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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인터뷰] 한예리 "'미나리', 모두를 보듬어줄 수 있는 영화 됐으면"


입력 2021.03.07 13:00 수정 2021.03.07 10:51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산드라 오의 감상평, 가장 기억에 남아"

따뜻한 위로될 수 있는 영화 되길

골든 글로브 외국어영화상 수상과 함께 오스카에 가까워진 '미나리'가 개봉 3일 만에 10만 관객을 돌파하며 흥행 돌풍을 시작하고 있다. '미나리'는 개봉 전부터 미국 비평가 및 시상식을 호평과 수상 소식을 알리며 기대감을 높였고, 제78회 골든글로브 최우수외국어영화상까지 거머쥐며 작품성을 인정 받았다.


개봉 전 만난 한예리는 '미나리'에 대한 높은 기대 탓에 긴장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지만 영화를 촬영했던 당시를 떠올리며 금새 미소를 되찾았다.


'미나리'는 희망을 찾아 낯선 미국으로 떠나온 한국 가족의 아주 특별한 여정을 담은 이야기다. 한예리는 극중 아이들의 교육을 위해 미국으로 이주한 한국인 여성 모니카 역을 맡았다. 한국 관객이 가장 공감할 수 있는 인물도 모니카가 아닐까. 한예리는 깊은 모성애란 감정을 파헤치기보단 가족을 위한 희생에 초점을 맞췄다.


"저도 한국의 정서를 가장 많이 갖추고 있는 사람이 모니카라고 생각했어요. 관객들이 봤을 때 모니카가 조금 더 설득력있게 다가갈 수 있었으면 했고요. 모성애는 연기를 하긴 했지만 어려웠어요. 모니카가 표현하는 모성애는 희생이 아닐까 싶어요. 모니카와 제이콥은 본인의 꿈도 있겠지만 조금 더 나은 환경에서 아이를 교육시키고자 하는 생각 때문에 미국 땅을 찾은거니까요."


한예리는 '미나리'를 찍으면서 실제로 자신의 삶에 변화를 느꼈다. 모두가 한 마음으로 영화를 만들고 있다는 에너지에 위로와 응원을 받으며 촬영에 임할 수 있었단다.


"촬영 후 마음이 건강해졌다고 생각해요. 감독님을 도와주러 오신 분들, 이 영화를 사랑해주신 분들 덕분에 현장에서 힐링을 받았어요. 또 윤여정 선생님의 연기를 가까이서 보며 전반적으로 제 연기 생활에 대해서도 많이 생각해보게 됐고요. 그런 부분들이 '미나리'를 통해 변한 점 같아요."


젊은 나이에 낯선 나라로 떠나 아이를 기르며 자아까지 찾아가는 모니카 제이콥 부부의 여정은 험난하다. 이는 좋은 부모가 되기 위해 선택한 그들의 성장통이다. 모니카의 감정선을 따라가다보니 한예리는 부모님의 희생과 정성을 다시 한 번 체감하는 계기가 됐다.


"이 영화를 찍으면서 '그 때 우리 부모님도 어렸구나'란 생각이 들었어요. 또 잘 자랄 수 있었던 건 부모님의 희생과 사랑 때문이란 것도 다시 느꼈고요. 아이들이 모니카와 제이콥이 싸울 때마다 눈치를 봐요. 그 와중에도 건강하게 자랐죠. 그런 가정의 모습에서 제 어린 시절을 봤어요. 그 시간들을 견디고 '미나리'처럼 잘 자랐죠.(웃음)"


'미나리'는 국내 개봉 전까지 미국 비평가 협회 및 시상식에서 총 76관왕에 올랐다. 기세를 몰아 제93회 아카데미 시상식 주요 부문 후보 지명까지 넘보고 있는 상황이다. 해외에서 쏟아지는 호평세레에 한예리는 '이게 무슨 일인가 싶네요'라고 기분 좋게 말을 이어나갔다.


"좋은 소식이 들리는 건 기분이 좋아요. 이게 무슨 일인가 싶기도 하고요. 하지만 '기생충'처럼 기대하시는 분들이 있을 것 같아요. 우리 영화도 잘 만들어진 영화지만 결이 달라요. 기대 때문에 긴장도 되네요."


정이삭 감독은 모니카 캐스팅을 두고 "한예리가 아니면 안된다"란 말을 한 바 있다. 한예리는 그 이유를 직접 묻지 못했지만 자신이 확답을 줄 수 있을 때까지 기다려준 정이삭 감독에게 고마움을 표했다.


"걸어들어오는데 모니카가 오는 것 같았다고 말하셨더라고요.(웃음) 글쎄요. 몸에서 오는 에너지였을까요? 저는 얼굴 때문인가란 생각도 했어요. 저랑 정이삭 감독님이랑 닮았거든요. 잘 보시면 우리 가족이 모두 닮았어요. 제이콥, 알렌, 데이빗과도 닮지 않았나요?(웃음) 뭘 믿고 캐스팅해주신지 모르겠지만 전 감독님이 잘됐으면 좋겠고, 같이 하고 싶단 생각으로 모니카 역을 맡겠다고 했어요."


'미나리'는 정이삭 감독의 자전적인 이야기지만, 배우들에게 그의 할머니, 아버지, 어머니를 흉내내도록 하지 않았다. 처음부터 다른 사람이라고 정의를 내린 후 정이삭 감독과 대화를 통해 캐릭터를 만들어나갔다.


"시나리오에서 모니카의 성격이 묻어나는 부분은 적었어요. 어떻게 하면 좋을까 감독님과 이야기를 나눴죠. 그런데 모니카에 대한 이야기보단 그 시절 다양한 여성들의 모습을 두고 대화했어요. 모두의 어머니같은 모습들이 보였으면 했어요. 고춧가루를 발견한 모습이라든지 한약을 짜는 모습 같은 것들이 자연스럽도록 노력했어요. 또 순자를 만났을 때의 안정감, 제이콥과의 침묵의 순간들도요."


극중 모니카와 제이콥은 병아리 암수 구별사란 직업을 가지고 있다. 제이콥은 숙력된 손놀림과 눈빛으로 빠르게 암수를 구별해나지만, 모니카는 서툴러 집에서도 연습을 하며 조금씩 기술을 찾아간다. 하지만 재미있는건 한예리는 아직도 병아리 암수 구별을 하지 못한다고.


"작고 말랑말랑 하더라고요. 쥐었을 때 한 손에 쏙 들어갈 정도로 작아서 떨어뜨릴까봐 무서웠어요. 암수 감별을 하기 전에 배설을 꼭 시켜야 한다고 하더라고요. 그 방법도 배우고 어떻게 잡는지, 감별하는 방법도 배웠어요. 그런데 사실 감별은 아무리 봐도 모르겠더라고요. 어딜보고 구분하는지 아직도 몰라요.(웃음)"


한예리는 유수의 비평가협회나 매체들에게서 쏟아져나온 호평들이 있었지만, 동료 배우 산드라 오의 감상평에 마음이 박혔다. 산드라 오는 재미교포 2세로 '그레이 아나토미'란 드라마로 국내에도 유명하다.


"산드라 오는 정말 이민 2세대잖아요. 이 영화를 보는게 쉽지 않았다고 하더라고요. 본인이 어렸을 때 감내해야했던 것들을 다시 맞딱뜨려야 하니까요. 혹시나 상처를 건드리게 될까봐 걱정도 됐어요. 그런데 치유 받고 있다고 해줘서 너무 좋았죠. 내가 겪어보진 못했지만 많은 어려움이 있었겠구나 막연하게 알 수 있었어요. 외딴섬처럼 어중간한 이민자들의 마음을 이 영화가 잘 보듬어주고 있는 것 같아요."


'미나리'는 미국 이민자들의 이야기를 하고 있지만 모두가 공감하며 느낄 수 있는 보편적인 감정을 담고 있다. 배경이 미국일 뿐, 낯선 곳에서 '미나리'처럼 굳세게 살아가는 보통 사람들의 삶을 말하고 있기 때문이다. 한예리는 '미나리'가 특정한 경험이 없더라도, 모두에게 따뜻한 기운을 줄 수 있는 영화가 되길 바란다고 전했다.


"다양한 감정을 느끼고 돌아가셨으면 좋겠어요. 가족에 대한 마음일 수도 있겠고, 나의 어린시절의 향수일 수도 있고요. 그런 것들을 다 떠나서 아무 생각 없이 이 영화를 느끼셔도 좋고요. 잠시라도 위로를 주고 보듬을 수 있는 시간을 '미나리'를 통해 드리고 싶어요."


류지윤 기자 (yoozi44@dailia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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