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물어진 삼권분립, “김명수 대법원장이 입법부 눈치”
정권 독주에 스스로 무릎 낮춘 사법부
사법부의 생명은 믿음, 대법원장 결단 필요할 때
지난 1월 20일 미국 대통령 취임식에서, 조 바이든 대통령은 부인이 들고 있는 1893년부터 집안에서 내려 온 성경책에 손을 얹은 채 존 로버츠 대법원장 앞에서 취임 선서를 하였다.
“나는 미국 대통령 직무를 충실히 집행할 것이며, 최선을 다해 미국 헌법을 지킬 것을 엄숙히 선서합니다.”
바이든의 취임 선서 직전, 카멀라 해리스 부통령은 소니아 소토마요르 연방대법관 앞에서 성경에 손을 얹고 선서했다.
미국은 일반 연방법원 판사를 심판관(Judge)이라고 부르지만, 연방대법원장은 공식 직함이 ‘최고의 정의(Chief Justice)’다. 미국의 연방대법원장은 인사권을 갖고 있지 않다. 연방법원 판사들이 종신직이어서 승진이나 전보가 없고 법원장은 당해 법원의 선임 법관이 맡기 때문이다.
로버츠 대법원장은 공화당인 조지 부시 대통령이 지명하였으므로 보수 성향일 것으로 보나 진보와 보수가 대립한 민감한 사안에서는 진보 편에 선 적도 많았다. 무엇보다 트럼프가 자신의 이민정책에 반하는 판결을 내린 제9연방순회법원의 존 S. 티거 판사를 ‘오바마 판사’라고 비난한 데 대해 로버츠 대법원장은 “우리에겐 ‘오바마 판사’도, ‘트럼프 판사’도, ‘부시 판사’도, ‘클린턴 판사’도 없다”라며 “우리에게는 자신들 앞에 선 모든 이들에게 공평하게 하도록 최선을 다하는 헌신적인 판사들의 비범한 집단만 존재할 뿐이다”라는 입장을 밝혔다. 이어 “독립적인 사법부는 모두가 감사해야 할 대상”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사법부는 정치적으로 좌우되지 않는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이런 점 때문에 미국 국민들이 사법부를 행정부나 입법부보다 더 신뢰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독일은 모든 판결문(헌법재판소 판결까지도) 첫머리에 ‘국민의 이름으로(IM NAMEN DES VOLKES)’는 문구를 시작으로 끝에 주문과 같이 판결한다는 양식을 취하고 있다. 즉 판결은 국민의 이름을 빌려 하는 것이다.
최근 김명수 대법원장으로 인해 연일 시끄럽다. 김 대법원장이 지난해 5월 임성근 부산고법 부장판사가 건강상 이유로 사표를 내자 이를 반려하면서 국회의 탄핵 추진 가능성을 언급했는데도 “그런 적이 없다”고 부인한 것이 거짓으로 밝혀지면서, 사법부 수장이 거짓말을 할 수 있느냐가 논란이 되는 것이다. 김 대법원장은 임 부장이 사표를 제출하자, 국회에서의 탄핵 문제로 사표를 수리할 수 없다는 취지로 말한 사실이 없다고 국회 답변서까지 제출하였는데 하루 만에 정반대의 녹취록이 공개되었다.
내용 중에는 “지금 뭐 탄핵하자고 저렇게 설치고 있는데 내가 사표 수리했다고 하면 국회에서 무슨 얘기를 듣겠느냐”는 대목이 있어 사법부의 독립과 관련하여 대법원장의 처신을 비난하며 사퇴 논란이 불거지고 있다.
임 부장판사는 서울중앙지법 형사수석부장판사 시절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한 명예훼손 혐의로 기소된 가토 다쓰야 전 산케이신문 서울지국장의 재판에 개입한 혐의로 재판받았고, 법원은 임 부장판사가 법원행정처의 요구에 따라 담당 사건 재판장에게 판결 선고 이전 재판 과정에서 ‘세월호 7시간 행적’과 관련한 기사가 허위라는 ‘중간 판단’을 밝히도록 한 사실 등을 인정하고, 이는 “법관 독립을 침해하는 위헌적 행위”라고 지적하면서도 이런 행동에 대해 직권남용권리행사방해죄를 적용할 수 없다고 보았다. 헌법과 법원조직법 등을 검토하면 사법행정권자는 일선 재판부의 ‘재판 업무’에 관해서는 직무감독권을 행사할 수 없다는 이유다.
이를 두고 입장에 따라 논란이 가중되었다. 그러다 임 부장의 재판 관여가 헌법을 위배하였다며 더불어민주당의 주도하에 탄핵소추안이 발의되었고, 2.4. 국회에서 가결되어 역사상 처음으로 법관 탄핵이 통과되게 되었다. 그러나 입법부의 권한으로 촉발된 탄핵 심판 진행과 대법원장의 거짓말 시비는 별개의 문제이다.
다수의 선출 권력이 소수를 무시하고 힘으로 밀어붙이게 되면 정당성의 위기나 체제 위기로 치달을 수가 있고 그럴 경우 독립된 사법부의 견제 기능이 크게 요구된다. 사법부의 독립을 거론할 때, 재판의 독립이 중요하나 법원의 자율성을 보장하기 위한 법원의 독립 또한 중요하다. 대법원장은 대법원의 최고책임자인 동시에 사법부를 대표하므로 누구보다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힘써야 한다. 그런 대법원장이 입법부의 눈치를 본 것으로 되어 버린 것이다.
문재인 정부는 출범 초기 대법관 출신의 임명 관행에서 벗어나 파격적인 기수 파괴로 김명수 대법원장을 선택하였다.
그러나 취임 초부터 우리법연구회와 국제인권법연구회의 회장을 지냈다는 점에서 정치권에서는 ‘이념 편향성’ 논란이 제기되기도 하였다. 역사상 김병로 대법원장처럼 존경을 받는 분이 있지만, 퇴임 후 자살하거나 임기를 못 채우고 강제로 퇴직한 대법원장도 있었다. 모두 정치적 이해관계가 연관되어 있었다. 알고 보면 정치 권력이 사법부 독립을 가장 저해하고 있으며 정치인이 법관의 독립을 가장 어렵게 만들고 있다. 선출된 권력은 국민이 빌려준 대리 권한임에도 고유권한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법원이 분쟁의 종국적 해결자임에도 요즈음 법원은 분쟁의 시발점이 되어 있다. 영장 발부나 재판의 선고 내용을 두고 담당 판사에 대한 인신공격도 서슴지 않고 있다. 그런데도 사법부의 수장인 대법원장은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는다. 이런 와중에 대법원장의 거짓말이 혼란과 갈등을 심화하고 있다. 사법부의 생명은 믿음이다. 이제 대법원장이 결단을 내릴 시간이다.
글/서영득 법무법인 정론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