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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의 저장고, 디지털 시대의 영화 이야기[양경미의 영화로 보는 세상]


입력 2024.11.15 15:15 수정 2024.11.15 15:15        데스크 (desk@dailian.co.kr)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

시대의 본질을 꿰뚫는 프랑스 철학자 데카르트는 인생의 고비를 절박하게 고민하며 삶과 지혜 그리고 행복에 도움이 되는 많은 명언을 남겼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명언 외에도 “신념은 확실한 어떠한 지식보다 관습과 전형에서 비롯된다”라는 말도 남겼는데 이는 신념과 가치관은 자신의 삶 전반에 큰 영향을 끼치고 중요하다는 것을 의미한다. 최근 개봉한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스페인의 거장 빅토르 에리세 감독의 영화를 향한 신념과 필름영화에 대한 사랑을 느낄 수 있는 작품이다.



영화는 1947년 프랑스의 한 저택에서 리베라는 노인이 자신의 딸을 찾기 위해 사설 탐정을 고용하면서 시작한다. 그러나 장면은 곧 2012년 스페인의 마드리드로 전환되고 이 모든 것이영화감독이자 작가인 미겔의 미완성 작품 ‘작별의 눈빛’의 일부였음을 알게 된다. ‘클로즈 유어 아이즈’의 주인공 미겔은 한 TV 탐사프로그램으로부터 22년 전 실종된 배우, 홀리오 아레나스에 대해 증언해 달라는 부탁을 받는다. 홀리오는 그의 절친이자 미완의 영화 ‘작별의 눈빛’의 주연 배우였다. 촬영 도중 홀연히 사라진 배우에 대해 사고, 자살 혹은 음모인지에 대해 온갖 추측이 난무한 가운데 미겔은 홀리오의 흔적을 찾으며 잊고 지냈던 자신의 과거와 조우한다.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영화가 탄생되지 130년의 시간이 흐르면서 그동안 많은 변화를 겪었다. 탄생 초기 만해도 영화에 대한 정의를 “필름에 기록된 이미지를 스크린에 투영하여 관객들에게 전달하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기술의 발달과 함께 영화의 사전적 정의는 희미해지고 있다. 필름은 디지털로 변했고 스크린이 있는 극장이 아니어도 지금 우리는 다양한 형태로 영화를 즐길 수 있게 되었다. 변화의 시점마다 영화의 위기론이 등장했지만 영화는 여전히 우리 곁에 남아 있다. 감독은 이번 영화에서 영화에 대한 탐구를 유지한다. 같은 영화라도 홀리오에게, 미겔에게 그리고 관객들에게도 영화는 다르게 느껴질 수 있다. 영화 말미에 쇠락한 극장에 모든 등장 인물들이 모이고 영사 기사는 필름 통에 담긴 영화를 영사기에 돌려 보여준다. 관객들이 영화란 무엇인가를 생각하며 극장 문을 나서게 한다.


필름영화에 대한 향수와 사랑도 담겨 있다. 올해 84세인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1973년 데뷔작 ‘벌집의 정령’과 함께 스페인은 물론 세계적인 감독의 반열에 올랐다. 그후 50년 동안 4편의 작품만을 만들었지만 필름영화에 대한 애정과 사랑만큼은 남달랐다. 이번 영화에서도 영사기가 돌아가는 시골 단관 극장의 모습과 필름을 통해 아날로그적 감성이 그대로 느껴진다. 뿐만 아니라, 31년 만에 제작한 영화지만 배경이 2012년이라는 것도 의미가 깊다. 필름영화가 디지털로 넘어가던 마지막 시기였던 것이다. 영화는 디지털로 촬영됐지만 디지털 보정을 거의 하지 않았고 영화 속 영화인 ‘작별의 눈빛’은 필름으로 촬영해 필름영화에 대한 그의 사랑과 애정, 추억과 존중을 표현하고 있다.



자기 반영적인 영화다. 영화 속에서 영화를 이야기하는 메타영화의 방식을 따르고 있다. 빅토르 에리세 감독은 영화가 자신의 운명이라 믿는다. 영화를 향한 그의 신념은 4편의 작품 속에서 결정체로 남아 있다. 그는 주인공 미겔 감독을 통해 자신의 영화에 대한 열정과 예술의 본질을 보여주고 있다. 자신의 신념과 영화와 삶에 대한 이야기를 영화 속 영화를 통해 말하고 있다.

디지털화의 진전으로 영화관에서 보는 영화는 위기에 처해 있다. 할리우드는 몰론 우리 영화산업 또한 제작과 상영 여건이 어려워지고 있다. 영화 ‘클로즈 유어 아이즈’는 쇠락해 가는 영화환경을 안타까워하는 노장 감독의 영화에 대한 사랑과 열정을 조명하고 있다. 영화는 현재와 과거, 시간적 공간을 뛰어넘는 기억의 저장고인 영화가 나아가야 할 길과 본질에 대해 다시 한번 생각하게 만든다.



양경미 / 전) 연세대 겸임교수, 영화평론가film1027@naver.com

데스크 기자 (desk@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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