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대범죄수사청 놓고 강경파 대 온건파 분화
문재인 대통령, 박범계 통해 속도조절 당부
처럼회 등 강경파, 하루 만에 중수청 급가속
'속도조절론' "들어본 바 없다"며 외면
더불어민주당 강경파 의원들이 중대범죄수사청 설치에 적극 나선 것을 두고 문재인 대통령 레임덕 현상이 아니냐는 분석이 나온다. 속도조절을 당부하는 문 대통령의 메시지가 나온 뒤 불과 하루 만에 중수청 설치에 더욱 강경한 목소리가 나와서다.
이 같은 움직임을 주도하고 있는 것은 '행동하는 의원모임 처럼회'(처럼회)다. 지난해 6월 열린민주당 최강욱 대표가 설립하고 민주당 김남국·김용민·김승원·황운하 의원 등 초선 의원들이 참여해 결성됐다. 박주민 의원과 이재정 의원은 초선은 아니지만 이들과 검찰개혁 노선에 함께하며 힘을 보태고 있다.
중수청 법안을 대표발의한 황 의원은 23일 공청회를 열고 "향후 정치일정을 감안했을 때 지금 하지 않으면 21대 국회에서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며 "검찰이 직접수사권을 권력으로 가지고 있는 한 검찰개혁은 한 발자국도 나갈 수 없다. 그런 검찰개혁은 허울에 불과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문제는 이들의 주장이 문 대통령이 추구하는 방향과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는 점이다. 박범계 법무부 장관은 전날 국회 법제사법위원회에서 "(문 대통령은) 올해부터 시행되는 수사권 개혁의 안착이라는 말씀을 하셨고, 두 번째는 범죄 수사 대응 능력, 반부패 대응 수사 역량이 후퇴돼서는 안 된다는 말씀이 있었다”고 했다. 중수청 설치에 대해 속도 조절을 주문한 대목이다.
신현수 민정수석을 재신임한 것도 검찰과의 관계 개선 및 점진적 개혁에 방점을 찍은 것으로 해석된다. 문 대통령은 올해 초 신년 기자회견에서 "윤석열 검찰총장은 문재인 정부의 검찰총장"이라고 못 박았고, 정부여당과 검찰의 갈등에 대해서는 "이제는 (법무부와 검찰이) 서로의 입장을 잘 알게 됐기 때문에 국민들을 염려시키는 그런 갈등은 없으리라고 기대한다"고 했었다.
민주당 지도부도 처럼회 혹은 강경파의 행보가 못마땅한 눈치다. 4차 재난지원금 추경과 코로나 백신 접종에 집중할 시기에 또다시 사법 갈등을 불러 국정운영에 부담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 탄핵소추 때와 비슷한 흐름이다. 무엇보다 강성 지지층을 추동해 당 안팎을 가리지 않고 저격·압박하는 이들의 방식에 회의적인 인사들이 적지 않다.
공청회 참석 김남국·민형배·이규민 등 친이재명
‘검수완박’ 서약서…알고보니 李 지지자가 추진
최강욱·황운하·김용민 등 서명하기도
'문재인에서 이재명으로' 권력이동 분석도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자기들 주장에 동조하지 않으면 마치 검찰개혁에 반대하는 것처럼 몰고 가는 식"이라며 "법관 탄핵도 반대하는 의견이 적지 않았지만, 강성 지지층으로부터 전화가 빗발치고 SNS에 반개혁적 인사로 낙인을 찍어버리니 당에서도 어쩔 수 없었던 것"이라고 했다.
실제 박주민 의원은 법관 탄핵 소추위원단 구성과 관련해 "윤호중 법사위원장이 (초당적) 소추위원단 구성에 회의적"이라며 당내 인사를 겨냥하는 것도 주저하지 않았다. 중수청 설치 속도조절론에 대해서는 "(청와대에서) 공식적으로든 비공식적으로든 전해 들은 바가 없다"며 외면했다.
정치권 일각에서는 문 대통령의 레임덕에서 나아가 이재명 경기도지사로 권력의 무게추가 이동하고 있다는 해석을 내놓는다.
공교롭게도 처럼회 의원 상당수가 이 지사와 접촉면이 큰 인물들로 분류된다. 이날 중수청 공청회에 참석한 김용민·한준호·홍정민·민병덕 의원 등은 지역구가 경기도이며, 이규민·민형배 의원은 이 지사 지지를 천명한 인사들이다. 특히 김남국 의원은 이 지사 지지의원 조찬모임에도 참석하는 것으로 알려진다.
지난 1월 논란이 됐던 친여 시민단체 파란장미행동연대의 '검찰 수사권 완전 폐지 서약서' 사건도 이 같은 해석에 설득력을 더한다. 당시 최강욱 대표를 비롯해 황운하 의원, 김남국 의원, 김용민 의원 등은 서약서 서명 후 SNS 인증을 했었다. 서약서를 추진한 파란장미행동연대 대표 유튜버 최인호 씨는 이 지사 지지자로 통하는 인물이다.
이와 관련해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은 통화에서 "검찰을 둘러싼 민주당 내 혹은 당청 사이 강경파와 온건파가 대립하는 지점이 있다"며 "문 대통령이 신 수석을 재신임한 것은 점진적 타협을 원하는 온건파에 힘을 실은 것인데 강경파들이 가만히 있지 않고 있다. 문 대통령의 리더십이 안 먹히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것 같다"고 분석했다.
이어 "민주당 내에서는 이낙연 대표 중심의 온건파가 있고 이재명 지사는 강경파와 가깝다"며 "재보선이 끝나면 보편적 복지, 기본소득, 중수청 등의 노선을 가지고 내부 투쟁이 본격적으로 벌어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그러면서 "청와대에서 당으로, 또 문 대통령에서 이 지사로 권력의 추가 넘어가는 레임덕 현상으로 본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