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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북민 증언 진위 가리겠다는 통일부…탈북민 "내가 증거다"


입력 2021.02.23 03:30 수정 2021.02.25 08:36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이인영 "피해사례 일방적으로 믿기 어려워"

탈북민 4명, 명예훼손 혐의로 이인영 고발

"압록강에 부모 빠져도 소리 내 울지도 못해"

이인영 통일부 장관(자료사진) ⓒ데일리안 류영주 기자

문재인 정부가 북한 인권 기록과 관련한 '검증 강화' 필요성을 강조한 가운데 탈북민 4명이 이인영 통일부 장관을 명예훼손 혐의로 고소했다.


통일부는 '정확도'를 높이기 위해 탈북민 개별 피해사례를 인권 기록으로 인정하기 어렵다는 입장이지만, 탈북민들은 "내가 증거"라며 강하게 반발하는 분위기다.


탈북민 4명은 북한인권단체 '물망초'와 함께 22일 서울 서초구 서초동 서울중앙지방법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탈북민들의 증언을 거짓말인 양 발언한 것은 용서받지 못할 명예훼손 행위"라고 말했다.


앞서 이 장관은 지난 3일 외신기자 간담회에서 북한 인권 보고서 발간과 관련해 "북한 인권에 대해 기록한 것이 실제로 그런 것인지, (탈북민의) 일방적인 의사를 기록한 것인지 확인하고 검증하는 과정들이 부족하다"고 말한 바 있다.


이 장관은 지난 18일 국회 외교통일위원회 전체회의에선 "피해자 사례만 있는 게 아니고 또 다른 측면에서 (북한 인권이) '긍정적으로 개선됐다'고 진술하는 사례도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피해자 사례) 부분들을 일방적으로 다 믿기는 어렵다"고 밝히기도 했다.


북한 인권이 개선됐을 여지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지만, 그는 "예를 들어 그렇다는 것"이라며 구체적 사례는 제시하지 않았다.


아울러 이 장관은 탈북민 증언의 기록 인정 여부에 대해 "한 번만 등장하는 것과 두세 번 등장하는 것은 판단하는 데 차이가 있지 않겠느냐"며 "그런 부분들을 좀 더 살펴보면서 공신력을 높이는 과정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탈북민 개개인이 주장하는 인권 침해 사례에 대해 통일부가 사실상 진위를 검증하겠다는 뜻으로 풀이된다.


탈북민 4명과 북한인권단체 물망초가 22일 오후 서울 서초구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진행하고 있다. ⓒ뉴시스
"4살 아들 앞에서 中 공안에 끌려가 강제북송"
"이인영, 뼈저린 체험 해봤나…北 가서 살아보라"


하지만 이날 기자회견에 나선 탈북민들은 개별 탈북과정 자체가 북한 인권 유린의 생생한 증거라고 강조했다.


중국에서 3번의 강제북송을 경험한 끝에 탈북에 성공했다는 김태희 씨는 "4살짜리 아들이 보는 앞에서 중국 공안에게 끌려가 강제북송을 당했다"며 "북한에서는 여성으로서 참을 수 없는 인권유린을 당하면서도 자유를 찾아 목숨을 걸고 이곳까지 왔다"고 말했다.


김 씨는 "우리들의 증언이 거짓말이라면, 수많은 탈북민들이 그동안 유엔과 백악관에서 증언한 게 모두 거짓말이라는 것이냐"며 "이 장관은 북한에 한 번 들어가 살아보라. 이 장관이 대한민국 헌법 3조를 인정하는지 묻고 싶다"고 밝혔다.


'대한민국의 영토는 한반도와 그 부속도서로 한다'는 헌법 3조에 따라 탈북민 역시 대한민국 국민이라는 점을 강조한 발언으로 풀이된다.


이어 마이크를 잡은 탈북민 이동현 씨는 이 장관을 겨냥해 "당신은 자유를 찾아오는 길에 부모가 두만강·압록강 물결에 파묻히는 것을 보면서도 소리 내 울음 한번 못 낸 뼈저린 체험을 해보았는가. 당신의 딸 같은 어린 여인이 만삭의 상태에서 군홧발에 채여 피 흘리며 고통에 몸부림치는 현실을 겪어보았는가"라고 성토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전체 탈북민들의 마음을 담아 (이 장관을) 명예훼손으로 고발한다"고 말했다.


이인영 통일부 장관이 경기도 파주시 판문점 군사분계선 남측에서 북측 판문각을 향해 손을 흔들고 있다(자료사진). ⓒ사진공동취재단
통일부 "탈북민 증언은 귀중한 기록"
北 인권보고서는 3년째 공개 안 해
이인영 "남북관계 발전 등 종합적 판단해야"


한편 통일부는 "이 장관이 '탈북자들의 증언을 신뢰할 수 없는 거짓말'이라는 취지로 발언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이종주 통일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브리핑에서 "탈북민들의 증언은 우리 정부와 국제사회에 북한 인권 실태를 알리는 귀중한 기록"이라며 "통일부는 이들에 대한 조사와 기록과정이 피해자 중심주의라는 원칙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다"고 말했다.


이 대변인은 "그동안 탈북민에 대한 인권조사·기록 등을 충실하게 해왔다"며 "이분들에 대한 기록들을 축적하는 과정에서 개인의 피해 사실뿐만 아니라 북한 인권과 관련한 제도나 정책 그리고 환경 등 제반 변화요인까지 검증하고 확인했다. 북한 인권기록의 정확도와 충실도를 높이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통일부가 정확도에 신중을 기하고 있는 북한 인권 기록은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3년째 공개되지 않고 있다. 문 정부는 지난 2019년 이후 2년 연속 유엔 북한 인권결의안 공동제안국에서 발을 뺀 상태이기도 하다.


이 장관은 국회 외통위 전체회의에서 북한 인권 기록이 "공개적으로 발간되지 않은 건 맞다"면서도 "법령·예규에 근거해 (비공개로) 작성은 돼 있다. (국회 외통위 소속)위원님들께서 보안각서 같은 것을 작성해 열람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보고받았다. 저희가 (기록을) 완전히 닫아놓고 있지 않는다는 점은 잘 알고 계실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이 장관은 "북한 인권에 대한 기록과 남북 관계 발전 과정 등을 종합적으로 판단해 접근하는 게 좋을 것 같다"고 밝혔다. 북한과의 관계를 고려해 북한이 민감하게 반응할 수 있는 인권 기록을 공개하지 않았다고 사실상 시인한 것이다.

강현태 기자 (trustme@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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