 머큐리의 음악뿐만 아니라 성소수자로서의 그의 삶을 담은 전기 영화임에도 불구하고 동성 간 키스신을 삭제 또는 모자이크 처리한 SBS는 고인뿐만 아니라 성소수자 모두를 모욕한 것이나 다름없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SBS는 보도, 교양 프로그램에서만 다원성의 가치를 이야기할 것이 아니라, 방송국 전체 차원에서 소수자에 대한 차별을 금지하고, 문화다양성을 어떻게 적극적으로 보장할 것인지에 대한 지침을 마련해야한다"고 촉구했다.
방송통신위원회에 따르면 동성 간의 키스라는 이유로 제재를 가하는 방송심의 규정은 없었다. 심의워원회 관계자는 "동성 간의 키스 같은 경우는 제30조 양성평등 조항과 제 27조 품위유지, 제35조 성표현에 따라 바라본다"며 "'선암여고탐정단' 같은 경우는 학부형, 기독교 단체에서 해당 민원이 많이 전달됐다. 해당 장면이 꼭 필요 한건지를 중점으로 판단한다. 모두가 알고 있는 프레디 머큐리의 성 정체성이 들어간 '보헤미안 랩소디'같은 경우와는 다르다고 생각한다"고 전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이번 SBS의 결정은 다양성면에서 뒷걸음질 한 부분이 있다. 성 소수자에 대한 편견과 선입견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라고 볼 수 있다. '보헤미안 랩소디'란 영화 차원에서 보자면 작품성을 훼손한 거나 마찬가지다. 소외된 성소수자의 인물들의 이야기가 핵심 이야기다. 방송사 입장에서는 15세 등급에 맞춰 편집했다고 하는데, 핑계에 지나지 않는다. 그것을 고려했다면 처음부터 '보헤미안 랩소디'가 아닌 다른 영화를 선택했어야 했다"고 생각을 전했다.
이미 많은 드라마나 영화에서 성소수자는 특별하거나 틀린 존재가 아닌 일상적인 존재로 다뤄지고 있다. 영향력을 가진 미디어들은 편견과 갈등을 정면으로 마주하며 소비되는 장치가 아닌 주체적인 인물로 존재 가치를 말한다. SBS는 2010년 김수현 작가의 '인생은 아름다워'를 편성, 동성 간의 사랑을 보여주며 다양성에 화두를 던진 장본인이기에 2021년의 선택적 편집이 더 아쉽게 다가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